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자와 십자가(十字架)
영화나 기록사진에서 종종 보이는 나치스의 표시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만(卍)자와 닮았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불교도였을까?
흔히들 교회의 표시는 십자가, 절의 표시는 卍자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십자가와 卍자는 알고 보면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 사실 卍자와 십자가는 불교와 기독교가 등장하기 훨씬 전, 원시 종교에서부터 고대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했던 표시였다.
원시 신앙에서 비롯된 다양한 십자가와 卍자
卍(만)자는 인도에서는 ‘스바스티카’라고 한다. 그리스어의 세 번째 알파벳 감마(Γ)가 네 개 겹쳐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감마디온’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슴에 있는 성스러운 표식으로 여긴다. 이 표식은 고대로부터 장식, 도안에 많이 사용되었다. 일명 ‘갈고리형 십자가’라 하여 십자가의 변형으로 간주된다.
십자가는 卍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고대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십자 표식이 새겨진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가까이는 신석기시대의 중국에서부터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까지 세계 4대 문명에까지 골고루 십자가가 퍼져 있었고 아프리카 일부 부족이나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이에서도 신앙의 대상이었다.
십자가는 흔히 †표시로 알고 있으나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형이 있다. 두 나뭇조각이 가로 세로로 교차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교차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른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세로 아래쪽이 긴 형태는 라틴 십자가(†)다. 라틴 십자가 가운데 둥근 원이 있는 것은 켈트 십자가, 가로·세로의 길이가 같은 것은 그리스 십자가(+), 십자가의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꼬부라진 갈고리형 십자가(卍), 세로 부분이 가로의 위로 올라가지 않은 T자형 타우 십자가(성 안토니의 십자가), 타우 십자가 위에 둥근 고리가 덧붙은 형태의 앵크 십자가, X자형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 가로로 작은 나무 하나를 더 걸친 이중 십자가(‡), 그리스 알파벳 키(Ⅹ)·로(P)를 합한 형태인 키-로 십자가 등등 크게 십여 가지로 형태를 분류할 수 있다.
卍자는 태양 상징에서 유래
우리나라에서 절 또는 무당의 표시로 알려진 卍자는 중앙 아프리카나 수메르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된 표지다. 卍자에는 기본형인 卍에서 안으로 좀더 꼬부라든 모양, 그리스 십자가처럼 좌우로 열십자로 교차한 막대 모양도 포함된다. 인도-아리아계에서 특히 많이 사용했는데, 이것이 이어져 자이나교, 불교, 힌두교의 비슈누파에서 그들 종파의 상징으로 삼았다.
현재 소승 불교권인 동남아에서는 卍자 표시를 쓰지 않고 중국, 우리나라 등 대승 불교권에서 불교의 표지로 쓰고 있다. 불교에서 卍자는 ‘길상 해운(吉祥海雲)’이라 하여 부처가 지닌 성덕과 길상, 또는 윤회나 공덕의 상징이다. 화엄경에서는 부처의 가슴에 卍자가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후에는 부처의 손, 발에도 이런 표지가 있으며 머리 카락도 卍자 모양으로 굽이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부처 이전의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태양신 비슈누의 표지였으며 그 전에는 고대 아리아인들의 태양신 디아누스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그리스에서도 卍자는 태양신 헬리오스, 최고신 제우스의 상징이었으며 생산과 관련된 여신 데메테르, 헤라, 아르테미스를 그릴 때도 나란히 그려졌다. 많은 학자들은 卍자가 뻗쳐나는 태양빛, 태양의 전차, 회전하는 태양, 신령한 빛 등 고대의 태양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바람개비를 닮은 모양이라서 회전, 우주의 순환 등을 의미하기도 하며, 많은 지역에서 행운, 길조, 생명, 건강, 다산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조각되었다.
卍자는 회전방향에 따라 卍(왼쪽 卍)과 (오른쪽 卍)의 두 가지가 쓰이는데 남성-여성, 태양-달, 왼쪽 회전-오른쪽 회전 정도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의미 차이는 밝혀진 바 없다.
잔혹한 처형 도구였던 십자가
십자가는 오늘날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리스도 탄생 훨씬 이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인, 페니키아인, 에트루리아인, 로마인, 켈트인,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에게 이르기까지 십자가는 종교적인 상징이었다. 그래서 15세기 이래로 신대륙에 발을 디디게 된 유럽 탐험가들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숭배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리둥절했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십자가의 유래 또한 卍자와 마찬가지로 태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앵크 십자가는 지평선 위에 떠오르는 태양을 나타내며 다양한 유형의 십자가가 태양 또는 태양신의 상징으로 쓰였다. 또한 십자가는 고대 종교에서 무한히 뻗는 빛이나 나무를 상징하기도 하고 우주의 원리, 인간, 사방, 이중성, 조화 등을 상징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부시먼들에게 십자가는 분만을 돕는 신성한 부적이다. 십자가로 드라큘라나 악귀를 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서구인들의 믿음도 따지고 보면 기독교 신앙이라기보다 십자가를 부적으로 여기던 원시 신앙에 가깝다.
이 십자가는 한편 잔혹한 처형 도구이기도 했다. 십자가에 못박는 형벌은 페니키아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페르시아인들 가운데 처음 십자가형이 행해졌다고도 한다. 종합해서 보면 아마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던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민족 사이에 십자가를 사형틀로 이용하는 풍습이 번져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도 자신이 정복한 페르시아로부터 십자가 처형 방식을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후일 헬레니즘 세계와 카르타고, 다시 로마로 전해졌다. 죄인들을 못박았던 십자가는 원래 단순한 기둥 모양이었으나 로마에 전해지면서 기둥 위에 가로 막대가 놓인 십자 형태를 띠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은 체중에 의해 못 박힌 부위의 살이 찢어지고 고통으로 인해 전신은 경련을 일으키며, 혈액의 손실로 갈증이 심해지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후 사망한다. 처형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아직 숨이 붙어있는 죄수의 뼈를 꺾기도 했다. 이렇듯 잔인한 처형 방식이었으므로 로마 제국 내에서도 십자가 처형은 반역자나 비(非)로마 시민, 노예들을 대상으로만 사용되었다.
십자가와 기독교
‘행운’, ‘길조’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던 십자가는 사형틀이 되면서 ‘저주’와 ‘공포’라는 뜻을 포함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이후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희생’이라는 의미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인되었다. 그렇다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들처럼 십자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예를 표하지는 않았다. 원래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가졌던 그들에게 형상으로서의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처형된 저주받은 ‘나무’에 불과했고, 이 나무는 제국 내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던 4세기 초까지 그들 가운데 수많은 목숨을 계속해서 앗아갔던 것이다.
십자가 처형을 중지시킨 사람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고 한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431년, 십자가는 교회 내부에 달리기 시작했고 586년에 이르면 교회 꼭대기를 장식하게 된다. 초기 기독교와 달리 카톨릭 교회에서 십자가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십자가나 여러 신의 형상에 익숙해 있던 로마 제국 내의 이교도들, 특히 게르만족의 개종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7세기경에는 미술품으로서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 있는 십자고상(十字苦像, 또는 십자가상)이 만들어졌는데 13세기 이후에는 십자고상이 예배의 대상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십자가는 교회 내부와 외부에서 신도들의 가정으로 전해졌고, 성찬 그릇과 사제복, 왕관이나 검·방패의 장식, 목걸이, 반지 등에도 장식용으로나 악마를 쫓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오늘날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으로만 정착한 것도 아니다. 일부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우상이라 하여 아예 달지 않고, 기성 교단에서도 십자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 끝에 교회 건물에서 십자가를 떼어내기도 한다.
요즘은 역 逆십자가가 사탄주의자들의 상징으로도 이용된다. 시내 중심가를 나가보면 卍자 목걸이를 건 불교도, 십자가 목걸이를 한 개신교도, 십자가가 새겨진 묵주반지를 낀 카톨릭교도, 무신론이면서도 커다란 십자가 귀걸이를 걸친 젊은이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卍자를 포함해서 십자가만큼 다양한 종교의 상징으로 사용된 표식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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