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
벌초와 성묘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옛날 조상의 묘를 풍수설에 의하여 명당에 쓰기 위하여 몇 십리 먼 곳에까지 가서 쓰는 수가 많았고, 또 묘를 쓴 다음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묘가 집 근처가 아니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추석을 맞이하여서는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겼다. 그리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 돌보는 것을 성묘라고 하는데 한가위 때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안했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니라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추석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宗家)에 모여 고조(高祖)까지의 차례를 지낸다. 차례 지내는 절차가 설날과 다른 것은 흰떡국 대신 메[밥]를 쓰는 점이다. 조상에 대한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천신제(薦新祭)를 겸하였기 때문에 제물은 신곡으로 만들어 진열된다. 고조 이상의 윗대는 10월에 시제라 해서 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추석날 밤에 곱게 단장한 뗌?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모여 서로 손잡고 둥들게 원을 그리며 뛰노는 민족 전래의 놀이다. 명칭은 '강강술래'가 일반적이나, 시작할 때의 진양조로 느리게 노래를 부를 때는 강강수월래로 발음된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마을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하여 마련했다고 한다. 남자가 끼여 들 수 없는 강강수월래는 시집간 사람들이 처녀들과 패를 나누어 따로 하기도 하지만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목청 좋은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강강수월래"하면서 손잡은 채 옆으로 게걸음으로 뛰면서 다음 선창을 기다린다.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리게 춤추다가 차츰 빨라지면서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로 변하고 선도자의 능력에 따라 여러 변화를 꾀하다가 다들 지치면 끝난다.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소놀이는 진행된다. 먼저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상쇠의 선도에 따라 한바탕 신나게 풍물을 울리며 어우러져 놀다가 소놀이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우며 뒷사람은 큰 새끼줄로 꼬리를 달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의 시늉을 한다.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한다. 소를 앞세우고 일행은 앞마당으로 들어가 농악을 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 주인집에서는 술과 떡과 찬을 차려 대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 놀다가 다시 소를 끌고 다른 집으로 향한다. 이렇 게 여러 집을 찾아가 해가 질 때까지 어울려 논다. 농사를 천하의 대본으로 여겨 온 농경 민족에게 있어 농사를 잘 지어 풍작을 거두게 하였다는 것은 큰 공이니 위로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에 태우는 영광을 주는 것이다. 한번 상머슴으로 뽑히면 다음해 머슴 새경을 정할 때 우대를 받게 된다. 옛날 서당 교육은 훈장을 초빙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면 훈장도 고향에 가서 차례 성묘를 하게 되므로 서당은 몇일을 쉬게 되고 학동들은 자유롭게 놀 수가 있었다. 이럴 때에 학동들에 의해서 원놀이와 가마싸움이 있게 된다. 원놀이란 학동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재치 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백성이 되어 원님께 소장을 내어 그 판결을 받는 놀이인데, 오늘날의 대학에서 행해지는 모의 재판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 이 때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건을 잘 해결하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된다. 장차 과거에 등과해서 벼슬을 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할 학동들의 놀이로서는 매우 적격이었다. 가마싸움도 학동들이 주가되어 행하여졌다. 훈장이 없는 틈을 타서 가마를 만들어 이웃 마을 학동들과 또는 이웃 서당의 학동들끼리 대결을 하는 놀이이다. 가마를 끌고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음질해서 가마끼리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데 이긴 편에서 당년에 등과가 나온다고 한다.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일자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을 반보기라 한다. 옛날에 시집간 여자들은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녀 사이에 중간 지점을 정해서 서로 즐기는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 한나절 동안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것이 반보기인 것이다. 또 한 마을의 여인들이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경치 좋은 곳에 집단으로 모여 우정을 두터이 하며 하루를 즐기는 수도 있다. 이 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릿감을 선정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반보기란 중로(中路)에서 상봉했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주찬(酒饌)을 차려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푸는 수도 있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를 하는 것은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는 기원의 뜻이다.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연령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