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으로행복

[스크랩] 한국경제 소설같은 이야기(건국 60년 도전의 순간들)

good해월 2008. 8. 27. 10:46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경제의 발전사를 보다보니 꼭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용균이와 혁균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정리해본다.

 

panic bird.....

 

(1) 1964년 수출 1억弗 돌파

수출 1억달러 돌파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평균 수출액이 16억달러에 이르고,연간 수출액이 4000억달러를 넘어서는 2008년의 눈으로 보면 무척이나 아득한 이야기다.

1964년 5월,정부는 그해 수출 목표를 1억달러로 잡았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난 상황에서 무엇이든 내다팔아 달러를 벌어들여야 했다. 수출할 것이라고 해봐야 철광석 중석 생사 무연탄 오징어 등이 고작이었고 변변한 공장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독려 속에 수출 현장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수출입국'의 시발점이다.

그해 11월30일,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던 수출증가율 40%의 기적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12월2일 당시 김정렴 상공부 차관은 수출 1억달러 돌파 소식과 함께 사흘 뒤인 5일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출의 날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서울의 번화가 가운데 한 곳이던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도 기념탑이 세워졌다. 기념탑에 적힌 '수출실적 1억불 돌파' '늘어가는 수출에 밝아오는 나라살림'이라는 표어에서 어려운 경제 상황 아래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보려는 노력을 살필 수 있다.

 

(1) 1964년 수출 1억弗돌파 …`수출코리아` 신화는 계속된다

1972년 5월30일.서울 중앙청홀에서 월례 수출확대회의를 마친 박정희 대통령이 오원철 경제2수석비서관을 청와대 서재로 불러 들였다.

"임자! 100억달러 수출을 하자면 무슨 공업을 육성해야 하지?"

'수출 총사령관'의 난데없는 질문에 오 수석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수출목표가 17억5000만달러이고,불과 석 달여 전에 1980년 수출 목표를 55억달러로 확정한 마당에 100억달러라니…."

박 대통령의 질문은 100억달러 수출계획을 만들어 오라는 지시와 다름 없었다. 그해 12월 경제팀은 철강 석유화학 조선 전자 기계(자동차 포함) 비철금속 등 6대 산업을 육성해 1980년에 100억달러를 수출하겠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의 중간평가는 100억달러 수출에 달려 있다"면서 "모든 정책의 초점을 100억달러 수출목표에 맞춰 총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전쟁을 앞둔 국가총동원령'과 같았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100억달러 수출은 목표보다 3년 앞선 1977년 달성됐다. 1973년 공식 발표된 '1980년 100억달러 수출계획'도 따지고 보면 10년 전인 1964년부터 정부가 '수출제일주의'를 내세워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기에 가능했다.

경제정책의 모든 목표를 '수출'에 맞추기 전인 1963년만 해도 한국의 경제상황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로 1차 5개년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한 1963년 한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 1961년 말 2억520만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원자재 및 생필품 수입이 늘면서 1963년 9월 말엔 1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파산 직전이었지만 차관도 들여올 수 없었다.

살 길은 수출에 있었다. 박 대통령이 1964년 5월 임명한 박충훈 상공부 장관은 "수출제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진두지휘해 주셔야 한다"고 건의했고,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지원할테니 연말까지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라"고 지시했다. 수출을 위해 달러당 130원이던 환율을 255원으로 인상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무엇을 수출할지가 문제였다. 공업이라야 섬유공업밖에 없던 시절이라 우선 1965년 말까지 섬유업종을 중심으로 300개 중소기업을 수출업체로 전환하기로 했다. 도지사들에게는 도마다 20만∼30만평의 공업단지를 조성한 뒤 수출할 수 있는 업체를 발굴해 모조리 입주시키라는 할당 목표도 떨어졌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딸자식을 어떻게 공장에 보내 일을 시킬 수 있나"라는 정서가 여전했다. 이에 따라 각 도는 '가내공업센터'를 설립,기술교육을 시킨 뒤 작업은 가정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여성들은 공장에서 재료를 받아 집에서 '뜨개질'이나 '홀치기' 등의 작업을 해 납품했고,이는 모두 수출 실적으로 잡혔다.

이런 노력으로 1964년 11월30일 연간 수출이 1억달러를 돌파했고 12월5일 '제1회 수출의 날'(현재는 '무역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후 수출은 연평균 41.9%라는 기적적인 증가율을 기록하며 1970년 연간 10억달러를 넘게 된다.

이 기간 수출된 제품들 중에서는 가발이 단연 '효자'였다. 1964년 처음 1만4000달러어치가 수출된 가발은 1970년엔 그 수출액이 무려 1억달러에 달해 의류 합판에 이은 3대 수출품 반열에 올랐다.

수출확대는 전 국민이 노력한 결과물이었지만 1965년부터 15년간 매달 열린 수출확대회의는 실질적인 '총사령부' 역할을 했다. 이 회의에는 대통령은 물론 관계부처 관련업계 등에서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매월 수출실적,품목별 수출실적,나라별 수출실적 등이 체크됐고 애로사항은 즉석에서 해결됐다.

수출확대회의에서는 늘 수출업자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졌다. 회의는 완전히 공개돼 비밀이 없었고 결정된 사항은 법보다 더 힘을 발휘했다. '업계가 건의하면 일단 실행하고 차후에 법을 고치는 식'이었다고 한다.

1973년부터 시작된 철강 조선 기계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수출은 액수와 품목에서 질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1975년 삼성물산 대우실업 등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고 중화학공업 제품 수출도 늘면서 1977년 1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그 뒤 12년 만인 1995년엔 꿈의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2004년엔 2000억달러,2006년엔 3000억달러 수출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화두는 오늘도 유효하다. 유가 급등으로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 올 들어서도 수출은 급증하면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상반기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5% 증가한 2140억달러(하루 평균 15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연간 수출액 4000억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1) 수출 넘어 R&D·디자인도 글로벌 점령 나섰다

2005년 5월20일 현대자동차의 미국 앨라배마공장 준공식.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 회장의 얼굴에는 감격스러움과 비장함이 함께 묻어났다. 정 회장에게 이날은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이자 글로벌 최고 격전장인 미국에 직접 공장을 짓고 'made in USA' 마크를 단 현대차를 생산,곧바로 현지 시장에 공급하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승부수'였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변변한 기술 하나 없어 미군이 쓰다 버린 '찝차'를 개조해 승용차로 만들었던 한국의 기업이 자동차 본고장 미국에서 본격 나래를 펴는 순간이기도 했다.


◆'부르몽의 악몽' 딛고 글로벌 중심기지로

현대차로서는 1989년 3억달러를 투자,북미시장 공략을 위해 캐나다 부르몽에 연산 10만대 규모의 현지 공장을 설립했다가 품질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4년 뒤 가동을 중단했고,1996년 5000억원의 손실을 떠안은 채 철수해야 했던 쓰린 기억이 있던 터였다. 이른바 '부르몽의 악몽'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영원히 '변방의 자동차 메이커'로 머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 도요타가 미국에서 일군 성공신화를 기필코 재현해 글로벌 중심으로 도약하겠다는 그의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거점이 될 앨라배마공장을 보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 회장은 준공식에서 "앨라배마공장 가동을 통해 진정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더 이상 변방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기도 했다.

쏘나타와 싼타페를 만드는 앨라배마공장은 첫 해 9만1000여대를 시작으로 2006년 23만6000여대,지난해 25만여대로 생산 규모를 늘리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현대차는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럭셔리 카 '제네시스'를 올 여름 미국에 내놓으며 고급차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2007년 생산 및 판매 기준으로 도요타 GM 포드 폭스바겐에 이어 글로벌 5위까지 올라섰다. 정 회장의 '품질 경영'이 탄력을 받으면서 자동차 품질 수준이 크게 좋아진 데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터키 슬로바키아 등 글로벌 시장 곳곳에 포진한 생산거점들이 빠르게 제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현대ㆍ기아차는 러시아공장(현대차),미국 조지아공장(기아차) 등이 완공되는 2012년에는 해외 생산 능력(330만대)이 국내 생산 능력(300만대)을 앞지르면서 글로벌 '빅 3'에 진입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한국의 국가 위상 바꾼 기업들의 글로벌 행보

건국 60년을 맞은 한국의 달라진 위상은 세계시장에 우뚝선 한국 기업의 위상과 궤를 같이한다. 글로벌 한국의 밑바탕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한 기업들의 힘이 깔려 있다.

제품 생산과 판매 모두에서 한국 기업들의 시선은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광대한 5대양 6대주로 뻗어나가고 있다.

글로벌 경영이 가속화하면서 삼성 현대ㆍ기아차 LG 등 대다수 기업에 '현지 생산→현지 판매'가 일상화됐다. 지역별 특성에 맞춰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R&D(연구개발) 및 디자인 센터 건립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지난해 207억달러를 넘어서 1990년(11억달러)보다 무려 18배 넘게 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는 미국 중국 인도 헝가리 브라질 멕시코 등에 걸쳐 전 세계에 생산시설(21개)과 R&D센터(13개),판매법인(41개)을 포함해 모두 75개의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해외 법인에서 고용하는 현지 인력만 5만3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1000억달러를 넘어선 전체 매출의 80%(수출 포함)가 해외 시장에서 발생한다.

LG그룹도 글로벌 경영회의를 구본무 회장이 직접 주재할 만큼 글로벌 경영이 뿌리를 내렸다. 주력 기업인 LG전자는 미국 중국에서 아프리카 오지까지 110여개의 현지 법인을 두고 있다. 해외 생산공장만 1988년 멕시코 멕시칼리에 세운 가전공장을 비롯해 영국 브라질 폴란드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러시아 등 전 세계에 걸쳐 60여개로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많다. 현지 직원도 8만2000명을 웃돈다. 이처럼 광범위한 해외 생산망은 세탁기 등 가전사업에서 LG전자가 글로벌 1위를 향해 순항하는 토대가 됐다.

 

(1) 시베리아 동토부터 아프리카 오지까지…

시베리아 동토에서 아프리카 오지까지.건국 초기 한반도에 국한됐던 우리 기업의 해외 영토가 무한대로 넓어지고 있다. 변변한 판매 네트워크도 없던 시절 비즈니스 맨들이 서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시장을 개척한 결과다.

이제 수출기업뿐 아니라 SK 롯데 아모레퍼시픽 CJ 신세계이마트 등 내수 기업들도 글로벌 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차이나 인사이더(중국 속으로)'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고 제2 본사를 중국에 세우기로 할 만큼 글로벌화에 열정적이다.

SK에너지는 최근 아시아 에너지 기업으로는 처음 중국 우한(武漢)시에 현지 국영 에너지 회사인 시노펙(SINOPEC)이 추진하는 연산 8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공장 합작사업에 참여하기로 계약했다.

최태원 회장이 2년간 중국을 드나들며 해외 메이저 업체들이 주로 맡아오던 에틸렌 생산사업 진출을 마침내 성공시켰다. 또 휘발유 경유 등의 내수 판매보다 수출이 더 많은 '수출 기업'으로 이미 탈바꿈했다. 올 상반기 매출(21조5590억원)의 54%인 11조7000억원을 원유를 정제해 만든 휘발유 등을 수출해 벌어들였다. 20여개 수출국에는 인도네시아 등 산유국도 포함돼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향수의 본고장 프랑스에 생산ㆍ판매법인을 세워 '롤리타 렘피카' 브랜드로 향수를 팔고 있다. 제품 개발부터 디자인과 마케팅 등 모든 부문에서 현지 전문가를 채용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 시장에도 2003년부터 진출해 '아모레퍼시픽'브랜드로 고급 백화점 등에 화장품 매장 34곳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선 중산층 이상 여성들을 겨냥한 '라네즈' 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매출 비중이 지난해 기준으로 15.9%에 달한다.

롯데도 식품과 유통,호텔 등 주력 사업 부문에서 공격적인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 식품부문 지주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국내 백화점업계 처음으로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을 열었다. 롯데제과는 베트남 시장에 뛰어들었고 앞서 인도에 세운 롯데인디아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이마트는 중국 할인점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섰다. 상하이 등에 10개 매장을 운영 중인 이마트는 매년 10개 이상 점포를 신규 개설해 2012년까지 50여곳 이상의 점포를 중국에 열 계획이다.

CJ홈쇼핑은 2004년 4월 상하이에 서 시작, 지난해부터는 항저우 창슈 등으로 방송권역을 넓혔다. GS홈쇼핑은 2005년 3월 중국 충칭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도 검토 중이다.

출처 : 한방 전문의가 제안하는 치료적 맞춤운동. 허리디스크 치료법
글쓴이 : 문형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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