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이산의 효심을 알 수 있는 외로운 비 하나.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 가 한편 언덕 위에 비각이 하나 있다. 의왕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계단이 있다. 이 계단 위에 서 있는 작고 외로운 비. 지나는 사람들은 그 비에 눈길 한번을 주질 않는다. 수원과 의왕시의 경계인 이 고개를 지지대라고 부른다. 지지대란 느릴 지(遲)자를 연속으로 써, 더욱 느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지지대에 서 있는 비를 지지대비라고 부르며, 이는 정조 이산의 효심을 후대에 알려주는 비석이다.
지지대 고개 위에 서 있는 이산의 효심을 기록한 지지대비각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은 보경스님의 부모은중경을 듣고 난 뒤이다. 정조는 이곳으로 능을 옮긴 후 한양에서 화성을 80리라고 하였다. 사도세자의 능을 다녀갈 때는 이곳에 올라 능쪽을 바라보면서, 신하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곳에 돌을 쌓아 작은 대를 만들어 느릴 지(遲)자 두 자를 붙여서 ‘지지대’라 이름 하였다. 이 후 고개이름도 지지대 고개로 바뀌었으며, 순조 7년(1807) 그의 효성을 전하자는 신현의 건의에 따라 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비문은 홍문관제학으로 있던 서영보가 짓고, 윤사국이 글씨를 썼다. 비의 명칭은 수원유수를 지내던 홍명호가 썼으며, 현재는 비각을 지어 모시고 있다. 이 지지대비에는 정조 이산의 부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듯 하다.
지지대비는 계단 위에 홀로 서 있다. 요즈음은 풍문에 들으니, 드라마 ‘이산’이 방영되고부터 사람들이 찾아오고는 한단다. 내가 지지대비를 자주 찾았던 때가 2004년이었으니, 벌써 꽤 오래전이다. 지지대비에 올라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비 하나. 정조 이산의 효심을 알리 없는 사람들은, 그저 이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비각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누구인가 비각 앞에 향로를 하나 갖다 놓았는데, 늘 그것이 더욱 슬퍼보였다.
더욱 한 칸으로 된 비각 안을 들여다보면 비석에 흠집이 많이 나있다. 그 흠집으로 인해 더욱 슬프다. 비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흠집은, 6,25동란 때 총에 맞은 탄흔이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수많은 무리들의 위협 속에서 왕좌에 오른 정조 이산. 아버지를 못 잊어 늘 이곳 화성행차를 했고, 이 지지대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정조는, 비석마저도 수난을 당한 것 같기 때문이다. 계단 위 외로운 비석 하나. 그것은 아마 살아생전 수많은 적과 혼자서 싸워야했던 정조 이산의 슬픈 운명은 아니었을까?
6, 25 동란 때 생겨난 탄흔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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