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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울 이야기.

good해월 2007. 10. 5. 13:41

서울은 '머릿도시'의 뜻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새 도읍터를 한양으로 정할 때 가장 눈여겨 본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땅모양과 방어상의 우수성이었다.

 

당시에 무학대사, 조준(좌정승), 김세형(우정승) 등은 지금의 서울터를 보고 경치가 좋고 산으로 둘러싸여 수도로 가장 알맞은 터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북쪽에 화산(華山;삼각산)으로 진산을 삼았으니, 용이 내리고 범이 쭈그려 앉은 형세가 있고 남쪽은 한강으로 띠를 둘러----

정말 산과 강이 잘 어울어진 곳’이라고 하여 서울의 땅모양이 지리-방어상 최적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은 북악산(北岳山), 낙산(駱山.駱駝山), 목멱산(木覓山.南山), 인왕산(仁旺山) 등 4개의 산이 가까이 울타리를 치고 있으며, 그 밖으로 북한산(北漢山), 용마산(龍馬山), 관악산(冠岳山), 덕양산(德陽山) 등 4개의 산이 외곽을 튼튼히 두르고 있다. 안쪽을 두른 4개의 산을 ‘내사산(內四山)’이라 하고, 바깥쪽을 두른 4개의 산을 ‘외사산(外四山)’이라고 한다.


한강은 외사산(外四山)의 안쪽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수운(水運)을 편리하게 하고, 그 유역에 넓은 평지를 이루어 놓았다. 따라서 한양 일대는 주거 지역으로 알맞아 수도(首都)로서 최적이었다. 그런 데다가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정치 중심지로 삼기에 더없이 좋았다.


태조 이성계는 이러한 서울의 좋은 입지 조건에 만족해 전국의 여러 후보지 중에 이곳을 선택하고, 나라를 세운 1392년의 2년 후인 1394년에 고려의 5백년 서울이었던 개성을 버리고 역사적인 도를 단행했다.

 

 

라 때부터 써온 말인 ‘서울’은 ‘서벌’ 또는 ‘서라벌’이 그 바탕일

것으로 보인다. 언어학자 고 양주동 님이 한글로 풀이한 신라 시대의 향가 <처용가(處容歌)>의

 ‘새발(새벌)’도 지금의 ‘서울’에 해당하는 말이다.


‘새벌’은 당시의 말로 ‘수도(首都)’에 해당하며, 신라 경주의 한자식

이름인 ‘서벌(徐伐)’ 또는 ‘서라벌(徐羅伐.徐耶伐)’이 바로 이 ‘새벌’의 소리빌기(音借) 표기로 보는 것이다. 학자들은 국호인 ‘신라(新羅)’나 ‘시림(始林)’도 이것이 음차된 이름으로 보고 있으며, 백제의 수도인 ‘소부리(所夫里=부여)’나 고려의 수도인 ‘송악(松岳)’과 태봉의 수도인 ‘철원(鐵原)’ 등도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의 뜻인 이 ‘서벌-새벌’은 그 뒤로 조금씩 음이 변하면서 지금의 ‘서울’이라는 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훈민정음이 나오고 난 후의 조선시대의 문헌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문헌들에서는 지금의 ‘서울’이라는 말이 ‘셔블’ ‘셔울’ 등으로 나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보아서 신라 초 이래로 ‘머릿고을(首都)’의 개념으로 계속 써왔던 ‘서울’이라는 말은 ‘새벌’ 또는 ‘서벌(서블)’이 소리 변화 과정을 거쳐 정착된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하기 이전의 서울의 공식 명칭은 한양(漢陽)이었다. 이 명칭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써온 것이다. 삼국 초기에 서울은 백제의 수도로서 ‘위례성(慰禮城)’이라고 불렀다. 그뒤, 신라가 반도를 통일하고 나서 ‘한산주(漢山州)’라고 불렀으며, 경덕왕 때에 이르러 지금의 서울 지역에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였다.

 

고려시대에 와서 이 지역을 ‘양주(楊州)’라고 개칭, 지방 군현으로 존속시켜 왔다. 1067년에 삼경(三京)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한 서울은 행정구획의 단위로 정치적인 비중이 점차 높아졌다. 고려 25대 충렬왕 34년(1308)에 서울은 ‘한양부(漢陽府)’가 된다.


조선 태조 4년(1396) 6월부터 결정된 ‘한성부(漢城府)’는 약 5백 년동안의 공식 지명이었다. 그러나 민중 속에서는 오랫동안 불려 왔던 ‘한양’ 또는 ‘서울’이란 말이 주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한반도 강점에 의해 서울은 공식적으로는 ‘경성(京城)’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말았다.


1945년 광복을 맞아 ‘서울시’로 되면서,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한글식 법정 지명이 나오는 역사적 계기가 됐다. 다음 해 8월에 와서 서울은 자유 특별시로 승격되었다. 그렇지만, 신라 때부터 머릿도시의 개념으로 겨레의 생각 속에 깊이 뿌리박아 온 ‘서울’이란 말은 어느 한 곳의 땅이름이기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 도읍지가 되든 보통 명사처럼 붙어 다녔다.

 

출처 : 한반도 시나리오
글쓴이 : 하 늘 마 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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