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광화문 현수막 일주일 관찰기

장군은 현수막에 포위돼 있다.
'자유한국당 해체' '이석기 석방' '멸공(滅共)' '한미동맹 강화' '문재인 탄핵' '미군 철수'…. 요즘 서울 광화문 사거리 주변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다. 그 아우성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높이 17m)이 칼을 차고 서 있다. 광장의 글들은 모아지지 않고 분열하며 사납게 으르렁댄다.
광화문 사거리는 국가 심장부로 통하는 길목이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상징적인 장소. 현대판 상소(上疏)라는 현수막엔 지금 분노와 울분, 격려와 호소가 들끓는다.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1968년 이후 50년 동안 좌우(左右)가 이만큼 격렬하게 충돌한 적이 있었나.
6월은 호국의 달이다. 현수막들에도 진영마다 나라 걱정이 깔려 있다. 다만 타협이나 퇴로가 없는 죽기 살기다. 혼란을 틈타 기습적으로 불법 현수막을 내걸기도 한다. '아무튼, 주말'이 혼돈의 광화문 사거리를 관찰했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의 기록이다.
일민미술관 앞이 격전지
14일 금요일. 광화문역 5번 출구 일민미술관 앞에는 LED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밤에는 번쩍거리며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경고한다.
이곳은 진보와 보수가 부딪치는 현수막 전쟁의 최전선이다. 동해일출TV 광화문 촛불시민선봉대는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자유한국당 궤멸은 촛불의 완성이다' '박근혜 팔이 대한애국당, 불법천막 철거하라'고 외친다. 열 발짝쯤 떨어진 자리에선 자유한미연합과 문재인 퇴진을 위한 대한민국 국민정부가 '미국은 우리혈맹, 한미동맹 강화만이 살 길'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해야 가짜와 진짜가 구별됩니다'로 맞선다. 태극기와 성조기, 6·25 참전국 국기들이 펄럭인다. 한 교회는 '공산당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다 멸공(滅共)'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15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일민미술관 앞. "왈왈!" 개 짖는 소리가 확성기로 계속 흘러나왔다. 보수 단체가 설치한 천막에서였다. 그 앞에서 적폐청산의열행동본부가 "천막을 당장 철거해라" "우파들은 정신 차리라"고 훈계하는 중이었다. 이날 서울경찰청에 신고된 집회·행사 84건 중 하나였다. 지나는 시민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회사원 박모(35)씨는 "보수·진보가 주말만이라도 신사 협정을 맺어 볼썽사나운 집회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16일 일요일. 차 없는 거리가 된 세종문화회관 앞에선 세계 요가의 날 행사가 한창이었다. 건너편 주한미국대사관 쪽은 풍경이 달랐다. 민중민주당이 횡단보도 앞에 '북침전쟁연습중단! 미군 철거!' '트럼프 정부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배너를 세웠다. 10대 소년들이 그 문구를 배경으로 명랑하게 사진을 찍었다. KT 빌딩 앞 가로수엔 '이석기 의원 석방은 분단적폐 극복의 상징'이라고 쓴 현수막이 보였다. 광화문역 2번 출구 앞에선 자주평화통일 실천연대 등이 '자유한국당 해체, 미군 철수' '북남선언 이행하여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국가보안법 철폐하자'고 써놓곤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귀담아듣는 이가 없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친 대한애국당은 할 말이 많았다. 즐비한 현수막이 그것을 증명한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 태극기 애국열사 5인 진상 규명' '좌파 장기집권 음모 분쇄하자'…. 하늘엔 '3·10 공권력 살인, 박원순 처벌'이라는 현수막이 빨간 애드벌룬에 매달려 있었다. 분향소에 있는 남자들이 입은 조끼엔 '태극기 보안관' '주사파 척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는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라는 이희호 여사 근조(謹弔) 현수막이 보였다. 이순신 동상 앞 분수대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다. 흠뻑 젖고도 좋아라 뒹굴었다. 교보생명빌딩에 있는 글판은 크지만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광장을 메운 날 선 글자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낭만적인 문구였다.
'자유한국당 해체' '이석기 석방' '멸공(滅共)' '한미동맹 강화' '문재인 탄핵' '미군 철수'…. 요즘 서울 광화문 사거리 주변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다. 그 아우성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높이 17m)이 칼을 차고 서 있다. 광장의 글들은 모아지지 않고 분열하며 사납게 으르렁댄다.
광화문 사거리는 국가 심장부로 통하는 길목이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상징적인 장소. 현대판 상소(上疏)라는 현수막엔 지금 분노와 울분, 격려와 호소가 들끓는다.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1968년 이후 50년 동안 좌우(左右)가 이만큼 격렬하게 충돌한 적이 있었나.
6월은 호국의 달이다. 현수막들에도 진영마다 나라 걱정이 깔려 있다. 다만 타협이나 퇴로가 없는 죽기 살기다. 혼란을 틈타 기습적으로 불법 현수막을 내걸기도 한다. '아무튼, 주말'이 혼돈의 광화문 사거리를 관찰했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의 기록이다.
일민미술관 앞이 격전지
14일 금요일. 광화문역 5번 출구 일민미술관 앞에는 LED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밤에는 번쩍거리며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경고한다.
이곳은 진보와 보수가 부딪치는 현수막 전쟁의 최전선이다. 동해일출TV 광화문 촛불시민선봉대는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자유한국당 궤멸은 촛불의 완성이다' '박근혜 팔이 대한애국당, 불법천막 철거하라'고 외친다. 열 발짝쯤 떨어진 자리에선 자유한미연합과 문재인 퇴진을 위한 대한민국 국민정부가 '미국은 우리혈맹, 한미동맹 강화만이 살 길'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해야 가짜와 진짜가 구별됩니다'로 맞선다. 태극기와 성조기, 6·25 참전국 국기들이 펄럭인다. 한 교회는 '공산당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다 멸공(滅共)'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15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일민미술관 앞. "왈왈!" 개 짖는 소리가 확성기로 계속 흘러나왔다. 보수 단체가 설치한 천막에서였다. 그 앞에서 적폐청산의열행동본부가 "천막을 당장 철거해라" "우파들은 정신 차리라"고 훈계하는 중이었다. 이날 서울경찰청에 신고된 집회·행사 84건 중 하나였다. 지나는 시민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회사원 박모(35)씨는 "보수·진보가 주말만이라도 신사 협정을 맺어 볼썽사나운 집회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16일 일요일. 차 없는 거리가 된 세종문화회관 앞에선 세계 요가의 날 행사가 한창이었다. 건너편 주한미국대사관 쪽은 풍경이 달랐다. 민중민주당이 횡단보도 앞에 '북침전쟁연습중단! 미군 철거!' '트럼프 정부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배너를 세웠다. 10대 소년들이 그 문구를 배경으로 명랑하게 사진을 찍었다. KT 빌딩 앞 가로수엔 '이석기 의원 석방은 분단적폐 극복의 상징'이라고 쓴 현수막이 보였다. 광화문역 2번 출구 앞에선 자주평화통일 실천연대 등이 '자유한국당 해체, 미군 철수' '북남선언 이행하여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국가보안법 철폐하자'고 써놓곤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귀담아듣는 이가 없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친 대한애국당은 할 말이 많았다. 즐비한 현수막이 그것을 증명한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 태극기 애국열사 5인 진상 규명' '좌파 장기집권 음모 분쇄하자'…. 하늘엔 '3·10 공권력 살인, 박원순 처벌'이라는 현수막이 빨간 애드벌룬에 매달려 있었다. 분향소에 있는 남자들이 입은 조끼엔 '태극기 보안관' '주사파 척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는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라는 이희호 여사 근조(謹弔) 현수막이 보였다. 이순신 동상 앞 분수대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다. 흠뻑 젖고도 좋아라 뒹굴었다. 교보생명빌딩에 있는 글판은 크지만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광장을 메운 날 선 글자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낭만적인 문구였다.



주말에 '치고 빠지는' 불법 현수막
17일 월요일. '이석기 석방' 현수막은 사라지고 없었다. 종로구청에 문의하니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 현수막이라 광고물정비팀이 철거했다"고 답했다. 집회 관련 현수막은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한 경우 별도 신고·허가 절차 없이 30일간 내걸 수 있다. 크기나 내용에 제한도 없다. 어느 현수막에는 '무단 철거나 훼손 시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라는 경고문(?)도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수거한 불법 현수막은 50만9525개. 종로구청도 불법 현수막을 매달 1t가량 거두어 소각하고 있다. 도시디자인과 이민영 주무관은 "집회 신고를 하고 계속 연장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1년 내내 걸 수 있다"며 "이석기 석방 현수막은 주말에 노출하려고 금요일 밤에 몰래 건 것 같다"고 했다. 불법 현수막은 게시자 파악이 어려워 과태료(10만원부터 현수막 면적에 따라 커진다) 부과도 불가능하다. 이런 맹점을 악용해 극단적 주장을 현수막에 담는 단체도 있다. 부동산 분양을 대행한다는 네티즌은 "내가 거는 현수막은 운이 좋아야 반나절 버티는데 왜 정치 현수막은 특별 대우를 해주냐"고 따졌다.
18일 화요일. 비가 내렸다. 새로 등·퇴장한 현수막은 눈에 띄지 않았다. 광화문역 4번 출구가 있는 교보생명빌딩 앞은 이날도 '현수막 청정 구역'이었다. 모퉁이에 비각(碑閣·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이 있어 현수막 걸 곳이 마땅치 않다.
광화문 사거리에 '현수막 명당'이 따로 있을까. 지역구 의원 사무실은 정답을 알 것 같았다. 정세균 의원실은 "광화문 사거리는 유동 인구가 많지만 지역구 유권자는 별로 없어 총선 때 현수막을 걸지 않는 곳이다. 종로구에선 경복궁역 앞 사거리가 '핫스팟'"이라며 "대선이라면 광화문 사거리에서 가장 널찍하고 깔끔한 동화면세점 쪽이 명당일 것"이라고 했다.
"의회 정치의 심각한 위기"
19일 수요일.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화기애애했다. 거기 적힌 한글 창제 이유 '나랏말싸미…'와 근처 현수막 문구들 사이의 격차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한애국당 천막 앞에는 '텐트 투쟁 41일째'라고 적혀 있었다. 투쟁도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점심으로 밥과 제육볶음, 계란과 두부, 무채를 배식했다. 한낮이 되자 분수대가 다시 물을 쏘아 올렸다.
광화문역 7번 출구 앞 인도에는 기차를 닮은 적치물이 있다. 드루킹 게이트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며 '문죄인을 타도하자' '경수야 감방 가자'를 비롯해 과격한 구호들을 광고판처럼 세워놓았다. 기차 꼬리에 작두도 달려 있다. 종로구청 담당자는 "대한애국당이 집회 물품으로 신고한 것인데 '미관상 안 좋고 보행자도 불편하니 치워달라'고 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전했다. 광화문광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청 관계자는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어 고심 중"이라고 했다.
광화문 사거리 현수막들은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불만이 거리로 끓어 넘치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 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사회 수준이 낮은 시절에는 군인들이 판을 쓸어버렸고 최근엔 촛불이 그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광화문으로 달려가 현수막에 직접 의견을 표출한다"며 "의회 정치의 심각한 위기"라고 했다.
20일 목요일. 광화문 사거리는 남남 갈등의 축소판이다. 이날 조간 1면에 '北어선 대기 귀순, 들통난 軍의 거짓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17일 월요일. '이석기 석방' 현수막은 사라지고 없었다. 종로구청에 문의하니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 현수막이라 광고물정비팀이 철거했다"고 답했다. 집회 관련 현수막은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한 경우 별도 신고·허가 절차 없이 30일간 내걸 수 있다. 크기나 내용에 제한도 없다. 어느 현수막에는 '무단 철거나 훼손 시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라는 경고문(?)도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수거한 불법 현수막은 50만9525개. 종로구청도 불법 현수막을 매달 1t가량 거두어 소각하고 있다. 도시디자인과 이민영 주무관은 "집회 신고를 하고 계속 연장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1년 내내 걸 수 있다"며 "이석기 석방 현수막은 주말에 노출하려고 금요일 밤에 몰래 건 것 같다"고 했다. 불법 현수막은 게시자 파악이 어려워 과태료(10만원부터 현수막 면적에 따라 커진다) 부과도 불가능하다. 이런 맹점을 악용해 극단적 주장을 현수막에 담는 단체도 있다. 부동산 분양을 대행한다는 네티즌은 "내가 거는 현수막은 운이 좋아야 반나절 버티는데 왜 정치 현수막은 특별 대우를 해주냐"고 따졌다.
18일 화요일. 비가 내렸다. 새로 등·퇴장한 현수막은 눈에 띄지 않았다. 광화문역 4번 출구가 있는 교보생명빌딩 앞은 이날도 '현수막 청정 구역'이었다. 모퉁이에 비각(碑閣·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이 있어 현수막 걸 곳이 마땅치 않다.
광화문 사거리에 '현수막 명당'이 따로 있을까. 지역구 의원 사무실은 정답을 알 것 같았다. 정세균 의원실은 "광화문 사거리는 유동 인구가 많지만 지역구 유권자는 별로 없어 총선 때 현수막을 걸지 않는 곳이다. 종로구에선 경복궁역 앞 사거리가 '핫스팟'"이라며 "대선이라면 광화문 사거리에서 가장 널찍하고 깔끔한 동화면세점 쪽이 명당일 것"이라고 했다.
"의회 정치의 심각한 위기"
19일 수요일.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화기애애했다. 거기 적힌 한글 창제 이유 '나랏말싸미…'와 근처 현수막 문구들 사이의 격차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한애국당 천막 앞에는 '텐트 투쟁 41일째'라고 적혀 있었다. 투쟁도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점심으로 밥과 제육볶음, 계란과 두부, 무채를 배식했다. 한낮이 되자 분수대가 다시 물을 쏘아 올렸다.
광화문역 7번 출구 앞 인도에는 기차를 닮은 적치물이 있다. 드루킹 게이트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며 '문죄인을 타도하자' '경수야 감방 가자'를 비롯해 과격한 구호들을 광고판처럼 세워놓았다. 기차 꼬리에 작두도 달려 있다. 종로구청 담당자는 "대한애국당이 집회 물품으로 신고한 것인데 '미관상 안 좋고 보행자도 불편하니 치워달라'고 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전했다. 광화문광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청 관계자는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어 고심 중"이라고 했다.
광화문 사거리 현수막들은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불만이 거리로 끓어 넘치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 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사회 수준이 낮은 시절에는 군인들이 판을 쓸어버렸고 최근엔 촛불이 그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광화문으로 달려가 현수막에 직접 의견을 표출한다"며 "의회 정치의 심각한 위기"라고 했다.
20일 목요일. 광화문 사거리는 남남 갈등의 축소판이다. 이날 조간 1면에 '北어선 대기 귀순, 들통난 軍의 거짓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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