![6.25 직후 미국 NGO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보내준 젖소와 함께한 한국 어린이들. [사진 헤퍼 인터내셔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6/25/2664ccb8-96f7-4f7d-ab66-1d162f057304.jpg)
6.25 직후 미국 NGO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보내준 젖소와 함께한 한국 어린이들. [사진 헤퍼 인터내셔널]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미국 경제 원조와 한국 축산업 부활 비사]
300만 사망, 가축도 대거 피해
'우유보다 젖소' 철학 미 NGO
암송아지·염소·돼지·닭·토끼 등
'종자용 가축' 21만마리 보내줘
붕괴된 한국 축산업 부활 도와
이제는 한국이 네팔 농촌 지원
그런데 전쟁 와중에 사실상 끊어진 한국 축산업의 명맥을 잇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농민의 노력이 컸지만, 해외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제대로 모른다. 거기에는 숨겨진 '역사의 고리'가 있다.
![미국 NGO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1972년 항공편으로 한국에 보내준 젖소들. [사진 헤퍼 인터내셔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6/25/746c081a-ee9a-474d-8bd3-baeecf5b35a1.jpg)
미국 NGO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1972년 항공편으로 한국에 보내준 젖소들. [사진 헤퍼 인터내셔널]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농부이자 기독교도인 댄 웨스트(1893~1971)는 39년 스페인 내전 당시 피난민들에게 우유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목도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기아와 빈곤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방안을 고민한다. 자선 구호 비영리기관(NGO)인 '헤퍼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을 44년 설립했다. 그는 당장 우유 한잔을 공짜로 주는 것보다는 가난한 농민이 받은 가축을 길러 자립하도록 유도하는 것(not a cup, but a cow)이 길게 보면 가난 극복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선단체 이름을 암송아지란 뜻을 지닌 헤퍼로 정했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teach a man to fish)는 격언을 실천했다. 헤퍼 취지에 공감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빌 게이츠가 후원자다.
헤퍼는 전쟁의 참화에 휘말린 한반도를 주목한다. 유엔 결의로 창설된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과 함께 51년 산란계용 종란(種卵) 보내기 사업을 계획해 52년 4월 4일 21만개의 종란이 미군 수송기 편으로 한국에 도착해 전국의 부화장으로 보내졌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은 어미 닭으로 자랐고 다시 알을 낳아 전쟁고아들을 먹였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 NGO가 보내준 염소와 함께한 한국 어린이들. [사진 헤퍼 인터내셔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6/25/1b280542-92e4-4ed5-96fe-a0db5dcc29a7.jpg)
한국전쟁 직후 미국 NGO가 보내준 염소와 함께한 한국 어린이들. [사진 헤퍼 인터내셔널]
기자가 헤퍼 본사를 통해 입수한 내부 자료를 보니 가축은 부산 애아원과 이사벨 고아원, 마산 애리원 등으로 보내졌다. 축산 농장과 연세대에도 전달됐다. 이들 가축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이름을 딴 해군 수송선을 타고 '귀하신 몸' 대접을 받으며 한국으로 실려 왔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미국, 축산업 일궈준 '경제 동맹'

경북 안동에 사는 이재복(82)씨는 미국 NGO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1973년 보내준 젖소 두마리를 키워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이 대를 이어 농장을 운영한다. 장세정 기자
경북 안동에서 2대째 축산업을 하는 이재복(82)씨는 헤퍼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는 "49년 대전에서 설립된 '기독교 연합 봉사회' 산하 농민학원에서 선교사들이 한국의 청년 농부들에게 축산기술을 가르쳤고 거기서 배운 농민들은 전국으로 가서 축산업을 일으켰다"고 증언했다. 이씨도 고향으로 돌아가 69년에 가축 인공수정사 면허를 땄고 헤퍼 후원자가 기증한 젖소 두 마리로 1973년부터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이 덕분에 가난을 벗어났다고 한다.
이씨 등 한국 농민 8명은 감사의 뜻을 표하러 88년 미국에 거주하는 헤퍼 후원자들을 찾아가 만났다. 농민 8명이 1인당 새끼젖소 1마리씩 살 수 있는 성금을 모아 7300달러를 89년 중국 쓰촨(四川)성 농촌에 기부했다. 헤퍼 본사 임원들은 "전쟁의 상처를 극복한 한국 농민들이 가난한 이웃 나라 농민을 돕겠다고 나설 줄 상상도 못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이재복(뒷줄 왼쪽 넷째)씨 등 한국 농민 8명이 1988년 미국의 해퍼 인터내셔널을 방문해 감사를 표했다.
실제로 해방 이후 99년까지 50년간 국제사회로부터 약 128억 달러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은 한국은 95년 세계은행 차관 졸업국이 됐다. 2010년에는 선진국 공여국(供與國) 클럽에 공식 가입해 도움을 받던 수원국(受援國)에서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공인받았다. 네팔은 한국이 도움을 주는 대표적 아시아 빈국 중 하나이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중점협력국이다. 정부 지원 사업만 연간 1300만 달러고, NGO 사업 규모도 연간 80억원이다.

아시아에서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 치트완의 한 학교. 학교 시설이 열악하다. 학비가 없어 부모들은 특히 여학생 자녀의 학업을 중단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세정 기자
최근 네팔 농촌 어린이와 농민을 돕기 위해 현지로 봉사를 떠난 한국 청년들을 동행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장원영(19)군이 2015년 네팔 대지진을 계기로 현지 아동을 돕기 위해 만든 'Hope for Nepal' 멤버들이다. 서울국제학교 학생들은 헤퍼의 '책 읽기를 통한 나눔 (read to feed)' 프로그램에 참여해 모은 돈 5000달러를, 세인트폴 서울 재학생들은 별도로 모은 2000달러를 들고 네팔로 갔다.

지난 16일 네팔 카트만두의 헤퍼 네팔 본사에서 니나 조시(왼쪽 둘째) 국장과 한국 청년들(왼쪽부터 권혁준, 임수빈, 정이준, 장원영)이 네팔 어린이들을 위해 모은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난 17일 네팔 다딩 지구의 고산마을에서 한국 청소년들이 '패싱 온 더 기프트(Passing on the Gift)' 행사 차원에서 네팔 청소년들에게 염소를 전달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네팔(2017년 인구 2930만명)의 1인당 GDP는 1030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네팔 경제는 지난 3년간 약 6.3% 성장했다. 2022년 최빈 개도국 지위를 벗어나고 2030년 중진국 진입을 목표로 한다. 한국이 경험한 것처럼 안에서 스스로 노력하고 밖에서 돕는다면 네팔이 '제2의 대한민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네팔 치트완 지구 학생들과 한국 청소년들이 네팔 식으로 두 손을 모은 채 "나마스테"(나는 당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인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가연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박규민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동영상 편집작업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