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행복

[스크랩]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good해월 2012. 6. 18. 20:43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1920년 일제식민지속에서 애국가처럼 불러 온 우리나라 가곡이다

김형준(金亨俊) 작사 홍남파(洪蘭坡)작곡

 

 

 

 

 

 

 

 

 

 

 

 

 

 

 

 

 

 

 

 

 

 

 

 

 

 

 

 

 

 

 

 

 

 

 

 

 

 

 

 

 

 

 

 

 

 

 

 

 

봉선화 / 우리가곡

김형준() 작사 홍난파 ()곡 (1920)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우리나라 최초의 천재 성악가 소프라노 김천애

봉선화 / 홍난파 작곡

 


▒ 우리 가곡 봉선화(鳳仙花), 그리고 대중가요 봉숭아에 대하여..
봉선화(鳳仙花),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사의 가곡
이 노래는 이른바 [예술가요]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기악곡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어서 이 노래의
음악사적 뜻은 매우 크다 하겠다.

마침 이 노래가 나올 즈음부터 장르 구분없이 [창가]라 일컫던 데서 차츰 동요,
가곡, 민요, 대중가요 등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이 노래는, 1921년 홍난파 선생이 직접 써 발표한 단편소설 [처녀혼]의 끝머리에
[애수]라는 제목으로 노랫말 없이 선율만 실렸던 바이올린곡이었는데, 이웃의
김형준 선생이 이 책을 읽다가 1925년 [봉선화]란 이름으로 노랫말을 붙임으로써
가곡의 효시곡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홍난파 선생이 죽은 이듬해인 1942년에는 음반으로 취입하게 되는데,
당시 일본의 히비야 공회당에서 있었던 신인 음악회에서 소프라노 김천애가
부르고서부터 음반 취입도 같이 한 것이다.

음반으로 나오면서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짐작한 바대로이다.
그후 봉선화의 변한 말인 [봉숭아]란 제목으로도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아주 처량한 음색과 선율을 가지고 있다.
노랫말속의 봉숭아는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을 비유한 말이다.

따스한 봄이 오면 다시 민족 혼이 회생하기를 바라는 참으로 애절함이 가득히 깃든
노랫말이다. 3.1운동 실패 후라서 민족의 시대적 분위기를 보더라도 이처럼 처절한
음악은 당시의 보편적 정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노랫말 3절의 [네 형체가~]를 [네 형제가~]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주의한다. [1920년작]

봉선화((鳳仙花)) / 홍난파 작곡 김형중 작사 ▒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 바이올린연주곡


♬ 소프라노



▒▒▒ 봉숭아 / 정태춘 박은옥 ▒▒▒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났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 봉숭아 / 박인옥,정태춘

♬ 봉숭아 / 양현경



▒ 봉숭아꽃의 전설


삼국시대, 백제 땅에서 살고 있었던 한 여인이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꾼 뒤
어여쁜 딸을 낳았답니다.

그 여인은 딸의 이름을 꿈에서 본
봉황과 신선이라는 글씨에서 각각 한 자를 따내서
봉선(鳳仙)이라고 지었는데...
봉선이는 자라면서 거문고를 너무나 잘 뜯었답니다.

마침내 봉선이의 거문고 솜씨는
왕궁에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임금님의 앞에서 거문고를 뜯은 그날,
궁궐에서 돌아온 봉선이는
갑자기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병석에 드러눕고 말았답니다.


 

그런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봉선이의 집 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은 봉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거문고를 뜯기 시작했답니다.

그 거문고 소리를 들은 임금님은
마침내 봉선이의 집으로 행차했는데
그때 거문고를 뜯는 봉선이의 손에서는
붉은 피가 동글동글 맺혀 떨어지고 있었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임금님은 봉선이를
몹시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봉선이의 손가락을 싸매주고 길을 떠났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봉선이는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는데..

이듬 해, 봉선이의 무덤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빨간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빨간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기 시작했고,
봉선이의 넋이 화한 꽃이라 하여 [봉선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봉선화의 꽃말은
성급한 판단,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랍니다

 


▒ 詩 봉 숭 아 / 仁海 박원화


제 이름은 [봉숭아] 여요.
[봉선화]는 한자 이름 이어요.

여자애들이 엄마와
빠알간 꽃잎에
소금과 백반을 넣고 이겨서

손톱위에 얹고
제 잎으로 싸서
무명실로 꽁꽁
동여 매었지요.

하룻밤 자고난 후 풀면
그 고운 빛깔에
환성을 질렀어요.

처녀들은
여름에 들인 꽃물이
첫 눈 올 때 까지
남아 있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여서
가슴 졸이곤 하였답니다.

차암,
제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예요

건드리면 걸백을 증명 하려고
씨주머니를 터트리거든요.

님 께만 말씀 드리지만
사실, 제겐
기다리는 [님]이 있어요..



▒ 봉숭아 꽃잎을 따서 물들이는 방법.

소금과 백반을 넣어 돌맹이로 여러 번 찧는다.
만약에 백반이 없을 경우에는 괭이밥이라는 풀을 넣는데,
이 풀이 백반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백반은 색이 탁하지 않고 밝고 윤이 나게 하기 위해 넣는다.
소금은 손톱에 색이 깊게 들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 찧어진 것을 조금 떼어 손톱에 올려놓고
잎사귀나 비닐로 잘 처맨 후 실로 꽁꽁 동여맨다.

동여맨 상태로 빠지지 않게 조심해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다음날 실을 풀면 예쁘게 봉숭아물이 들어 있다.

봉숭아물이 손톱 주위까지 붉게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여 주위에 붙인 다음 처매면 좋다고 한다.

진하게 들이고 싶으면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이면 진한 색이 나온다.
옛날에는 다섯 손가락을 모두 하지 않고 엄지와 검지를 뺀
나머지 세 손가락에 들였다고 한다.

항상 꿈꾸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첫눈이 올때까지 손톱끝에 봉숭아 물이 안빠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큼큼~ 봉숭아 물들이기에 좋은 계절이 왔구랴~!
봉숭아 꽃잎 구하기 어려운 님은 공원에 가서 훔처서라도
옛 추억 더듬으며 한번 물들여 보시길..
그리고 여그에 손톱끝에 물들인 야그 좀 올려 주시길..



출처 : 오애교육 홍보자료
글쓴이 : 민들레 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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