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행복

[스크랩] 스님, 어떻게 하면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요?

good해월 2010. 4. 9. 14:05

 

[질문]

 

담배... 어떻게.... 그 생각을 멈출수 있을까요...

 ㅠㅠ... 가슴이 아픈데... 계속 피우게 되네요...엉엉...

 맛이 없는것도 아니고 맛이 있는것도 아니고...

 끊는것일까요... 생각을 버리는 것일까요... 집착을 버리는 것일까요...

 

[답변]

 

담배를 피워보지 못해,

끊어본 적도 없다보니

사실 이 방법을 직접 실천해 보고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담배 뿐 아니라,

모든 중독적인 것들을 끊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려 보지요.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담배, 술, 마약, 커피, 콜라, 등등

많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말 그대로 중독적인 것은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그 중독적인 것에 노예가 되어

휩쓸리게 마련입니다.

 

한 번 빠지고 나면

끊고 싶어도 잘 안 되고,

빠져나오고 싶어도 잘 안 됩니다.

 

그럼 방법이 없을까요?

일반적으로는 방법이 잘 없습니다.

정말 힘들다는 얘기지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중독적인 것과 싸워 이기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정신력으로 그것과 싸워서

영광스럽게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 있겠지요.

담배, 술, 마약 등을 끊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

딱 끊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방법이 일반적인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어렵다는 얘기지요.

 

그리고 사실 이 방법은

제가 앞으로 말씀드릴 후자의 방법보다

그다지 권장해 드릴 만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중독적인 대상과 싸워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중독적인 대상을 적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나와 중독적 대상 둘을 나누어 놓게 됩니다.

 

싸워 이겨야 겠다고 생각하고,

끊어 없애야 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그 중독적인 대상을

거부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서 강하게 거부를 하게 되면

사실은 그것이 더욱 큰 에너지를 받게 됩니다.

거부하는 에너지, 미워하는 에너지를 먹고서는

오히려 덩치를 키우게 된다는 말입니다.

 

거부하는 바로 그것이 계속 지속되게 된단 말입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거부하면 지속됩니다.

거부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에너지를 키우는 꼴이 되고 마는 겁니다.

 

예를 들면요,

제가 어릴적 학생 시절에 태권도 선수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시합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몸무게 감량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운동을 하고 나서 땀이 많이 나니까

얼마나 물이 먹고 싶겠어요.

그런데도 물을 벌컥벌컥 먹지 못합니다.

운동을 몇 시간 하고 나서 그냥 잡니다.

물 먹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참고 그냥 잡니다.

 

또 배는 얼마나 고픈지 몰라요.

다른 사람들 라면 하나 끓여 먹는 것을 보면

너무 먹고 싶어서 미치겠는 겁니다.

그런데 절대 먹을 수는 없어요.

몸무게가 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시합 끝나고 나면

밤에 너무 많이 먹게 됩니다.

못 먹었던 것을 시합 끝나고 나서 엄청 먹게 되요.

안 먹어야 된다는 그 생각에 빠지다 보니

오히려 먹고 싶은 그 간절함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즉, 거부하는 것이 지속되는 것이지요.

밤에 뭘 먹으면 안된다는 그 생각이 너무 크니까,

오히려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고,

그걸 꾹 눌러 참고 안 먹으려면 더 많이 힘이 듭니다.

정신력이 더 많이 소모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밤에 음식 안 먹을려고 무단히도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예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살을 빼야 된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그냥 밤에 아무것도 안 먹어요.

다른 사람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게 크게 신경을 안 쓰게 됩니다.

아주 단순하게 '그냥 먹지 말자' 하고 결심을 하게 되고,

그런 결심이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닙니다.

'반드시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고집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거부감이 없으면,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겁니다.

그러면 먹고 싶지만 안 먹는데 에너지가 별로 소모가 안 됩니다.

그냥 먹고 싶지만 참을 수 있고,

참을 만 하단 말이지요.

 

그런데 못 하게 해 보세요.

절대 밤에 음식 먹지 마라고 못 박아 놓으면,

사람 마음이 더 먹고 싶단 말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중독적인 모든 것들도

그것을 '절대' 하지 마라, 고 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집니다.

 

거부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거부하는 바로 그것이 지속됩니다.

중독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그것을 끊어없애기 위해 그것과 싸우고 투쟁해서,

승리하는 방식은 근원적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칫 중독적인 것에 더 중독되는 결과를 초래하곤 합니다.

 

그래서 거식증과 폭식증이 반복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음식을 안 먹어야 겠다는데 집착이 심한 사람은

안 먹고 안 먹고 안 먹는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요.

먹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가면 결국 눌러 참고 참고 참다가

그냥 에너지가 폭발하는 겁니다.

폭발해서 그  때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계속해서 미친듯이 먹어 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식증에서 갑자기 폭식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극과 극은 통해요.

어느 한 쪽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면

그 반대편, 반대 급부도 상승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모두가 파장이라고 했는데요,

파장이라는 것의 특성이

어느 한 쪽이 크게 올라가면

반대로 내려가는 파장도 증폭이 커지는 법입니다.

 

조금 장황하게 설명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중독적인 것을 끊어 없애야 된다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너무 집착해서 중독적인 대상을 끊어 없애려고,

그것과  싸우고, 투쟁해서 승리를 얻어내는 방식은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 반대급부도 함께 상승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아요.

중도를 지키는 것이 참 어려운 법입니다.

중독적인 것을 너무 싫어해서 끊어 없애려고 너무 집착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그냥 중독되도록 내버려 두고 마음껏 중독이 되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조화로운 중도를 실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중도는 언제나 자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즉, 중독적인 대상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워 이겨서 중독적인 대상에게 승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비로운 방식으로 대해야 되요.

중독적인 대상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거부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쁜' 어떤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면, 벌써 중도에 어긋나서,

한 쪽에 치우치게 됩니다.

 

먼저 이것을 기억하세요.

중독적인 대상을 자비로써 사랑하라,

결코 그것을 미워함으로써 싸워 이기려 하지 말라.

이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대상과 나를 둘로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중독적인 대상과 나는 결코 둘이 아니예요.

둘로 나누고, 그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과 싸워 이기려는 생각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둘로 나누지 않는 대평등의 바라봄을

불교에서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무분별, 비폭력, 무집착이라고도 말하지요.

 

다시말해 지혜와 자비의 방식으로

중독적인 대상을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알아차림, 바라봄, 관이라는 것이 바로

지혜와 자비에 대한

가장 분명한 실천 방법입니다.

 

중독적인 대상을,

중독적인 마음을,

담배를,

담배 피고 싶은 마음을,

담배 피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

바로 그 때

있는 그대로 그 느낌, 욕구, 생각 등을

잘 살피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싸워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저 편견 없이, 적과 아군의 구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

그 둘 사이는 나뉘지 않고 하나가 됩니다.

 

가장 온전한 사랑과 자비는

좋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고 싫어하는 양 극단의 분별을 놓아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좋고 싫음 없이 바라봐 주는데 있습니다.

 

관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고, 자비의 원천입니다.

 

담배를 피고 싶을 때,

그 마음, 그 중독적인 마음,

담배 피고 싶어 미치겠는 그 마음을

잘 관찰해 보세요.

 

선방에 가서 힘들게 참선을 배우려고 애쓸 것 없이,

수련회나 템플 스테이에 가서 애써서 힘들게 수행할 것 없이,

담배 피고 싶을 때,

마약에 손을 대고 싶을 때,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을 때,

그 모든 때에

바로 그것을 하고 싶은 중독적인 마음이 드는 그 순간을

우리의 성스러운 참선 시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선방 가서 참선하는 것 보다,

담배 피고 싶은 그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더 생생하고,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실천할 수 있는 실천 수행의 방법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비폭력적이고,

자비로운 방식이며,

둘로 나누지 않는 방식이고,

거부하지 않는 방식이며,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다만 그것은 직접적으로 눈에 띄게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선방에 다닌다 생각하시고,

수련원에 입방했다 생각하시고,

절 수행을 매일 한다 생각하시고,

꾸준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독적인 것을 하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을

참선의 순간으로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중독적인 것에서 놓여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출처 : 목탁소리(www.moktaksori.org)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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