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은 70년 前進, 북한은 70년 後進, 격차는 140년!
탈북자들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살이 찌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고,
고위 간부라는 증표이다. 한국에선 저소득층일수록 고도 비만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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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살이 찌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고, 고위 간부라는 증표이다. 한국에선 저소득층일수록 고도 비만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북한 남자의 평균 키는 약 160cm, 남한 남자의 평균 키는 174cm. 同族(동족)인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14cm나 차이가 난다. 놀라운 사실은 해방 때 남자 평균 키는 165cm였고 북한사람들이 남한보다 컸다는 점이다. 1945년을 기점으로 억압체제의 북한은 70년을 後進(후진)하였고, 자유체제의 한국은 70년을 前進(전진)하였다. 그래서 140년의 차이가 난다. 이런 격차를 만들면서 대한민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밀어올린 세력이 진보이다. 이런 경우 진보는 '진짜 보수'의 略字(약자)이다. 북한의 韓民族을 劣性化(열성화)시킨 세 명의 뚱보들, 그 중 두 명이 제 命(명)대로 살고 가도록 했다는 것 또한 한민족의 수치이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이런 북한이 살 만한 곳이라고 선전하는 자는 천국에서 지옥行 여행자를 모집하는 인간이다. ........................................................................................................... 김정일의 북한은 철종시대보다 못산다(2002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지난 해 펴낸 安秉直 편 「韓國經濟成長史」에서 영남대학교 차명수 교수가 쓴「제1장. 우리나라의 생활수준, 1700-2000」엔 재미 있는 대목이 있다. <남한이 식민지 시대에 지펴진 근대적 경제성장의 불씨를 상당한 규모의 모닥불로 키워낸 데 비해 북한은 이 불씨를 비벼 끄고 飢餓(기아)와 질병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木村光彦 (1998:10)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하루 식량소비는 2차대전 발발 직전 756g에서 1984년 약800g정도까지 증가한 뒤 1996년에는 540g으로 하락했다. 식민지 시대의 쌀임금(임금을 쌀값으로 나눈 값으로서 생활수준을 보여준다)이 하루 2.5되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었는데 1인당 식량소비와 쌀임금 수준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1996년의 북한 하루 쌀 임금은 약1.8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 남한의 10분의 1정도, 조선시대에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19세기말의 수준과 비슷한 것이다. 남한과 식민지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적 후퇴는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인 私的 소유권과 市 場을 파괴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정권은 시장을 파괴한 대신 1937년 전쟁체제로의 돌입과 함께 등장했던 통제경제체제를 계승해서 이를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했 다(Kimura 1999).>
차명수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은 18세기초부터 계속해서 악화되어 1900년경에 최악의 바닥에 이르렀다고 한다. 車교수는「조선 후기 경제적 후퇴를 가져온 원인은 농업생산성의 지속적 저하였으며 농업생산성 감퇴 원인은 수리시설의 퇴락이었던 것 으로 보인다. 水利시설의 쇠퇴는 지배 및 행정 체제 붕괴와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즉 조선조 末期 순조 현종 철종 고종 시대에 오면 행정력이 부패하고 무능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방치할 뿐만 아니라 못 제방 등 水利시설을 제대로 손보지 않아 농산물의 생산 이 격감했다는 뜻이다. 200년에 걸친 이런 下落의 끝은 일본에 의한 朝鮮倂合이었다. 생산 력이 악화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니 강력한 군대도 유지할 수 없어 나라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1900년 무렵부터 생활수준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車 교수는 「일본 에서 새로운 볍씨가 도입되고 우리나라로 건너온 일본인들이 水利시설을 재건, 확충하면서 비로소 (생활수준의) 하강이 중단되고 상승으로의 反轉이 일어났다」고 썼다.
日帝에 의해 생활수준의 향상이 일어났다는 지적이다. 인정하기 싫은 현상이지만 이는 사 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19세기말 조선조 시절의 수준 보다도 못하다고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일 것이다. 1995년부터 약5년 사이에 전쟁이 일어 난 것도 아닌데 수백만 명이 북한에서 굶어죽었으니 19세기말보다 못한 생활수준이란 말이 맞다. 19세기말의 생활수준은 18세기보다도 훨씬 나빴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북한 주민들 의 생활수준은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 최악일 것이다.
생활수준뿐 아니라 인권탄압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역사의 어느 왕이 김일성 김정일처럼 수용소를 만들어 수십만 명을 가두어놓고 유태인 학살 같은 인간도륙을 강행했던가. 어느 왕이 주민들의 국내 여행을 제한했던가. 어느 왕이 수백만 명을 굶겨죽이면서 자신과 그 측 근들은 곰발바닥요리를 먹고 한 병에 수천 달러 하는 최고급 꼬냑을 마시며 즐겼던가. 어느 왕이 주민들을 굶겨죽이면서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어 공갈을 일삼았던가.
생활수준이 역사상 최악이었다는 것은 지배층의 능력도 최악이고 그들의 인간성도 최악이 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로 북한주민들은 심하게 말하면 난쟁이들이 되어가고 있다. 북한주 민들의 키는 남한사람들보다 평균 7-10cm가 작고 몸무게는 15-20kg이 가볍다고 한다. 한 탈북 청년은 「누가 나를 난쟁이로 만들었습니까」라고 항변했다.
인간도륙에다가 인간변종까지 일으킨 김정일을 부를 때 나는 평소에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守舊反動 세력」이라고 못박곤 한다. 이는 차명수 교수의 논문에 의해 실증된 셈이다. 인 류가 풍요와 자유를 즐기고 있는 21세기의 북한을 우리 민족사상 가장 가난했던 19세기말 보다 더 낙후된 상황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놓은 者, 그가 바로 守舊반동인 것이다. 이 자에게 굴종한 자, 이 자에게 약점이 잡혀 국가이익과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팔아먹은 자, 이 자에게 군자금을 대준 자, 이 자를 진보니 민족주의 세력이니 하면서 편든 자들은 지금부터 반드시 그 代價를 치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가 권력자이든 교수이든 언론인이 든 상관해선 안된다.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이냐가 아니라 그가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가 아니 라 오직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했느냐의 여부를 기준하여 심판할 것이다. 親김정일은 親日 보다도 몇배 더한 범죄이다. 親김정일 인사들의 言動을 정리하여 단죄받도록 하는 일은 나치 戰犯者를 단죄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잔인한 자를 동정한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잔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