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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크기에… 문병 1000명 온 `의식불명` 40대 주부는 누구?

good해월 2013. 3. 3. 06:40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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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크기에… 문병 1000명 온 '의식불명' 40대 주부는 누구?

  • 청주=이옥진 기자
  • 입력 : 2013.02.28 03:01 | 수정 : 2013.02.28 06:15

    [10년간 충북서 봉사활동 40대 주부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 80일간 줄이은 문병객]
    "남 도우며 착하게만 산 천사… 이젠, 일어나세요"
    장애인·홀몸 노인·어린 가장… 소외이웃위해 10년째 봉사·기부
    수해·폭설… 재난현장마다 찾아
    "정규사원 되면 봉사 시간 줄어" 시급 5000원 비정규직 고집
    그녀의 도움받은 수많은 문병객 "다시 우리 손 잡아주세요"

     아기를 돌보며 봉사활동하던 변현학씨. /변현학씨 가족 제공

    25일 오전 10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1순환로 77 충북대병원 476호 병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 길을 건너다 승용차에 치여 의식을 잃은 주부 변현학(44)씨가 누워 있다. 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카락은 짧게 잘랐고, 두부(頭部) 오른쪽은 사고 충격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80일 넘게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않은 탓에 팔다리는 앙상했다. 4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눈만 깜빡일 뿐 시선은 항상 허공을 향한다.

    이런 변씨를 보기 위해 476호 병실에는 문병객들이 줄을 잇는다. 하루 문병객이 100명을 넘긴 적도 있다. 가족들은 "지금까지 모두 1000여명이 다녀갔던 것 같다"고 전했다. 변씨가 어떤 사람이길래….

    변씨는 주변에서 '나눔 천사'로 불렸다. 취미나 특기를 써내라면 '봉사활동'을 써내곤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대한적십자사 청나봉사회에 가입하면서 봉사활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지역 봉사 동아리인 아사모(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와 좀도리봉사회 에도 참여했다. 10년 동안 충북 지역 홀몸 노인·장애인·소년 소녀 가장을 찾아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김치를 손수 만들어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줬고, 외로운 장애인과 어르신에겐 말벗을 자청했다. 학대를 받은 청소년에겐 교사이자 엄마였고, 재난으로 신음하는 곳에 거리를 따지지 않고 달려갔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11년 강릉 폭설, 2011년 동두천 물난리가 났을 때 현장에서 변씨를 볼 수 있었다.

     변현학씨의 봉사활동 동료들이 26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병원 병실을 찾았다. 연경례(61·맨 오른쪽)씨는 변씨의 손을 잡고“너한테 도움받은 사람들이 널 너무 보고 싶어해. 그 사람들은 몸이 불편해서 못 오니까, 네가 얼른 일어나야 해”라고 했다. 딸 채연양이“사람들에게 늘 웃는 모습만 보였던 엄마가 미운 얼굴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 정면이 보이지 않게 사진을 찍었다. /신현종 기자

    사고가 난 날 변씨는 등산복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던 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는 기부를 더 늘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남편이 경찰공무원이라 월급이 넉넉지 않았기에 항상 아쉬워하던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 쓸 데가 많아요. 반찬 봉사해야 하고, 애들(아동학대 쉼터) 간식도 사줘야 하고…"라고 말했다. 매장에선 정직원으로 일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봉사활동을 수시로 나가야 하기에 어렵다"며 시급 5000원 임시직을 고집했다.

    멀리 봉사활동을 갈 때면 아들 근호(18)군과 딸 채연(15)양을 데려갔다. 자녀들에게 "넉넉하지 않더라도 항상 나누면서 살자"는 교훈을 심어주고 싶어서였다. 함께 봉사를 다녔던 원종연(56)씨는 말했다. "꽃동네 봉사를 갔을 때 한번은 현학이가 '언니, 내가 베푸는 게 아니야. 봉사를 가면 내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 나는 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너무 많이 받기만 해. 그래서 미안해'라고 말하더군요. '아, 이런 게 진정한 봉사구나'라는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변씨를 엄마처럼 따랐던 쉼터 청소년 최나리(가명·16)양은 사고 소식을 듣고 "선생님 보고 싶다"면서 울었다. 병문안을 왔던 꽃동네 지적 장애인들은 떠듬떠듬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발을 굴렀다. 변씨와 결연(結緣)한 80대 독거 할머니도 눈물을 쏟아내며 "안타까워서, 안타까워서 어떡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백태명씨는 장애인 공장에서 일하다가 변씨의 도움을 받았다. 백씨는 "왜 남을 돕고 착하게만 산 사람이 이렇게 됐는지… 얼른 일어나 우리 같은 사람 손 잡아줘야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변현학씨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는 추락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온 김미영씨의 말벗이 돼 줬고(왼쪽 사진), 꽃동네 지적 장애인들을 돌봤다.(오른쪽 사진) /변현학씨 블로그 캡처

    남편 이재만(49)씨는 "아내가 봉사활동 다니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무조건 응원하진 못했어요. 봉사만 하러 다니니, 가족끼리 어디 놀러 가기도 힘들고…. 우리(가족)한테도 봉사 좀 하라는 말만 했지요. 그런데 입원하고 문병 오는 사람들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 우리 와이프가 헛살진 않았구나. 세상을 바르게 살았구나' 하고요."

    빠듯한 살림에 지난달까지 병원비로 3400만원이 들었다. 교통사고 피해보상 보험금으로 받은 돈은 2000만원이 전부였다. 재만씨는 아내 곁을 지키며 "나 좀 봐. 자기 보려고 이렇게 왔잖아. 얼른 벌떡 일어나자"고 했다. 딸 채연양은 "엄만 좋은 일 많이 해서 곧 일어날 거예요"라고 했다.

    변씨 블로그에는 봉사활동 사진과 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작지만 나누는 마음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친구들과 따뜻한 마음 나누고 왔습니다" "우리 예쁜 근호 채연이, 언제 어디서든 늘 도우며 살아가기를"….

    2010년 10월 21일 일기 제목은 '행복한 인연'이다. "귀한 인연으로 만난 우리 장애를 가진 가족들과 삼겹살도, 갈비도, 행복도 먹고…. 오늘 그들(장애인)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를 맡고, 가슴으로 많이 울고, 많은 것을 내 안으로 담아갑니다."

    출처 : Toto, Come !
    글쓴이 : 오솔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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