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 노사문제도 준법이 먼저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사실상 중국의'심장부' 개방·서비스개혁 소홀땐 일자리 중국에 빼앗길 것 "교육·의료산업 개방… 아시아 허브 만들어야"
올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릴 때 한국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3년째 이어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뜬히 이겨낸 선두주자로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우뚝 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위기의 패자가 되어 정상들의 모임에 '샴페인 값'이나 지불하는 처량한 신세가 돼 있을까.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경제의 진퇴(進退)와 관련해 무엇보다 '중국', '개방', '노사개혁', '법 지키기'를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우선 미국에 맞먹는 거대 경제권으로 떠오른 중국을 활용하지 못하면 한국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했다. "과거 2000년 동안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 중국은 세계 경제의 수퍼 파워였고,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GDP가 세계 전체의 33%를 차지했다"면서 "지금 중국은 그런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단합(사회통합)하지 못하고, 서비스 시장 규제개혁에 실패할 경우 생각보다 이른 시일 내에 중국의 주변국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의 최우선 순위는 '노사개혁'인데,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노사개혁을 하지 못하면 많은 일자리가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100년 전만 해도 국제회의에 끼지도 못했던 대한민국이 세계경제의 핵심 국제회의 좌장이 된 것에 대해 "지금까지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쌓아온 국력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변곡점이 될 2010년, 한국경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자 본지는 재무부 장관과 경제수석을 지낸 한국경제의 리더 중 한 사람인 사공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지난달 이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중국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한국엔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중국은 나라가 크다. 경제력에서도 곧 일본을 추월하고 좀 있으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 (중국경제의) 덩치는 영향력이다. 우리가 지혜롭다면 이것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 미국 경제계, 학계 등의 넓은 인맥과 재무부 장관, 경제수석 등 풍부한 경험등을 바탕으로 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공일 무역협회장. 사공 위원장은 “G20정상회의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국가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베이징·상하이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내에 못 가는 (중국 내) 영토가 많다. 하지만 서울에서 베이징·상하이까지 비행기로 2시간도 안 걸린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다는 이점이 있다. 중국 시장엔 세계 최고의 글로벌 500대 기업이 다 들어와 있다. 우리가 지혜롭다면 이 점을 이용해야 한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임직원과 가족들을 (한국시장에) 유치해야 한다. 2시간 거리라서 가능하다. 교육·의료 쪽을 개방하면 얼마나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겠나. 교육·의료 개방을 서둘러야 한다."
―예컨대 중국 기업들이 무안에 공단을 만들겠다고 한다. 중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한편으론 우리에게 고민일 수 있다. 우리는 개방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중국의 진입 속도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세계 어느 국가의 어느 기업이든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다. 개방하고 대외협력하고…. 이 길밖에 없다. 우리나라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야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일자리가 생긴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이 안 될 때는, 있던 우리 기업까지 해외로 나간다. 외국 기업이 안 들어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우리 젊은이들 일자리는 어떡하나. 전부 이민 가야 되나. 이 정부가 처음 들어와서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만든다고 하니까 '이 정부는 친대기업이다'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친기업의 목적이 뭔가. 친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근로자를 도와주는 '근로자 친화적(worker-friendly)'인 것 아닌가."
―중국경제는 이미 한국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빠른 속도로 더 밀착될 것이다. 중국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중국 인구가 13억이다. 그중 1%만 해도 몇명인가. 지금도 1%는 상당수가 우리나라보다 잘살고 있다. 1%는 1300만명, 10%면 1억3000만명이다. 의료산업과 교육산업은 우리나라가 허브가 될 수 있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이란 무엇인가.
"기업 하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게 법을 지키는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서는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거래비용이 올라간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선 기업인은 많은 시간을 내서 (각종 법규를 확인하려고) 공무원을 만나야 하고, (그들과) 밥도 먹어야 하고, 모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런데 법대로 한다고 하면, 책만 보면 된다. 미국에 투자가 많은 것도 법을 지키기 때문이다. 노사문제에서도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법을 지키는 것이다."
―올해에 우리가 G20 정상회의를 연다. G20은 경제위기 후에 세계경제정책의 공조를 논의하는 최고 포럼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이 그런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지구촌을 하나의 동(洞)이라고 하자. 모든 동민이 참여하는 기구가 UN이다. UN은 동민회의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이 동민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한 게 1991년이다. 20년도 채 안 됐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 우리나라는 동민 취급도 못 받았다. 이준 특사가 회의장에 못 들어가고 분사(憤死)했다. 이랬던 나라가 (G20 정상회의) 좌장이 된 거다."
―올해 회의를 한국경제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과거에 우리나라가 국제회의에 가면 의제가 정해져 있었다. 주어진 의제에 대해 찬성·반대 논리를 준비하면 됐다. 이제는 우리가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 의제를 만들어, 기라성 같은 나라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설득해야 한다. 좋은 성과를 내면 우리나라의 국격(國格)과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G20이 아직 UN처럼 정식 국제기구는 아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올해에 G20 공식 사무국 설치나 '서울 이니셔티브'를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
"G20의 제도화 논의가 올해 11월 서울에서 있을 걸로 본다. 물론 조심스럽다. (소외되는 나라들은) '왜 나는 안 끼워 주느냐'고 생각할 수 있는 나라도 있고, G7 중 일부 나라는 왜 스무 나라로 늘리려 하느냐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갈 거다. G20이 지금 세계 전체 GDP의 85% 정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대표성과 포괄성이 있기 때문이다."
―G20의 제도화 외에, 어떤 주제가 논의될 계획인가.
"경제개발에 관한 의제도 다루어질 거다. 개발도상국에 도움이 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교육 확산이 주제가 될 것이다. 또 에너지 안보·식량 안보 등의 주제도 구상하고 있다. 내년에 세계은행·IMF·OECD 등과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