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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결혼생활 삼십 년동안 21명 출산한 부인

good해월 2009. 11. 24. 21:20

                             

                        결혼생활 삼십 년동안 21명 출산한 부인      


                                                                              글/별과달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고나면 늙고마는 인생, 이라고 합니다. 좋은 시절을 멈춰 놓으려고 저는 십년 전부터 김장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인도네시아 사는 우리 주부들 모두 다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새색시가 좋은 시절을 다 보낼 때까지 과연 몇 명의 아이를 출산 할 수 있을까요? 저희 어머니는 처음 딸 낳고 그 다음 아들 낳고 또 아들을 낳으려다가 딸 여섯까지 낳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아야지 하면서 용하다는 의원에게 한약을 지어 드셨지만 어머니는 저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칠남매를 낳으셨지만 제 고향집 어떤 아주머니는 열 명까지 낳았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새색시가 30여년 동안 21명의 아이를 낳아 떠들썩했습니다. 최다 출산기록으로 연일 방송 신문으로 매스컴을 장식하던 할리마(44세)와 기네스기록 공동보유자 마스웃(55세) 부부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들은 1979년 11월 11일에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까지 딸 10명과 아들 10명 그리고 얼마 전 2008년 4월 5일 딸 하나를 더 낳아서 이제는 21명의 대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화려한 발리시내를 지나 계단식 논을 지나고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소를 물어 찾아가는 동안 나는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얼마나 늙었을까, 몸매는 어느 정도 망가졌을까, 아이를 많이 낳으면 건망증이 심해지는데 자녀들 생일은 다 기억할까’ 그 많은 식구들이 생활하려면 집은 아주 너르겠지‘ 하고.

숲속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같은 골목길이 끝나고 키 작은 건물에 들어섰습니다. 지저분한 개울가에 지어진 집, 대나무로 발을 엮어 벽을 삼아 놓은 집, 그건 움막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집 울타리는 그저 듬성듬성 심겨 진 야자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습니다. 지붕은 천막보다 못하여 소나기도 새겠고 햇살이 지붕을 뚫고 내리 꽂히듯 스며들었습니다. 열린 환경이라 지저분한 개울가의 쓰레기가 태양열에 실실 삶아져 냄새가 진동했고, 팔뚝이 가려워서 보면 흰줄무늬모기들이 티셔츠 속으로 긴 주둥이를 주사기 넣듯이 밀어 넣어 작업 중이었습니다.

  

그들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생후 일주일 된 아기가 누운 마루는 침대 겸 식탁으로 사용 되었고 머리맡에는 모빌대신 파란 바구니가 끈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시들어진 야채들과 구워진 생선 몇 마리가 나란히 누워있었고 허공에 매달린 바구니가 부엌의 찬장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공간이 좁다보니 가스레인지 놓인 곳에서 신생아 누워있는 곳까지 1미터 남짓 떨어진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튀김을 하다 물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펄펄 끓는 기름은 금방이라도 아기 얼굴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던 말든 아기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귀엽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새근새근 잘도 잤습니다. 내가 아기의 손을 만져 보고 있는데 언제 감았는지 파마머리가 거의 사자머리가 된 19번째 딸아이와 20번째 딸, 그러니까 신생아가 21번째 아이니 그에게는 언니가 되는 셈입니다. 갓 태어난 동생이 사랑스러워 자는 입에 과자를 쑤셔 넣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가 말렸더니 19, 20번째가 그만 ‘으앙’ 하고 우는 바람에 부모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할리마씨에게 같은 여자로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뭘 먼저 물어 볼까 생각하는데 그녀가 먼저 나에게 대뜸한다는 소리가

『 Mrs. Kim 혹시 KB 하나요?』

『 네, KB? 』

‘Keluarga Berencana‘ 가족계획 피임을 하느냐? 그 말입니다. 내가 먼저 하려던 질문을 아주머니가 먼저 했으니 나는 금방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더군다나 함께 간 남자 둘이나 옆에 있는데 이 아주머니는 그런 걸 큰소리로 물어왔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더 큰소리로

『 아, KB 그거요. 』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고 어깨를 떨며 하는 말

『 나는 겁이 나서 못해서요. 무서워요.』

마구 쏟아져 나오려는 언어들을 순서대로 내뱉으려는지 침을 한번 꿀떡 삼키더니

『 21번째 아이를 낳은 후 산부인과 의사가 나보고 ‘아주머니 KB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계속 아이 낳다가는 30명까지도 낳겠어요. 또 당신은 혈압도 높아 죽을 수도 있어요..’ 나는 그 소리 듣고 집에 오자마자 엉엉 울었어요. 죽는 건 무서워서요. 』


할리마씨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나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아기가 누운 마루에 나란히 앉아 여자와 여자 엄마와 엄마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아이를 그렇게 많이 낳았는데 아기 낳을 때 안 아파요? 』

『 낳을 때 배가 사르르 아파요. 』

나는 배가 쩌릿쩌릿 아파서 돌돌 굴렀는데 배가 사르르 아프다는 너무 가벼운 그 말에 나는 동의나 공감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러면 출산하다가 생긴 우스운 일은 없나요? 』

『 당연히 있지요. 12번째 아이는 조산소로 걸어 가다가 힘들어 인력거를 탔는데 그 위에서 배가 사르르 아프더니 아기가 나와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받았어요. 』

한 생명이 탄생하는 소중한 순간을 이야기하는데 아주머니는 무슨 아기 귀저기 갈아 채우듯이 아주 쉽게 말하며 현장검증 재현하듯이 자세하게 보여줬습니다.

『 소문에 들으니 22번째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모든 생활과 학비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있다는데 어떻게 낳을 계획입니까? 』

『 나, 이제 아이 낳은 일은 정말 지쳤어요.』

그랬습니다. 아이를 낳는 일에 시달려서 이젠 지쳤다는 말이 어쩌면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살림에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도전적인 희망이 살짝 묻어있었습니다.

 

 

할리마씨는 얼마 전 현지신문사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대형 슈퍼에 가서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골리라고 했는데 너무 즐거웠다고 자랑했습니다. 아이들이 말 타는 모습이 즐거웠다며 말 타는 흉내까지 내보였습니다. 화장품이라고는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고 그때 처음으로 사과와 배를 먹어 보았다고 했습니다.

남의 집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떠올라 그 집에 가는데 빈손으로 가기 뭣해서 라면 한 박스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가지고 간 라면으로 가족들이 점심으로 먹는데 아이들이 맛있다고 잘 먹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수박 한통하고 아이스크림도 잔뜩 사가지고 올 걸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여러 곳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정말 내 주머니의 것을 다 털어주고 싶을 때가 아주 많습니다.

 

인도네시아 주민등록등본을 보니 총 14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할리마씨네는 식구의 수가 많고 칸이 모자라 두 장에 사용하고 있었으며 거의 매년마다 출생신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할리마씨는 발리에서 살지만 형편이 너무 어려워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자녀들은 모두 자카르타 근처 뻐말랑 친정집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일 년에 한번 이슬람 며절인 '러바란'에 모인다고 했는데 대가족이 움직일려면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 그것도 해를 건너서 만난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자녀들이 온전하게 자라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며 신이 주신 축복을 어떻게 거절 할 수가 있느냐?' 하던 그의 남편, '잔칫집에 갈 새옷 한 벌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할리마씨의 그 소원 같은 말이 자꾸만 내 귀에서 살아 들려옵니다.

그날 집에서 만난 자녀들은 스물 살에 가까운 아들 둘과 사춘기를 막 지난 딸이 하청 받은 천이라며 염색잡업을 했습니다. 『 동생이 귀엽지?하고 묻는 내 말에 그 사춘기소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엄마가 또 동생 낳을까봐 창피하기도 하고 이제는 겁이나요.

 

                   인도네시아 한인뉴스[별과달이 비추는 오지의 마을] 2009년 12월호

출처 : 별과달의 이미지
글쓴이 : 별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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