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그리고 자식
“The first half of our life is ruined by our parents and the second half by our children”
"인생의 전반부는 부모 때문에 망하고 후반부는 자식 때문에 망한다."
Clarence Darrow (1857-1938)
이 말의 작가는 일세를 풍미한 미국의 법조인으로 수많은 명 판결을 유도해 낸 사람이다. 미국은 세인의 관심을 끄는 사건의 재판과정을 낱낱이 방영하므로 범죄의 성격을 떠나 변호인이나 검사가 재판이 끝나면 인기인(Celebrity)으로 부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람도 그런 범주에서 보면 된다.
우리국민같이 부모자식 간 서로 연연하는 민족도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이 잘되기만 한다면 논밭을 팔아서라도 그 뒤를 대주며, 아이들에 대해서 기대가 큰 만큼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실망도 클 것이다.
인근 한 가정의 예를 든다.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하지 않겠다는 음악을 어머니가 강요하여 첼로를 전공했는데 음대를 나와서는 어머니의 주선으로 미국의 모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열정을 갖고 해도 어려운 과정일 터인데 하기 싫은 것을 하니 크게 되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대학까지는 입학을 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하고는 별 하는 일 없이 미국과 한국을 오간다. 딸아이는 어머니가 자신의 미래를 망쳐놓았다고 말하며 자신이 하고자 했던 미술관계의 학업을 했다면 유명 디자이너가 된 어느 친구같이 자신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며 어머니와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다. 한 때는 서울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그토록 닦달하더니 이제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해서라도 돈 많은 집에 시집을 보내겠다고 야단을 치는 어머니와 남편의 사이가 안 좋은 어머니같이 살 바에야 결혼 같은 것은 하지도 않겠다는 딸은 매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한 옛 동료의 딸은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나와는 거리가 있었으므로 청첩은 받질 못했으나 마침 주위의 주선이 있었기에 그의 표현에 의하면 기둥을 뽑아 모 일류 호텔에서 대단히 돈 많은 집에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결혼한지 며칠 되지 않아 그 딸이 죽었다는 전대미문의 말을 들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시신을 화장했다는데 들려오는 이야기를 대강 정리하니, 그 딸에게는 남몰래 장래를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돈이 없는 집의 청년이었으므로 부모가 청년과의 결혼을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단지 돈이 좀 있다는 이유로 여자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길 수야 없지 않는가? 마음에 없는 남자와 불행하게 일생을 보낼 바에야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죽음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 자의 문제라는 말을 한 바 있는데 딸의 죽음 후 아버지는 몇 달을 누워있었다고 하며, 건강도 많이 나빠져 이제는 부축이 없인 층계도 내려오지 못한다고 전해 들었다. 아이들이 배우는 일에 가징 해로운 존재가 선생인 경우가 있듯이 아이들에게 가장 해로운 존재가 때로는 부모인 경우를 단적으로 말하는 하나의 극명한 예에 불과한 일들이다.
부부가 70이 된 어느 가정 하나는 시부모인 자신들에 대한 예우문제로 아들, 며느리와 신경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를 때 어떻게 기른 아들인데 며느리가 자신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찾아오더니, 이제는 아예 전화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만나기만 하면 손녀에 대한 교육문제부터 먹고 마시는 일에 이르기까지 참견이 너무 심해 아예 발을 끊었다. 그런데 전화라도 하면 귀가 따갑도록 며느리를 야단치니 아들도 이제는 포기하고 전화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전화를 안 하면 전화도 안 한다고 또 야단이고 .
인근엔 딸을 둘 다 시집보내고 사는 노부부가 있는데 딸들은 사위들과 재미있게 잘들 사는데 딸이나 사위들이 공히 부모에게는 무관심하다며 인생이 허무하다느니 자식들도 다 필요없다면서 한 동안 푸념을 하더니 애지중지 기른 딸들이 부모에게 과연 그럴 수 있느냐며 이제는 우울증까지 왔다고 한다.
James Dobson이라는 학자는 아이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잠시 빌려와 우리가 사랑할 대상을 갖고 교육을 위임받아 저 사회로 내보낼 때까지 우리가 맡아 기르는 존재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인정할 때만 건전한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말은 Goethe가 한 말이다.
70이 넘은 어느 어머니 하나는 늦게 딸을 시집보내고 맞벌이를 하는 딸 내외의 살림을 돕는다며 용인에서 혜화동까지 거의 매일 음식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도 보았다. 인천에서 미장원을 경영하는 어느 어머니는 일이 다 끝나면 아이를 봐준다며 딸이 사는 서울로 저녁에 출근(?)하며 새벽에 퇴근 아닌 퇴근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육체적 고초로 인해 애당초 연약한 몸이 많이 시들어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자식들을 위해 하는 희생에 쾌감(?)을 느끼는 한국형 어머니의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며 우리가 불러 온 존재인 것은 틀림없으므로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길은 없다. 그렇다면 부모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일차적인 책임은 공부를 시키는데까지라고 본다. 놀고먹겠다는 아이들도 많은 마당에 아이가 공부를 하겠다면 있는 한도 내에서 끝까지 지원을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보며 이차적인 책임은 아이들을 결혼까지는 시켜야 부모의 책임은 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장성한 자녀가 홀로 지내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측은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일단 성장하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자신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후엔 그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여유가 있다면 어느 정도 도와주는 것까지야 부모의 역할이라 하겠으나 결혼을 포함해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왈가왈부하며 그들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서로 울고 웃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위에 든 몇 가지 예는 성장한 후까지도 아이들을 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온 시행착오가 아닌가 한다.
출처 : 김학-두루미 사랑방
글쓴이 : 두루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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