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행복

'한식'의 의미

good해월 2007. 4. 6. 11:23
 

한식(寒食)


1. 개자추(介子推)와 불

-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면산(山)에 숨어 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 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옛불(구화,舊火)을 일체 금한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2. 찬밥신세

- 임금은 청명날 새 불을 일으켜 뭇 신하와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수령은 이 불을 한식날에 다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래서 한식날 묵은 불을 끄고 하루는 불 없이 지내며 찬 음식(한식(寒食))을 먹는다 한다. 이 하나의 불로써 온 나라의 군신백성은 일체감을 갖게 된다.

3. 성묘

- 한식날을 명절 중의 명절로 삼아 관리들에게 성묘를 하도록 휴가를 주었을 뿐 아니라, 이날만은 어떠한 죄수에게도 형을 집행하지 않도록, 금지했다고 한다. 이조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한식을 중하게 여겨 오늘날까지 한식날 성묘하는 관습이 남아 있다.

4. 개사초(改莎草)

- 자손들이 저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높고 큰 은덕을 추모하며 제사지낸다. 조상묘 앞에 과(果-과실), 적(炙-구운 고기), 병(餠-떡)을 차려 놓고 한식차례를 지낸다. 조상 묘의 풀을 베는 사초를 하거나 새잔디를 다시 입히기도 한다. 이를 개사초라 한다.

5. 농가에서는 새해 농경 준비를 한다. 나무를 심거나 채소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6. 한식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뿐만 아니라 나라에도 불행한 일이 있다고 매우 꺼려한다.

7. 한식날 먹는 메밀국수를 한식면(寒食麵), 한식날 무렵 잡은 조기를 한식사리라 한다.


성묘(省墓) : 조상의 묘를 돌보는 일.

배분(拜墳), 배소례(拜掃禮)라고도 한다. 성묘는 분묘의 손질과 배례를 행하여 조상숭배의 관념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성묘에 제례절차가 합쳐져 후에 묘제(墓祭)의 형식으로 발전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대개 설·한식·추석에 행한다. 설날에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로서 차례를 지내고, 한식에는 겨울 동안 돌보지 못한 산소를 돌보는 성묘를 한다. 추석에는 햇과일과 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는 차례와 성묘를 지낸다.


개자추와 한식


조상의 묘소에 과일과 떡 등을 차려 놓고 한식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무덤이 헐었으면 떼를 다시 입히는 한식.

우리는 이런 조상의 얼이 이어 받아야 한다.

한식의 유래는 중국 옛 풍속에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왔다"는 〈개자추전설 介子推傳說〉이 전해진다.

중국 춘추시대에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망명·유랑하다가 진나라 문공(文公)이 되어 전날의 충신들을 포상했다.

이때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이 포상자들 중에 들지 못하자 개자추는 부끄럽게 여기고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서로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을 지내고 관공리들에게 공가(公暇)를 주어 성묘하도록 했다.

민간에서는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낸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지금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정신이 필요할 때다.


'개자추 컴플렉스'


불을 피울 수 없게 돼 있어 미리 지어놓은 찬밥을 먹어야 한다는 오늘이 한식날이다.

불을 못 피우게 하는 전설적 이유는 충신 개자추의 원통한 죽음을 공감하고 애도하기 위해서 생겨난 습속으로 돼 있다.

고대 중국 진나라 임금 문공이 19년 동안 망명 방랑생활을 할 때 유일하게 따라다니며 보필한 신하는 오로지 개자추 한 사람뿐이었다.

임금님이 굶주릴 때는 허벅지살까지 에어내어 목숨을 잇게 해준 것으로 문헌에 적혀 있다. 한데 문공이 다시 나라를 찾았을 때 많은 사람을 등용하면서 오로지 개자추만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개자추는 금전산에 들어가 숨어버리고 그때야 잘못을 뉘우친 문공이 사람을 시켜 산속을 찾아 헤맸으나 나타나지 않기에 마지막 수단으로 그 산에 불을 질러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한데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나무 한그루를 부둥켜안고 타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날만은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여 찬밥을 먹는 것으로 개자추를 애도하는 한식음식이 발생했다 한다.

나의 의사나 주장이나 불평불만을 이렇게 자학으로 내향 처리하는 개자추의 죽음이 우리에게는 공감이 가고 또 애통하기도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외향 처리하는 서양 사람에게는 이해하기마저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동양사람, 특히 한국 사람에게 억세게 강한 피해자의식, 곧 개자추처럼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어 그로써 야기되는 남들의 공감과 동정에 응석을 부리는 심리를 '개자추 컴플렉스'라 하여 동양 사람을 이해하는 주요한 심리적 관건이 되고 있다 한다.

옛날 선비들이 정사에 뜻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유배길에 올라 가시덤불 둘러놓고 그 속에 들어앉아 자학하는 습속도 그 같은 심리다. '아침 굶은 시어머니 상통'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며느리에 대한 항의를 아침밥을 굶는다는 자학으로 처리한다. 맞붙어 싸움을 할 떄도 미리 선공할 생각은 안하고 볼을 내밀며 "때려!?"하며 먼저 피해자가 되고자하는 이상한 싸움을 하는 것도 바로 피해자가 유리해지는 개자추 컴플렉스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같은 심리가 거의 없는 여느 다른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국제화사회에서 해자를 자처하고 그에 응석만을 부리다가는 언젠가는 찬밥을 먹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