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국의 미스터리 - 팔만대장경의 신비
16년의 제작 기간 중에 판각기간은 약 12년 정도이다. 연도에 따라 판각량은 달랐지만 이 12년 동안에 81,340여판, 글자는 5200만 자 가량을 어떻게 판각하였는지 의문이다. 아주 숙달된 각수로 하여금 옛날 방식으로 대장경판을 판각시켜 보았더니 하루에 20여자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당시 판각에 참여한 각수를 추정해 보면 약 593명이 된다. 그러니까 593명의 각수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12년동안 판각만 했다는 이야기다. 593명의 아주 능숙한 각수가 존재했었는지에 대해선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매년 고르게 판각한 것이 아니어서 어떤 해에는 약 1,500명 이상의 각수가 참여했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흔히 강화도에서 제작되어 그 곳의 선원사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어째서 현재의 해인사로 오게 되었는가? 거기에 대한 자료가 많지 못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그것들을 살펴보자. 강화도가 아닌 남해나 거제도 등에서 새겨서 해인사로 가져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조금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대장경판이 원래 두 벌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한 벌은 남해나 거제도에서 나무를 가져와 해안사에서 새겼고 또 하나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나무를 실어다가 강화도에서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판각 위치나 옮겨온 경로에 대한 문헌의 기록과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벌을 새기는데도 많은 국력이 동원되었는데 두 벌이나 만들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있다.
팔만 대장경을 지식인에서 찾아봤습니다. 팔만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 부릅니다. 팔만대장경의 유래. 팔만대장경은 몽고침략시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만든 것입니다. 당시 몽고침략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이죠. (뭐 유래는 설명할 것이 없네요....) 팔만대장경의 우수성 팔만대장경은 지금으로 부터 약 80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관상태가 매우 좋고 당시 불교경전의 총합이라 볼정도로 많은 내용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장경은 보기 드뭅니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에 기록됨으로서 국제적인 인증도 받고 있고요. 팔만대장경의 좋은점(근데 우수성이랑 좋은점이랑 똑같은거 아닌가요?그래서 딴거 넣습니다.) 팔만대장경의 쓰인 나무는 제주도·완도·거제도 등에서 나는 자작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나무를 바닷물에 절인 다음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 사용하였습니다. 퀴즈.(등급하) 팔만대장경이 현재 보관되고 있는 사찰은?(답 : 해인사) 퀴즈.(등급중) 팔만대장경을 만들때 이를 총괄하고 있던 고려시대기구는?(답 : 대장도감) 퀴즈.(등급상) 고려 고종때 만들어진 이 팔만대장경은 몽고침략을 막기위한 구실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하여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을 기반으로 다시 만들어진 것인데요, 그렇다면 이 팔만대장경을 다른 이름으로 무엇이라 할까요? (답 : 재조대장경)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현종 때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합니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입니다. 크기는 가로 84.6㎝, 세로 24㎝이고 한지에 인쇄하였다. 판의 끝에는 경전의 이름과 권수의 간행 차례가 기록되어 있다. 천자문 순서대로 새겨 놓았는데 총 1,511부 6,802권 81,137판으로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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