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보은행복

[스크랩] 낡은 밥보자기 한 장

good해월 2009. 6. 12. 11:36

 

 

 

낡은 밥보자기 한 장

 


머리가 반백이 다 된 초로의 신사가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을 어느 정도 진정 시키고 나더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탁자에 펼쳐 놓았다


오마니 

이게 바로 그날 아침 저에게 밥을 싸 줬던 그 보자기입네다


원래는 흰 광목이였을 그 보자기는

약간 누렇게 변색된 채 서너 개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50년 전 母子가 헤어지던 그날 아침에도

어머니는 그 밥보자기를 아들의 손에 쥐어 보냈을 것이다


그 보자기는 모자간의 애틋한 정이며

서로 떨어져 살아야 했던 한스런 세월의 넓이를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진하게 보여 주었다


이 장면은 실제로

지난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도시락이 흔히 길손이 떠나기 직전에 건네기

마련이라서 그 아들에게는 자기 어머니의 정성과

체취를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상징이 되었으리라


텔레비전에 비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래 전의 창피스러운 기억 하나를 떠 올렸다


어느 날 학교로 가기전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니 콩자반에

보리밥 뿐이어서 그걸 그냥 내팽게치고 학교에 갔던 것이다


보리밥이야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날리 없었지만

자주 콩자반을 싸 온다고 해서 아이들이 “맴생이똥”이라는

별명을 붙여 나를 놀리곤 하던 때 였었기에 정말 싫었다


맴생이는 흑염소를 일컷는

사투리인데 검정콩처럼 보이는 똥을 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두고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날 3교시가 끝나갈 무렵

나는 창문 밖에 서성거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철부지 자식이었지만 긴긴 여름 한낮을 굶을

자식 생각에 학교까지 도시락을 들고 나타나신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교까지 십리 길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남의 집 삯일을 하셨던 어머니는 십 리를 오고 간

시간만큼 벌충하느라 그날 내가 맛있게 도시락을 먹던

시간에도 아마 쉬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동생들에게는 비밀이다 잉

그러니 밥풀도 한 톨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알았지”


도시락을 열어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하얀 이밥에 계란말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도시락을 우쭐대며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어머니 사랑을 그 일로 기억하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그 장면과 겹쳐지면서

나는 한순간 참으로 아뜩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모자가 만약 저들처럼 그 길로 이산가족이 되어

헤어져 살아야 했다면  나는 그날 아침 내팽개친

  밥보자기를 얼마나 한스럽게 가슴에 펼쳐두고 살아야 했을까 ?

 


글 小說家 이병천 님                    착한사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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