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세대 나라 지킨 자부심...좁혀지지 않는 세대 간 갈등
“외국에 나가 야만인·식인종 취급받으면서도 소변에 피 섞여 나오도록 공부했다.”(장승필·73·서울대 명예교수), “지하 1500m 막장에서 주먹만 한 돌덩이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김정봉·69·파독 광부), “배가 고파 흙을 파먹은 적도 있었다.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이재호·68·월곡주얼리진흥재단 이사장)
가상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집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있다. 1930∼40년대에 태어나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살아온 세대의 삶은 영화 이상으로 절절하다. 70~80대 아버지들은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귀 기울이는 자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광복 70년을 맞아 본지가 20대 이상 남성 1370명을 대상으로 지난 12~14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0∼80대 아버지 열 명 중 세 명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명절·제사 등 특별한 날에만 자녀와 대화를 나눴다. 주제도 집안대소사(46.9%), 건강(42.5%) 등 신변잡기 수준에 머물렀다. 경험과 지혜가 소통되는 공간과 시간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은 가치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70∼80대의 10.9%가 자기 세대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국가안보’를 내세웠지만 이들의 아들 세대(45∼55세)는 2.3%만 인정했다.
그런데 70~80대 아버지들만 독백을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사회 연령구조의 허리 격인 ‘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도 고립돼 있었다. 회사원 김창진(50)씨는 “6·25 참전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반공정신이 강하고 대학생 딸은 정치에 무관심해 위아래 세대 모두와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했다.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86세대는 자신들의 가장 큰 업적으로 ‘민주화’(52.4%)를 내세웠지만 20∼30대 응답자의 26.3%만 인정했다. 대신 ‘산업화’(34.7%)를 86세대의 가장 큰 공로로 꼽았다. 70∼80대도 86세대의 주요 성과를 ‘자녀교육’(30.3%), ‘산업화’(27.9%), ‘민주화’(19.0%) 순으로 인정했다.
70~80대, 86세대, 20~30대 모두 서로의 업적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세대 갈등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갈등이 제한된 복지 자원의 배분 문제와 결합해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요소로 불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별 경험의 차이가 커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세대 갈등의 원인”이라며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공통의 경험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불통 … 모든 세대가 "정치 얘기만 나오면 대화 안돼"
“가치관 충돌로 혼란스러울때가 많아요. 어머니가 집에 오셨을때는 주방에 못들어가고 아내와 있을 때는 설거지라도 해야 하죠. 또 상사가 늦게 퇴근할때는 기다려주면서 부하직원이 간다고하면 용인해줘야 하니….”
김학재(54) 다산아카데미 대표는 “우리는 대표적인 낀 세대”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학생인 딸들에게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순간 구시대 아버지가 돼버린다”며 “내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다 성공을 거뒀지만 이젠 땅값 오른 사람이 성공한 시대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자식들과 나눌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김 대표가 느끼는 혼란은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느끼는 문제다. 광복 이후 70년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세대 간 차이도 커졌다. 가치관의 변화와 정보 격차는 부모·자식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지난 12∼14일 전국 20대 이상 남성 13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본지 여론 조사 결과 45∼55세에 해당하는 ‘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아버지와 정치(25.0%)·정보통신(21.1%) 이야기를 할 때 말이 안 통한다”고 응답했다. 동시에 20∼30대 세대도 “86세대인 아버지와 정보통신(17.9%)·정치(15.4%) 이야기 할 때 말이 안 통한다”고 답했다.
세대 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크다. 70~80세대에 대한 이미지 조사에서 86세대인 아들들은 46.4%가 ‘희생’을 꼽았지만 70∼80대 스스로는 ‘희생’(27.8%)보다 ‘근면·성실’(37.6%)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86세대에 대한 이미지 조사도 큰 차이를 보였다. 86세대 스스로는 ‘민주(17.7%)’ ‘혼란(11.2%)’ ‘자유(8.2%)’ 등을 꼽았지만 20∼30대는 각각에 대해 7.8%, 3.5%, 3.2%만 인정했다. 또 ‘권위’(1.9% 대 8.9%), ‘고립·불통’(1.4% 대 5.8%) 등 항목도 인식 차이가 컸다. 86세대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민주와 자유로 해석했지만 자녀 세대에게는 권위와 불통으로 비친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교수는 “세대갈등 가운데 특히 86세대와 20∼30대 사이의 갈등은 두세대가 일자리·집값·연금 등을 두고 이해가 상충하면서 정서적인 갈등 수준을 넘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짚었다.
설문 조사 결과는 세대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할 희망의 씨앗도 보여줬다. 바로 ‘가족’이다. 70∼80대 세대, 86세대, 20∼30대 세대 모두 삶의 가중치를 묻는 질문에서 가족을 첫째로 꼽았다. 또 “부모의 노후생활비는 누가 대야 하는가”란 질문에 70~80대 세대 58.6%가 “부모 스스로”라고 응답한 반면 86세대 53.6%, 20~30대 세대 67.1%는 “자녀”라고 응답해 서로 상대 세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족 안에서 소통이 이뤄질 때 세상을 향한 눈도 부드러워진다. 사진작가 박병문(56)씨가 그 사례다. 그는 20여 년간 태백 탄광에서 광부로 일한 아버지 박원식(87)씨의 삶을 그리기 위해 10년 전부터 다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병문씨는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아버지의 위치에서 해야 될 일을 잘하셨다. 내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며 “아버지가 일한 탄광촌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광부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탄광이 없어지며 떠나는 광부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들도 다 아버지들인데…”라고 말했다.
설문 조사에서 국가에 대한 생각이 엇갈리는 점도 주목된다. 70~80대 세대는 ‘가족-국가-나-일’ 순으로 가중치를 줬고, 86세대와 20~30대 세대는 모두 삶의 우선순위를 ‘가족-나-일-국가’ 순으로 꼽았다.
이동원 가족아카데미아 원장은 “역사적으로 한국은 가족을, 일본은 국가를, 중국은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일본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국가관을 이용했듯 우리도 가족애를 활용, 상호 존중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확산시켜 세대 갈등 해결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료 : 중앙일보(특별취재팀)>
'효도보은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코카콜라 회장의 유서!! (0) | 2015.02.16 |
---|---|
[스크랩] 성인 자녀 독립시키는 묘책 (0) | 2015.02.08 |
[스크랩] [마음산책]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 [중앙일보] 2015.01.16 (0) | 2015.01.17 |
[스크랩] 아기 울음소리 못 늘린 출산정책 (0) | 2015.01.12 |
[스크랩] 동물들의 사랑 (0) | 2015.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