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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교회사

good해월 2010. 7. 23. 08:50

한국 교회사

 


1) 카톨릭의 전래와 박해

(1) 전래

① 임진왜란 때 포르투갈 신부가 종군 신부로서 일본군과 함께 입국하였다.

   1594년 12월 28일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교직자인 포루투갈 신부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가 입국하여 일본의 고메즈 교구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함

② 실학의 발달로 마테오릿치의 ‘천주실의’ 등이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들어옴

③ 1783년 이승훈이 빼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서적을 가지고 들어옴

④ 1794년 12월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전도하다가 순교함

⑤ 프랑스인 신부들이 계속 입국하여 전도하였다.

(2) 박해

① 1801년 신유박해 → 3,000명 순교

② 1839년 기유박해 → 200명 순교

③ 1866년 병인박해 → 신부 7명과 8,000명의 신도가 순교

 


2)  신교의 전래

(1) 선교사 전(前)시대

① 1832년 화란 선교사 구쯜라프가 만주에서 한인에게 선교

② 1865년 토머스 선교사의 대동강변에서 순교 → 개신교의 첫 순교자

③ 1872년 존 로스와 맥킨타이어가 만주에서 개척 전도를 하며 한인에게 전도

④ 1876년 외국에서 한국인 첫 세례 받음

   → 백홍준, 이응찬, 이성하, 김진기

⑤ 1882년 로스역 성경(누가, 요한복음) 발행 반포

⑥ 1883년 송천에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⑦ 1882년 12월 신사 유람단으로 이수정이 일본에 가서 입신, 성경번역

(2) 선교사의 입국

① 1884년 알렌 의사 부부가 입국하여 의료 선교실시

②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정식으로 입국하여 선교사업 시작

③ 계속하여 각 교파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전도에 열심을 다하였다.

 


3) 장로교 총회 조직

(1) 선교사 공의회(公議會)

① 1885년 이미 내한한 북장로교 선교사 5명이 북장로교 선교사회 조직

② 1889년 오스트레일리아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와 연합공의회 조직

   (이듬해 데이비스 목사의 사망으로 자연히 폐지)

③ 1892년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내한하여 1893년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미션회가 조직

④ 1898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오스트레일리아 선교사의 내한으로 계속 합류

⑤ 이때까지는 친목 단체 구실을 했다.

3) 장로교 총회 조직

(1) 선교사 공의회(公議會)

① 1885년 이미 내한한 북장로교 선교사 5명이 북장로교 선교사회 조직

② 1889년 오스트레일리아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와 연합공의회 조직

   (이듬해 데이비스 목사의 사망으로 자연히 폐지)

③ 1892년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내한하여 1893년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미션회가 조직

④ 1898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오스트레일리아 선교사의 내한으로 계속 합류

⑤ 이때까지는 친목 단체 구실을 했다.

(2) 조선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

① 1901년 선교사와 한국인 총 대표가 참석하여 공의회 조직

② 회원 → 장로3인, 조사 6인, 선교사 25인

③ 결의 a. 평양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신학교 설립

        b. 한국 자유 장로회 설립을 위한 위원 선출

(3) 독노회

①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대한민국 예수교 장로회 노회) 조직

② 신학졸업생 7명에게 첫 목사 안수 → 서경조, 한석진, 양전백,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

③ 제주도에 선교사 파송 → 이기풍 목사

④ 의사봉 제정

(4) 예수교 장로회 조선 총회

① 1907년 독노회 조직 이후 교회가 계속 발전하여 7개 노회로 분할하는 동시에 총회 조직

② 1912년 9월 1일 평양서 조직

③ 총회 조직 기념으로 중국 산뚱성에 선교사 파송

   역대 선교사 : 김영훈, 박봉로, 사병순(1913), 박상순, 홍승한, 방효원, 이대영, 방지일, 김호순(여)

 


4)  기독교 조선 감리회 창설

(1) 선교사의 내한

① 1885년 아펜젤러 입국 후에 남,북 감리교회에서 선교사 계속 파송

② 1927년부터 합동운동이 일어나 미국 남,북 감리회 총회의 승인을 받아 조선 감리교회를 조직토록 하였다.

(2) 조직

① 1930년 12월 2일 제1회 총회가 서울 협성신학교에서 개최되어서 제1대 총리사로 양주삼 피선

② 1934년 선교 50주년 기념식 거행

 


5) 신사 참배 강요와 수난

(1) 강요

① 1934년 선교 50주년 희년 행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② 1935년 가을, 숭실 전문학교장 맥큔이 평안지사에게서 신사 참배 강요 받음

③ 1938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 국민의식이라 하여 참배하기로 결의하였다.

   (1954년 제39회 총회가 안동에서 모여 제27회 결의를 취소)

(2) 수난

① 1943년 장로회 총회가 해산되고 일본 기독교단 조선 교단으로 변함

② 1943년 성결교, 안식교, 침례교를 폐쇄

③ 주기철, 최봉석 등 수많은 순교자와 진리 파수 위해 옥고를 당한 많은 산 순교자를 내었고 한국 교회의 대수난기가 되었다.

 


6)  교회의 분열과 합동

(1) 장로교의 제 1차 분열

① 1946년 9월 고려신학교 개교

② 출옥 성도들의 교회 재건안과 일제시 일본 신도에 귀의했던 교직자 사이의 알력

③ 장로교 총회의 고려파 단절

④ 1952년 9월 11일 고려파 총회를 따로 세움

(2) 장로교의 제2차 분열

① 1938년 9월 30일 평양 신학교가 신사 참배 문제로 무기 휴학

② 1939년 가을, 서울에서 조선신학교 개교

③ 해방후(1947년) 조선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에 불만을 품은 조선신학생 51명의 진정서가 총회에 제출되다.

④ 자유주의 신학(김재준 교수 주도) 문제로 1953년에 기독교장로회가 설립되었다.

(3) 장로교의 제3차 분열

① 1959년 9월 대전서 모인 제44회 총회에서 WCC문제와 경기노회 총 대권 문제들로 분열

② 교권과 선교사의 작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세칭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되었다.

(4) 감리교회의 분열과 합동

① 1945년 가을, 감리교 재건 중앙위원회를 조직하여 재건을 논의하였으나 소위 부흥파와 유지파로 분열되었으나 1949년 3월(기독교대한감리회)로 합동하였다.

② 1954년 3월 감독선거로 호헌파가 생겼으나, 1959년 3월 재합동

③ 1975년 총리원측과 총회측으로 분열되었으나, 재합동 운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1978. 5월 현재)

(5) 성결교회의 분열과 합동

① 1943년 12월 29일 총회 해산

② 1945년 11월 9일 재건 총회

③ 1960년에 연합 기관 문제로 분열하여 기독교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6) 장로교의 합동운동

① 승동측과 고신측의 합동

   a. 신학, 주장, 대외관계가 같으므로 1960년 12월에 합동하여 이른바 합동측을 형성

   b. 1962년 고신측 인사들 가운데 환원하여 고신측을 다시 형성

② 합동측과 통합측의 합동모색

   a. 1965년 지방에서 일어남

   b. 1967년에 급진되었고, 쌍방 총회가 위원을 선출하고 합동원칙 세칙까지 작성하고, 1968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대전에서 합동 총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나, 통합측이 여러 가지 이유로 참석하지 않아 백지화되었다.

 


      ※ 간추린 교회사(신학교재 편찬위원회)에서 발췌 p. 243-251.

출처 : 바로알자 신천지
글쓴이 : 루이스벌코프 조직신학 독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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