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가장 감격적인 순간 중 하나는
9월 27일 새벽 6시에 용감한 해병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던 순간이었다.
“그날, 소대원들 애국가 목놓아 불러”
정신 흐려졌지만 그때 얘기 나오면 눈 반짝
국민들 똘똘뭉쳐 6·25같은일 겪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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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센 머리, 움푹 꺼진 볼. 구부정한 허리에 비쩍 마른 몸. 이제는 검버섯이 피어나고 정신마저 흐릿해졌지만 노병은 6·25전쟁 발발 석 달여 만에 되찾은 수도 서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우리가 태극기를 게양하자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소대원들은 일제히 애국가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지. 사선(死線)을 넘은 소대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어. 80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장면만은 결코 잊지 못 할거야.” 노병은 이 말을 하면서 먼저 떠나간 전우(戰友) 생각이 떠오른 듯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박씨는 “당시 내 나이 스물넷이었소. 장가도 못 갔고 고향에도 못 가고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온 국민이 열망하는 것을 저버릴 수 없었다”면서, “온 국민의 갈망대로 우리나라 심장부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직접 꽂았다는 벅찬 감격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9·28 서울수복 이후 56년. 박씨와 함께 태극기를 게양한 두 전우는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 박씨 역시 2년 전 욕실에서 넘어져 척추를 크게 다쳤다. 또 지난해엔 빙판에서 넘어져 대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치매기마저 있어 거동도 부자유스럽다. 용맹했던 해병도 이젠 감기 앞에 무력할 정도로 노쇠했다. 하지만 그는 ‘9·28 서울 수복’과 ‘중앙청 태극기 게양’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이 초롱초롱해지고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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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수 이등병조(현 병장)와 최국방 견습해병(현 이병)과 함께 박 소대장은 조선호텔 지하실에서 구한 4m짜리 대형 태극기를 온몸에 감고 소대원들의 허리띠를 연결해 로프를 만들어 천장에 기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장대에 태극기를 매달아 내걸었다.
“전우들도 다 떠났고 나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 요즘 또다시 안보문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려. 6·25라는 사선을 넘어 조국을 지켜낸 그 마음 절대로 잊어서는 안돼. 모두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노병은 지금의 상황이 못내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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