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첸나이에서 북인도 뉴델리까지
2013년은 한국과 인도 수교 40주년이다. 첸나이에서 뉴델리까지 여행을 통해 주간조선 독자에게 인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봤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초청을 받아 남인도에서 출발해 북인도로 올라가며 경제대국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도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첸나이
“7성급 호텔입니다. 얼마 전 문을 열었어요.” 이태정 현대차 인도법인 차장이 창밖에 보이는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남인도의 항구도시 첸나이 시내에 들어가고있다. 지난12월9일 밤11시 가까운 시각. 이날 아침 서울에서 출발해 싱가포르를 거쳐 첸나이 공항에 도착, 시내 숙소로향하는 길이다. “자기들 말로는 객실이 1000개라고 합니다.” 이름은 ITC그랜드 촐라 호텔이라고 했다. 첸나이에 7성급 호텔? 놀랍지 않을수 없다.
첸나이에는 현대차 공장이 있다. 승용차를 연 60만대 생산한다. 첸나이는 인도 자동차산업의 요지. 인도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포드, BMW, 르노, 닛산, 미쓰비시 등 주요 메이커가 공장을 갖고 있다. 기자가 첸나이를 찾은 건 이곳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된 승용차를 실은 운송트럭을 따라 북인도의 뉴델리까지 가기 위해서다. 인도의 물류 운송 모습을 따라 인도의 지방 대도시와 농촌을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첸나이에서 출발한 트럭은 벵갈루루, 비자푸르, 둘리, 자이푸르를 거쳐 뉴델리까지 가는 데 7~8일이 걸린다고 했다. 따라서 일부 구간은 운송트럭을 타고 가고, 일부 구간은 항공편을 이용해서 이동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일정이 될 듯했다.
도로 건설 등 SOC 투자 전력
인도 와처(Watcher)를 자칭하고 있지만 몇 년 만의 인도 취재라 약간 가슴이 설렌다. 첸나이는 공항부터 달라져 있었다. 새 공항터미널이 번듯했다. 더구나 7성급 호텔까지 들어섰다니. 인도는 2050년이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얘기된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빠르지 않아, 과연 인도가 그런 경제대국이 될 수 있겠느냐는 의심도 든다. 비웃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가긴 나가는 게 인도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에서 짐을 챙겨 나오니, 호텔 앞이 복잡하다. 출근 시간인데 메트로 공사로 더욱 혼란스럽다. 호텔 건너편에는 ‘포르쉐’ 쇼룸이 있다. 포르쉐는 독일제 고급차.
시내를 돌아볼 새도 없이 도시 외곽의 현대차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을 둘러보고 승용차를 실은 트레일러를 타고 이날의 최종 목적지 벵갈루루로 출발할 예정이다. 벵갈루루는 인도 IT산업의 중심 도시이다. 첸나이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가는데 낯익은 여자 얼굴 사진이 길목에 끝없이 내걸려 있다. 첸나이가 주도인 타밀나두주의 주총리 자얄랄리타이다.
영화배우 출신인 60대 여성. 심지어는 예수님과 같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예수와 함께 나란히 그려져 있는 건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요란한 인도 정치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한다. 인도는 지상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흔히 불린다. 2011년 현재 12억1000만명의 인구다.
오전 8시50분 시내에서 벗어나니 첸나이~벵갈루루 고속도로가 나왔다. 6차선 고속도로이고, 공식 명칭은 4번 국도. ‘벨로르 118㎞’란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벨로르는 오늘 내가 트럭을 타고 갈 중간 목적지. 벨로르부터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벵갈루루까지는 SUV 싼타페를 타고 간다. 벨로르는 소도시인데, 서울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영국이 인도를 식민통치할 때 기막힌 사연을 안고 있는 곳이었다. 영국은 스리랑카를 식민화한 뒤 스리랑카의 마지막 왕을 이 도시에 끌고 와 최후를 마치게 했다. 식민통치자들은 어디서나 가혹하다.
고속도로에 접어든 지 2분 후에 도로 옆으로 거대한 도로 건설 현장이 나타났다. 외곽순환도로 건설 중이라고 했다. 인도도 인프라 건설을 계속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자동차시장 2030년 2000만대 예상
현대자동차 인도공장은 첸나이 시내에서 40㎞ 떨어져 있다. 공장에서 류병완 상무(경영지원 담당)를 만났다. 서보신 법인장은 서울에 출장갔다. 류 상무는 2011년부터 두번째 첸나이 근무를 하고 있다. “11년 만에 첸나이 공장근무를 하는데, 첸나이가 상전벽해가 됐다. 공장 바로앞길이 2차선이었다.지금은 4차선이다. 당시는 추돌이 아니라 충돌 사고를 많이 봤었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앞에서 오는 차와 많이 부딪쳤던 것이다. 식당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이제는 깨끗한 음식점이 많다. 빵집도 좋다. 루이비통 매장도 있다.”
현대차는 1998년 첸나이에서 공장을 짓기 시작해 첫해 8만대를 생산했고, 2012년에는 68만대를 생산한다. “같이 시작한 포드가 12만5000대를 판매한다. 그걸 보면 현대차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 것이다.” 류 상무는 2012년은 현대차가 인도 내수시장에 39만대, 수출 25만대, 총 64만대의 생산과 판매가 예상된다고 했다. 현대차는 총 생산 대수의 절반을 인도 내수용으로 팔았는데, 갈수록 인도 자동차시장이 커져 수출을 줄이고 내수 판매를 늘리고 있다.
인도 자동차시장은 소형차시장이다. 현대차도 i10(1000㏄), i20(1200㏄)이 주력 모델이다. 이보다 배기량이 적은 이온(800㏄)도 내놓고 있다. 이온은 인도 승용차시장의 부동의 1위 업체인 스즈키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전략모델이다.
류 상무에 따르면 인도 자동차시장은 2012년 269만대, 2015년에 400만대, 2030년에 2000만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가 되면 인도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대 자동차시장이 된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현대, 폭스바겐, 도요타가 인도 시장에서 각축을 벌일 것으로 우리는 얘기한다.”
스즈키 인기 없어 현대차 반사이익
류 상무는 첸나이의 한국인 수가 4000명이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첸나이에는 삼성전자 공장, 롯데제과 공장도 있지만, 4000명 대부분이 현대차와 협력업체 종사자 및 그 가족이다. 한국에서 첸나이에 현대차와 함께 진출한 1차 협력업체만 42곳이다. 한 대기업의 힘과 그 소중함을 다시 실감했다.
이제는 트레일러를 타고 첸나이를 떠날 시간이다. 생산된 승용차를 실어 인도 전역으로 운송하는 현대차의 차량 운송업체 글로비스 사무실로 갔다. 대형 트레일러가 글로비스 사무실 앞의 넓은 공터에 수십 대 서 있다. 주황색이고 덮개가 있는 게 한국에서 본 차량운송차와는 다르다. 혹시라도 있을 운송 중 도난 사고를 막기 위해 덮개가 있다고 했다. 글로비스의 조남국 차장은 “하루 1200대를 인도 내수용으로 실어 보내고, 900대는 수출용으로 첸나이항에 보낸다”고 했다.
조 차장에 따르면 델리까지는 2500㎞, 뭄바이까지는 1300㎞다. 트레일러로 델리는 대략 7일, 뭄바이는 5일 걸린다. 그는 “델리 인근 북인도로 전체 자동차 생산 물량의 40%, 뭄바이·푸네 등 서부로 30%를 보낸다”고 했다. 정치 수도 뉴델리와 경제 수도 뭄바이가 최대 시장이라고 해석됐다.
인도는 물류의 지옥이다. 도로가 좋지 않고, 마피아의 출현 등 운송 과정에서 변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첸나이에서 델리까지 며칠 소요된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게 인도의 현실이다. 조 차장은 “RTO(Regional Transport Office·지역운송청)가 못살게 군다. 주의 경계를 넘어갈 때 RTO사무실에서 통행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끌고 정해진 이용료보다 더 많이 받는다. 불시로 차를 세우고 돈을 뜯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차량들 돈 뜯는 ‘군다’ 횡행
‘군다’라고 불리는 악당들도 돈을 빼앗아 간다. ‘군다 세(Goonda Tax)’라고 했다. 북동부 지역, 예를 들면 아삼·차티스가르·자르칸드주에서 군다가 횡행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상황을 파악하느라 예정보다 출발이 늦어졌다. 곡절 끝에 뉴델리를 향해 가는 사짓 칸씨의 트레일러에 올라탔다.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글로비스의 사주 바르기스씨가 취재를 돕기 위해 동행했다. 운전사 칸씨는 인근 주유소에서 700L의 디젤 탱크를 가득 채웠다. 사짓 칸씨는 1972년생. 17년간 트럭 운전을 했다고 했다. 북인도 비하르주에 가족이 있으며 열 살, 네 살의 두 아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6개월에 한 번, 축일이나 명절 때 집에 간다고 했다.
길은 좋다. 트럭은 시속 40~50㎞로 천천히 달린다. 좌석이 높으니 시야도 넓다. 30도가 넘는 더위, 운전사는 자기의 자리 옆에 선풍기를 틀어놓았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암살당한 장소 앞을 지났다. 라지브 간디는 현 인도 정계의 최고 실력자 소냐 간디의 남편. 소냐 간디는 집권 국민회의당 대표이다. 라지브 간디는 선거 유세를 하다가 타밀분리주의자의 지시를 받은 한 여성이 몸에 휴대하고 있던 폭발물을 터트려 숨졌다. 1991년 5월의 일이었다.
트레일러 운전사 칸씨가 힌디 가요를 틀었다. 발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들은 흥겨운 리듬이다. 라디오가 아니라 SD메모리카드에 저장된 MP3 파일을 플레이시키고 있다. 칸씨는 “델리에서 마루티 승용차를 싣고 (남인도의) 벵갈루루까지 왔다. 그리고 첸나이로 왔고 차 정비를 하며 닷새 쉬었다”고 했다. 첸나이에서 현대차를 싣고 델리에 가고, 델리에서는 스즈키차를 싣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월급은 충분하다. 월수입 3만600루피다.(한국돈으로는 약 60만원). 운전사 일은 험하다. 아이들은 잘 가르쳐서 이런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을 엔지니어로 키우고 싶어 돈을 들여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유학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무슬림이다. 성이 ‘칸’이라는 걸 듣고 종교가 이슬람이란 걸 알았다. 인도에서 무슬림의 경제적 지위는 매우 낮다.
오후 5시40분,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벨로르 45㎞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내가 이 트레일러에서 내리려면 1시간은 가야 한다는 얘기다. 주위로 논에 노랗게 익은 벼들이 보인다. 바나나 농장도 보인다. 키 큰 야자수들이 멋있게 서 있다. 운전사 칸씨가 트레일러를 길 옆에 세웠다. 적재한 차량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운행 네 시간마다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도로 상태는 생각보다 좋다. 오후 6시35분 벨로르에 도착했다. 칸씨가 차를 세웠다. 나는 그와 헤어졌다. 그가 델리까지 잘 가기를 바랐다. 나는 이곳에서부터 SUV를 타고 벵갈루루까지 간다. 벵갈루루에서 비행기를 타고 뭄바이로, 그리고 자이푸르로 갈 예정이다. 이들 도시에서 현대차 딜러를 만날 계획이다. 자이푸르에서 뉴델리로 가는 길은 현대글로비스가 보낸 트레일러를 타고 갈 것이다. 첸나이~뉴델리 여정의 마지막 구간 271.9㎞는 다시 트레일러를 타고 현장을 느껴보는 것이다.
인도는 큰 나라였다. 벨로르에서 벵갈루루까지 SUV를 타고 빨리 달리면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밤이 빨리 깊어갔다. 저녁 7시가 넘으니 배가 고팠다. 인도인 운전사 아난드씨에게 밥을 언제 먹을 것이냐고 했더니, 벵갈루루에 도착하면 먹자고 했다. 그도, 동행한 사주씨도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인도 사람은 저녁을 8시30분쯤 먹는다고 했다.
숙소 찾아 2시간 넘게 헤매
‘벵갈루루 96㎞’라는 도로표지판이 있어 시계를 보니 오후 8시29분이다. 도로는 4차선인데, 6차선 확장 구간이 많다. 여전히 오늘의 최종 목적지 벵갈루루까지는 많이 남았다. 차 앞을 꽃술로 장식한 미니버스가 가끔씩 보였다. 궁금해 물었더니 힌두신자인 운전사 아난드씨가 신나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힌두 성지에 순례를 가는 사람들이다. 인근 케랄라주의 포타이암 지역에 있는 사바리말라(Sabarimala) 사원에 간다. 그는 세 번이나 순례를 다녀왔다고 했다. 이 사원은 11월부터 이듬해 1월 중반까지만 일반에 개방하기 때문에 요즘이 순례철이라고 했다.
오후 9시34분 ‘벵갈루루 33㎞’란 도로표지판이 보였다. 1시간5분간 63㎞를 달려온 셈이다. 생각보다 속도를 내지 못했다. 9시45분, 식사를 위해 차를 세우고 한 허름한 호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10시58분에 식당에서 출발했다.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우리가 이날 묵을 호텔 위치를 물었다. 벵갈루루의 ‘일렉트로닉스 시티’ 지역에 있다고 했다. 이때부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호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렉트로닉스 시티에는 우리 호텔이 없었다. 다른 호텔이 있어 우리가 묵을 호텔 위치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러나 그들이 알려준 대로 가보면 나오지 않았고, 행인에게 길을 물었으나 엉뚱한 데를 계속 가리켰다.
한밤중에 이런 고생이 없었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애당초 이런 고생은 할 게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으면 쉽게 찾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차에는 내비게이션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이곳은 인도였다. 그저 길을 물어물어 가야 했다. 벵갈루루 사람들은 계속해서 잘못된 길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타밀나두 주민인 운전사 아난드씨와, 나와 동행한 글로비스 직원 사주씨는 드디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타밀나두와 벵갈루루가 속한 카르나타카는 물 분쟁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벵갈루루 사람들이 타밀나두주에서 온 우리를 골탕 먹이고 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밤 12시가 다 되도록 숙소를 찾지 못하고 우리는 삥삥 돌고 있었다. 전날 서울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첸나이까지 왔고, 이날은 첸나이에서 트럭과 SUV 갈아 타고 수백㎞를 달려왔다.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간 건 밤 12시가 넘어서였다.
벵갈루루
현대차 딜러인 아드비스 모터스가 간밤에 묵은 호텔 바로 옆 건물이었다. 딜러 인터뷰를 하고, 오후에 뭄바이로 가는 게 이날의 일정이다. 현대차 딜러인 수브라마니아 굽타 사장(오른쪽 사진)은 직원 300명을 고용하고 있는 현대차 인도법인의 딜러 중 최대 딜러. 벵갈루루에 두 개, 인근 대도시 마이소르, 망갈로에 각각 딜러십(대리점)을 갖고 있다. 벵갈루루에 쇼룸만 네 개다. 그는 “현대차 덕분에 ‘이 도시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딜러의 마케팅 책임자인 아제이 싱 이사는 “사업뿐만 아니라 자선사업으로 유명하다”고 굽타 사장을 옆에서 치켜세웠다.
굽타 사장은 “현대차가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한 첫 달인 1998년 10월에 20대를 팔았고, 작년에는 9500대를 팔았다. 요즘은 한 달에 1000대 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 모델과 관련 “i10 모델은 환상적인 차이고, i20은 너무 좋은 차이며, 이온은 좋은 차”라고 평가했다. 굽타 사장은 “우리(현대) 차는 너무 좋아서 문제”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정비소에서 올리는 수입이 작다는 것. 차가 고장이 나지 않으니 고치러 오지를 않는다는 얘기였다. “도요타 딜러도 정비소에서 우리보다 수입을 더 많이 올린다.”
그는 “인도 경제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덜 받는다. 벵갈루루는 경기가 아주 좋다”면서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만 더 정비되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을 표시했다. 그는 벵갈루루 자동차시장에 대해 “1980년대에 벤츠 승용차가 한 달에 한 대 팔렸다. 지금은 80대가 팔린다. BMW는 40대, 아우디는 50~60대, 랜드로버는 25~30대 팔린다”고 말했다.
숲으로 덮인 ‘가든 시티’
굽타 사장의 쇼룸 바로 건너편에는 소프트웨어산업 단지였다. 굽타 사장은 저기가 인텔 건물, 저기가 액센추어 건물이라며 연신 6, 7층 높이 건물들을 가리켰다. 벵갈루루는 인도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심지. 지구촌의 ‘백 오피스(Back Office)’라고 불린다. 삼성전자·LG전자도 이곳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다. 나도 벵갈루루의 소프트웨어 산업 취재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굽타 사장은 오늘날 벵갈루루가 세계적 IT소프트웨어산업 도시로 자리 잡은 배경을 설명해줬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1980년대 카르나타카 주총리로 R 군두 라오가 있었다. 그는 재임 중 엔지니어링 학교를 40~50개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 벵갈루루 IT산업의 기폭제가 되었다. 인도 전역에서 벵갈루루로 공부하러 왔다. 졸업한 후에도 벵갈루루의 기후가 좋으니 학생들이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토대에서 1984~1985년 소프트웨어산업이 꽃피기 시작했다. 인포시스, 위프로 두 개 기업이 그때부터 급성장했다. 현재 벵갈루루에는 200만명이 소프트웨어산업에 종사한다.”
굽타 사장과 점심을 먹으러 딜러 사무실을 나섰다. 그가 운전하는 벤츠 차를 타고 길을 나서서 큰길에 접어들기 전 작은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굽타 사장은 “벵갈루루산 전기자동차”라고 했다. 벵갈루루의 혁신적 면모를 느끼게 했다. 벵갈루루는 과거에 ‘가든 시티’라고 불렸다. 도심에 숲이 많아서다. 옛날 도심 공항 인근을 지나가는데 가로수가 넓은 도로를 덮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음주하고 운전하지 마시오’라는 도로안내판이 보였다. 굽타 사장은 “음주운전 문제가 심각하다”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숍 즐비
점심 식당은 도심 UB쇼핑몰에 있는 이탈리아식당. 식당 주인 장 미셸씨의 부인은 한국인이다. 50대로 보이는 미셸씨는 “한국에서 살았다. 벵갈루루에는 10년 전에 왔다. 벵갈루루는 4~5년 전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길도 좋아지고, 쇼핑몰·아파트·극장이 생겨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점심을 하고 UB쇼핑몰을 돌아보니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숍이 즐비했다. 인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 몇 년 전 수도 뉴델리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교외의 신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도시 곳곳은 메트로 공사를 한다고 복잡하다. 벵갈루루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터미널 역시 새 건물이다. 번쩍번쩍하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뭄바이
벵갈루루를 출발한 비행기가 뭄바이 공항에 내린 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각. 12월 11일 오후 6시6분이었다. 기내 방송에서 섭씨 27도라고 했다. 제트항공의 여자 승무원은 “정시에 도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뭄바이는 묘한 느낌을 준다. 이곳처럼 명암이 진하게 대비되는 도시가 있을까? 세계 최대의 빈민가가 있는가 하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을 향해 가는 인도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영어로 ‘Incredible India’라는 말이 있다. ‘믿을 수 없는 인도’란 뜻인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뉘앙스 두 가지를 동시에 뿜어내는 단어다. 2009년 영국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바로 뭄바이를 무대로 한 것 아니었던가?
뭄바이는 남북으로 길다. 남쪽 끝에는 나리만 포인트가 있고, 이곳은 인도 경제의 핵심 지역이다. 남북 간선도로를 따라 지옥과 같은 교통량을 뚫고 북쪽으로 가면 공항이 있다. 내가 묵을 호텔은 공항에서도 더 북쪽이었다. 인도 영화산업의 본산 발리우드가 이 근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발리우드 취재를 위해 자료를 스터디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호텔의 바로 옆이 ‘필름시티’였다. 발리우드 촬영 세트장이 있는 곳이다. 이럴 수가 있나? 인근에는 발리우드의 스타들도 줄줄이 살고 있었다.
출근길 교통 지옥
호텔 밖을 내려다보니 출근길 차량이 고가도로에 엄청나다. 인도 최악의 출근길 정체가 9시가 넘었는데도 계속되고 있다. 호텔 방 TV를 켜니 NDTV에서 “이번 회계연도의 경제성장률이 6%가 안 된다. 현실적인 기대를 해야 한다”고 인도 경제기획위 부의장 몬텍 싱 아흘루왈리아가 말하고 있다. 3년 전 인도 취재 길에 뉴델리에서 인터뷰했던 인도 경제의 설계사이다. 경제성장률이 당초보다 못하다는 부정적인 뉴스였다. 경제뉴스에 이어 오늘은 영화배우 라지니칸트의 생일이라는 소식도 나왔다. 영화 스타의 존재감이 큰 인도다운 뉴스였다.
아침에 호텔로 찾아온 현대차 뭄바이 담당자인 라이나씨는 “뭄바이에서는 정치인과 영화배우, 두 그룹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호텔을 나서 영화촬영소인 ‘필름시티’에 갔다가 현대차 딜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거리 도처에 낯익은 뭄바이 출신 정치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발 태커리라는 뭄바이의 지역 정치거물이었다. 지역 정당 시브 세나의 대부로, 뭄바이가 주도인 마하라슈트라주의 정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봄베이를 뭄바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주인공이기도 하다. “11월 18일 발 태커리 장례식이 열렸는데, 뭄바이가 완전히 멈췄다. 그는 힌두들의 마음속 왕, 라자였다. 시민들이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라이나씨)
‘필름시티’는 호텔에서 10분 거리였다.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출입문에 써 있었으나, 차를 타고 쑥 들어갔더니 잡지 않았다. 세트장은 깊은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델리에서 많이 본 옛 성곽 세트도 있고, 유럽의 대저택 세트도 있었다. 세트장을 찍기 위해 차를 세우고 셔터를 몇 번 누르니 “노, 노” 하면서 사람이 나와 제지하기도 했다. 차를 타고 더 움직이니 출입문들이 계속 나왔다. 한쪽에서는 야외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축구 선수복을 입은 아이들이 잔디 밭에서 공을 차는 광경을 찍고 있었다. 인도 스타플러스 TV채널의 장기 프로그램 ‘우리가 관계라고 부르는 것’을 찍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발리우드 영화를 찍고 있었다. 발리우드 댄서들이 실내 촬영장으로 들어가고 요란한 발리우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인도 영화는 스토리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음악이 나오고 주인공들과 다른 조연들이 나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 게 하나의 특징이다. 바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고 했다.
현대차, 승용차 시장점유율 2위
고탐 모디씨(왼쪽 사진)는 뭄바이 내 현대차 딜러 16명 중 한 명. “뭄바이는 인도의 금융중심지라 소비 수준이 다른 곳과 다르다. 디자인과 신제품에 매우 민감하다. 가장 많이 팔리는 차 모델이 현대차의 경우 i20(1200㏄)이다. 다른 지역에서 i10(1000㏄)이 많이 팔리는 것과 다르다.” 모디씨는 2012년 뭄바이 자동차시장의 판매는 5% 정도 떨어졌다고 했다. “뭄바이 경기는 증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2012년 센섹스 주가가 좋지 않았다. 이자율도 13%로 매우 높다. 그러니 파이낸싱으로 차를 사려는 사람의 부담이 늘었다. 다만 2~3개월 전 소매시장 개방 개혁 조치로 주가가 좀 올랐다. 또 보험시장 개방, 노동법 개혁 등 추가적인 경제개혁 조치가 취해진다면 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모디씨는 “뭄바이의 주요 3개 정당이 싸워서 지난 4~5년간 힘들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뭄바이의 집권 연립정당 두 개와, 야당인 시브 세나가 문제를 끝없이 일으켰다. “정당들이 돈을 요구한다. 뭄바이에는 경제 외적인 많은 제약이 있다.”
발리우드 스타들이 모디씨의 고객이었다. 쏘나타를 많이 사갔다. 카리나 카푸르는 발리우드의 초특급 여배우. “카리나 카푸르가 쏘나타 구 모델을 사간 적이 있다. 6년 전쯤이었다. 쏘나타는 지금은 인기가 없다. 지금은 더 고급차를 산다. 벤츠, BMW, 아우디가 매우 인기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는데 차량 계기판에 표시된 바깥온도가 33도였다. 이제 자이푸르를 거쳐 다시 트레일러를 타고 뉴델리에 들어가는 일이 남았다. 남인도에서 북인도로 가는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자료 : 주간조선(최준석/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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