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결핵이나 폐렴은 이제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시대가 됐다. 그 대신 요즘 드라마에서는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행복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는 것으로도 부족해 암에 걸리자마자 손써볼 틈도 없이 금세 하늘나라로 가버리는 극적 요소가 더해진다.
30여 년 동안 암을 전문으로 치료해온 의사로서 허구임을 알면서도 이런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나 사람들이 저 모습을 진짜라고 믿으면 어쩌나 해서다.
현실에서는 암 때문에, 그것도 드라마처럼 빨리 죽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기 때문이다. 암 환자의 직접적인 死因(사인)이 암인 것은 지금까지 딱 한번밖에 본 적이 없다. 암 환자의 진짜 사망원인은 대부분 영양실조, 즉 굶어 죽는다는 말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가 食慾부진 불러
미국 통계에 의하면 암 환자의 80%는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고, 이 중 20%는 영양실조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양실조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공포심에 있다는 것이다. 암은 곧 죽음이라는 심리적 불안감이 영양실조의 원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암이 환자를 죽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환자 스스로 먼저, 미리 죽어가는 것이다.
발견 당시 10~20g밖에 되지 않는 암 덩어리가 60~70kg이나 되는 성인을 쉽게 제압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가 암 선고를 받으면 다른 것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암=죽음’이라는 공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암 환자는 암 선고를 받은 후 죽음이라는 공포심에 붙들려 자포자기, 절망 등 심리적 공황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입맛이 떨어지게 된다. 가벼운 감기에도 음식을 멀리하는데, 하물며 암에 걸렸다는데 입맛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암은 감기처럼 하루 이틀, 길어야 일주일 정도 앓고 끝낼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오랫동안 힘든 치료과정을 견뎌야 치유가 되는 병이다. 이 기간 동안 심리적인 이유로 적게 섭취하면 힘이 빠져 먹을 기운마저 없어지고, 결국 밥맛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몸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스트레스와 공포심은 정상적인 에너지 대사 과정도 멈추게 한다. 모든 음식은 소화가 돼서 에너지로 바뀌어야 그 에너지를 소비하며 활동할 수 있게 되는데, 암 환자들의 경우 그나마도 섭취한 음식이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는 대사 장애가 일어나 더욱 문제가 된다.
이렇게 영양부족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지면, 우리 몸의 암 세포를 공격해야 할 면역기능과 自家(자가)치유력이 약해진다. 내 몸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떨어지면 결국 어떤 약을 써도 듣지 않는다. 암인 줄 모르고 병원을 찾았던 환자가 암 판정을 받은 뒤 급격하게 암이 진행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물론 食慾(식욕)부진이 항암제 치료나 극심한 통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인 현상으로 암 환자의 식욕부진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암 환자의 식욕부진은 심리적인 데 원인이 있다.
암 환자들은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다. 어떤 사람은 육류를 아예 끊고 채소만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암에 좋다는 식품을 구해 먹기도 한다. 이런 식이요법에 대해서는 의사, 영양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필자의 경우 잘 먹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맘껏 먹으라고 조언하는 쪽이다.
물론 좋고 깨끗하고 영양학적으로 균형 있는 식단이면 더더욱 좋겠지만, 수십 년 동안 몸에 익은 식단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몸이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노라면 건강한 사람이라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물며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로서는 체력적 소모와 더불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영양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건강보조식품이 심적인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면 먹으라고 권한다. 다만 비타민이라든지 홍삼 등 검증된 것 위주로 선택해야 한다. 암에 걸리면 우리나라는 정식 의료인보다 돈을 노리는 非(비)의료인이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환자들이 이런 보조식품을 선택하는 과정에 민간요법의 꾐에 넘어가는 사례가 많다. 민간요법을 통한 치료가 표준 암 치료보다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
내 몸 안의 암, 겁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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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으로 암 세포만 정확하게 도려내듯 태워 없애는 제4세대 사이버나이프 시술 장비. |
표준 암 치료는 외과적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화학요법) 등 3가지를 꼽는다. 표준 암 치료를 해보고도 해결되지 않을 때 민간요법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다 실패하면 표준 암 치료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이요법, 표준치료, 민간요법 등 암 치료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이런 치료법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가짐이다.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 꼭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치료 예후도 좋은 경우가 많다.
우리 몸에서는 임파시스템, 골수 등에서 암을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생산된다. 이런 면역체계가 정신상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져 왔고, 치료현장에서 검증되곤 했다.
암 완치율이 미국의 경우 70%를 웃돌고 있고, 우리나라도 6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초기 암은 90% 이상,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갑상선암의 경우 90%까지 완치된다. 암 완치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높다. 암 환자는 암이 이미 몸 안에 있으므로 더 이상 암을 겁낼 필요가 없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암 완치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초기암 치료에 실패하면 더 이상 손을 쓸 방도가 없었지만 지금은 의학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다. 현대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의료기술의 눈부신 진화를 견인했다. 의학 중에서도 특히 암과 관련된 치료약, 치료기기 등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과거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실패율이 높아 포기했던 암까지도 치료를 가능케 해주었다. 사이버나이프, 양성자치료기, 토모테라피, 감마나이프, 노발리스, 하이프 등 다양한 치료기기의 등장으로 환자들의 고통이 과거 절제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보다 획기적으로 줄었다. 또 치료율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고단위 방사선을 이용해 암 부위만 정확히 도려낸 듯 태워 없애는 사이버나이프 시술의 경우 벌써 4세대까지 진화한 상태다. 척추암의 경우 중요한 신경다발 때문에 외과적 수술로는 성공률이 16%에 그치는 데다 잘못하면 하반신이 마비될 가능성이 많아 과거에는 치료를 포기하거나 증상 완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이버나이프 시술 덕분에 지금은 장애호전 및 통증완화 등 90% 이상의 치료 성과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암의 위치를 체크하는 금침 등을 삽입하지 않아 無(무)통증, 무수혈, 무마취의 3무 치료가 가능하고, 부작용이나 합병증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살 수 있다고 마음먹은 순간 암 극복 시작돼
필자가 보는 폐암 환자 중에도 이 치료로 완치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사이버나이프 시술법 때문에 이 환자가 완치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시술법이 없었다면 치료하기 힘든 환자임에는 분명하지만, 환자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가 없었다면 완치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환자는 폐암 선고를 받고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문의하는 등 치료에 적극적이었다.
전국적으로 한해 약 50만명의 암 환자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고, 사망원인 1위 자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암이 지키고 있다. 우리 시대에 대규모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 이 통계 순위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암을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음에도 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10여 년 전만 해도 자연사로 여겼던 죽음조차도 암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암의 발견이 환자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암 환자의 증가는 반가운 일이다. 암 조기진단 기술의 발전은 치유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암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대처방안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조기 발견’
암 전문의인 까닭에 종종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암 예방 수칙은 ‘담배 피우지 마라’ ‘술 먹지 마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 ‘매일매일 운동해라’ ‘균형 잡힌 식사를 해라’ 등이다.
이 규칙은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천하기 힘든 이런 조건을 지키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암이 발병하는 원인은 너무도 다양해 한두 가지 지킨다고 생길 암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 피할 수 없는 것이 암이라면 결국 가장 좋은 예방법은 조기 발견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1~2년에 한 번씩은 암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가족력이 있거나 암이 걸렸던 사람이라면 더욱 필요하다.
암에 걸린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말이 있다. “얼마나 살수 있을까요?” 어떤 의사는 3개월, 어떤 의사는 6개월이라고 말한다지만, 필자는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 할지라도 사람의 목숨이 언제 다하는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살 날을 이야기해 주는 의사조차 자신이 얼마나 살지 모른다. 환자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면서 생긴 교통사고로 방금 전 자신이 3개월이라고 진단했던 환자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암을 늦게 발견했어도 완쾌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암은 완치됐지만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나고 자라 죽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암 또한 삶을 마감하는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자. 암으로 판명된 환자는 사실 검사결과가 나오기 직전까지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암이 몸 속에 함께 자라왔음에도 일상생활을 해온 것이다. 암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여러 번 밝혔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암을 극복하는 긍정의 힘을 길러야 한다. 이 힘의 원천은 다양하다.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발전된 의학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살 수 있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암 극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