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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 성찰의 방법

good해월 2009. 9. 7. 08:17

 

인생을 성찰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삶을 반추하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는
묘비명 써보기 강좌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묘비명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흔적이다.

이것이 죽음과 함께 씻기거나 잊히지 않는 건
‘죽음의 마당’이라는 기록의 시점 때문.
백조가 최후에 단 한 번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울 듯,
인간도 죽음을 예감하고야 실핏줄 끝까지 진솔해진다.
누군가의 발가벗은 마지막 외침 앞에서 산 자는 옷깃을 여미고,
때로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가려온 가면 뒤의 허공을 모골이 송연하게 바라본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세계적 대문호조차 인생 막바지에 무슨 여한이 이리 남았을까.

힘을 다해 살아놓고도 성에 차지 않은 이가 버나드 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행(奇行)으로 이름을 날린 승려이자 화가 중광은 ‘괜히 왔다 간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그의 파격적인 삶조차 스스로의 기준에는 미달이었을까.

천상병 시인의 묘비에는 유명한 ‘귀천(歸天)’의 한 구절이 쓰여 있다.
삶이란 ‘세상 소풍’이었을 뿐이며 죽음을 통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그의 생사관은 삶을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간 것뿐’이다.
라즈니시 등 여러 철학자의 묘비명과도 상통한다.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시편에 나온 한 구절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묘비명을 통해 소임을 다한 종교인의,
걸릴 것 없이 홀가분한 생사관을 보여줬다.

간결한 한마디로 세상 터에 굵은 존재증명을 찍어두려는 이들도 있다.
평범한 사람 중에도 묘비명을 미리 써보려는 이가 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묘비명은 죽은 사람이나 쓰는 거라며 기피하던 분위기였는데,
최근엔 학교, 시민단체는 물론 기업체 등에서도
묘비명 쓰기를 포함한 웰다잉 교육이 부쩍 늘었다..

묘비명 쓰기 바람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명상 수준이 한층 깊어졌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휩쓸려가는 세속의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 거리를 갖고
삶을 조망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묘비명 쓰기의 유효성을 찾는다.
욕망에 흐려져 있는 삶의 참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죽음의 시점으로 몇 발 앞서 가본다는 것.

삶의 한복판에 묘비명을 세우는 것은
더 나은 죽음 준비를 통해 삶 자체를 살찌울 수 있는 일이다.
묘비명의 사전적 의미는 묘비에 새겨 고인을 기념하는 시문이나 명문이다.
유족이 고인을 잘 아는 명망가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본인 스스로 써둘 수도 있다.
우리 조상도 죽기 전에 묘비명을 준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가까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부터 적어보라.
묘비명이란 결국 망자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자손, 친지, 친구, 이웃, 직장동료부터 국가, 세상에 이르기까지
꼭 하고픈 말을 쓰다 보면 자신의 삶에 정말 소중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절로 떠오른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거나 기뻤거나 후회스럽던 순간을 되짚어보는 것도 좋다.
묘비명을 한 번 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써보는 것도 괜찮다.
처절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본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법.
망각의 물결이 겨우 살려놓은 등불을 덮칠 때마다
묘비명을 부싯돌 삼아 삶의 길을 밝혀줄 새로운 등불을 켜보자.




 



 

출처 : synnage
글쓴이 : 신나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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