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사상의 재조명
요즈음 '효'를 이야기 하면 옛날 얘기로 치부하거나
구시대적인 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전통사회의 '효'사상은
그 당시 사회구조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것이므로
지금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현재 적용하고 있는 윤리학적 이론으로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
'효'의 의미는 지난날 잘못 적용해 왔던 가부장적 사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가장 평등하고, 가장 민주적이며, 가장 합리적인 것이다.
'효'가 바른 인간을 만들고 행복한 가정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최선의 방법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효'가 중심이 돼야 바로 서는 가정은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이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최초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삶의 기초가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서도
모든 사람들이 견해를 같이 한다.
인간은 가정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고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초보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며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최초의 규범 역시
가정에서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부부간의 수평적 관계와 부모와 자식의 상하 관계가
공존하는 작은 사회이다.
이곳에서 자녀들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인간애를 배우게 된다.
이처럼 작은 사회인 가정을 바른 질서 속에서 잘 운영하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이 ‘효’는 인간 사회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임에 대하여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가 ‘효’ 사상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효'사상이 우리 사회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급속하게 유입된 서구 문화의 영향이 크다.
서구 문화는 자유와 평등을 근간으로 하면서
인간 관계에 있어서 상하(上下)가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한 것이고 그 근본 바탕에는
개인의 절대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인간은 누구도 누구에게 복종을 강요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좋은 사상인 것 같이 보이나
결론적으로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개인의 절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적인 우리의 ‘효’사상은 의무론적 윤리관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감정과 지각에 의하여 실천하는 것이기 전에
이미 도덕적 규범으로 정해져 있어
부자(父子) 관계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의무이다.
'효'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 없이 부여된 의무로
삶의 과정에서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며
자연법 사상이나 실재론적 윤리관과도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구시대의 전통적인 ‘효’사상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계급주의적 위계질서 하에서 성립되었기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 때문에 현대 사회의 흐름과 일치하는 방향에서
부분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좀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물을 이해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일에 있어서
전통적 습관이나 일반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마음내키는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전통적인 규범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효’사상이 인간 최선의 윤리로서
이론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우리 민족에게는 '효'가 일반 규범 즉,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전통적 습관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저력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효’가 맹목적으로 신봉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시대성이나 다른 문명의 주장으로 배척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효’ 사상에 대하여 어떤 부정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효'는 우리 민족에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식케 하는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인간 관계의 도덕적 질서와 교육적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삶의 이치를 알게 하는데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효’사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결속과 질서를 알게 하였고
가족 안에서 도덕의 본산으로서, 인격의 온상으로서,
명분을 소중히 여기는 엄격성을 길러주었고
절개와 지조, 불의에 대한 저항,
인간의 고매한 인격을 낳는 바탕을 만들어 주었으며
붉은 악마들의 함성처럼,3.1 독립만세 운동처럼
민족이 하나되는 결집력을 갖게 하는
교육적 기능을 착실하게 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제의 잔악무도한 민족말살 정책에 항거하여
치열하게 전개했던 독립투쟁이나 광복 60년만에 이룩한 경제성장 등
우리 민족의 활화산 같은 저력은 우리 문화를 대변하는
'효'문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효'가 사회라고 불리우는
가정 등 크고 작은 조직에 의하여
개인의 가치가 크게 희생되는 역기능을 낳기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 보다는 가정과 이웃의 행복을 담보하는
분명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효’사상이 지닌 역기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효'사상이 너무나 왜곡된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효’사상을 현대적으로 잘 가꾸고 정리하여
새롭게 해석하고 바로 인식하여 정착시켜 나간다면
21세기의 화두인 인간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새로운 정신문명의 깃발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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