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으로행복

[스크랩] 12세 탈북소녀 "남녘땅 첫 한가위 가슴 설레요"-2009.10.1.조선

good해월 2009. 10. 6. 14:21

 

 

12세 탈북소녀 "남녘땅 첫 한가위 가슴 설레요"

생모는 中공안에 잡혀 北送… 태국 거쳐 1만㎞ 대장정
지난 4월 한국 땅 밟아… 수원 최영한씨 부부가 입양
엄마·아빠 불러보라고 하자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최영한(46)씨네 집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이 뽀얗고 눈빛이 똘똘한 이 집 막내딸 연아(가명·12)가 책가방을 던지며 "엄마~" 하고 최씨 품에 폭 안겼다. 연아는 엄마 품에 코를 파묻고 "엄마, 나 새 필통 사줘" 했다. 최씨가 "필통 3개나 있잖아? 안돼" 하자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엄마아~" 했다.

연아 엄마 최씨는 "이번 추석은 우리 가족이 연아랑 맞는 첫 명절"이라고 했다. 연아는 지난 8월 26일 처음으로 최씨 집에 왔다. 그전에는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 있었다. 연아는 탈북자다. 함경북도에 살다가 2년 전 겨울 생모와 둘이서 꽁꽁 언 두만강을 밟고 국경을 넘었다. 모녀가 중국에서 도망다녔다. 생모는 도중에 공안에 붙들려 북송됐다. 그 뒤론 소식을 모른다.

연아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라오스를 거쳐 태국 국경을 넘었다. 총 든 군인과 경찰만 보면 심장이 새처럼 파드닥거렸다. 1만㎞가 넘는 대장정 끝에 연아는 방콕의 이민국 감호소에 들어갔다가 지난 4월 한국에 왔다.

연아처럼 부모 없이 한국에 온 미성년 탈북자를 '무연고 청소년'이라고 한다. 매달 1~2명, 많게는 7~8명씩 한국에 온다. 현재 국내에 총 90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막막해진다. 이들이 국내 가정으로 입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친척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연아는 그마저 없었다. 연아는 통일부에서 연결해주는 지방의 청소년 보호시설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때 조육환(46·회사원)·최영한씨 부부가 "연아를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연아 아버지 조씨는 "10여년 전부터 아내와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입양을 생각해왔다"며 "지인을 통해 연아 사정을 듣고 아내와 상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있는 아들(21)과 고3인 딸(18)도 적극 찬성했다.

한국에서 첫 추석을 맞는 탈북소녀 연아(가명·가운데)가 29일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부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에 온 연아를 조육환씨(왼쪽)와 최영한씨가 가족으로 받아들였다./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지난 8월 20일 하나원에서 부부와 연아가 처음으로 만났다. 연아는 말도 없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최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줌마 아저씨하고 함께 살래?"

연아는 북한 말투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최씨는 "아무래도 힘들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마지막으로 명함과 공중전화카드를 건넸다. 연아가 명함과 카드를 손에 꼭 쥐더니 가슴에 댔다.

다음 날 최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연아였다. 별말도 없었다. 하나원 공중전화 부스에 선 채 "아줌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연아는 전화를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연아가 불쑥 최씨에게 물었다. "며칠 몇 시에 데리러 오실래요?" 하나원 퇴소식(8월 26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연아를 데려온 첫날 최씨는 연아에게 "아줌마, 아저씨라고 하지 말고 엄마, 아빠라고 해보자"고 했다. 연아는 새침하게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잠시 후 자기 방에 들어간 연아가 고개만 쏙 내밀고 "아빠", "엄마" 했다.

연아가 집에 가져온 옷은 팬티 3장, 양말 2켤레, 여름옷 2벌뿐. 다음 날 최씨 부부는 옷을 사러 연아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연아가 부부의 손을 한쪽씩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연아는 나중에 최씨에게 "하나원 있을 때 엄마 아빠하고 손 잡고 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고 했다.

연아는 탈북했던 얘기를 거의 안 한다. 최씨는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말을 안 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밤에 잘 때 자주 움찔움찔 놀라고 '싫어, 안돼!' 같은 잠꼬대를 한다"고 했다.

연아는 어두운 것도, 혼자 자는 것도 싫어한다. 밤마다 최씨 품에 파고든다. 최씨의 팔을 끌어다 팔베개를 하고 최씨의 가슴을 만지면서 잔다. 최씨는 "헤어진 엄마가 많이 그리운 모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연아는 최씨에게 생모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최씨는 "하나원에 있을 때 다른 탈북자들이 '다시는 친아빠, 친엄마 못 만날 거다' '앞으로 한국 양부모가 너를 키워줄 테니 잘 따르라'고 한 모양"이라고 했다.

"우리를 '엄마' '아빠'로 빨리 받아들이는 건 좋은데, 그만큼 상처받은 게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친엄마에 대해서는 당분간 묻지 않을 겁니다. 상처가 되겠죠."

최씨 부부는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으로 올렸을 뿐 아직 법적으로 연아를 입양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조씨는 "입양될 경우 국가에서 주는 복지 혜택이 상당 부분 사라지게 돼 당분간 입양을 미뤘다"고 했다. 최씨는 "그래도 내 딸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연아가 시집가서 손자를 낳아도 내가 길러주겠다"고 했다.

올 추석은 연아가 한국에 와서 맞는 첫 추석이다. 지난달 6일 충남 보령에 있는 큰집에 가서 친척들과 함께 벌초도 하고 성묘도 했다. 연아는 큰어머니와 함께 딴 밤을 한 봉지 들고 와 "엄마, 내가 가시에 손가락 찔려 가면서 딴 거야"라며 최씨에게 내밀었다.

조씨는 "추석 앞두고 통일전망대에 가 보려고 했는데 연아가 어떤 곳인지 알더니 가기를 꺼려서 올해는 관뒀다"며 "아들이 휴가 나오면 맨 먼저 가족사진을 새로 찍으려 한다"고 했다.

추석빔으로 고운 한복을 입은 연아가 최씨의 목에 팔을 감고 "저녁 때 양꼬치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연아는 햄버거·피자·떡볶이보다 양꼬치를 더 좋아한다. 양꼬치는 생모와 생이별한 10살짜리가 이국(異國)의 시장통에서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오물오물 씹어먹던 음식이다.
 
출처 : 하늘나라
글쓴이 : 하늘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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