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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에서 제일 솔직한 답장

good해월 2015. 2. 27. 09:37

글 편지 분야 금상= 김태희(충남외고 1년)

 

세상에서 제일 솔직한 답장

 

10월 26일 아빠께 생애 처음으로 받았던 편지를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학교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한다는 말에 저는 아빠께 바로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반장이라서 가정통신문을 다 걷고 마감일이 돼서야 아빠께 전화를 드렸었죠. 그런 저에게 아빠는 “아빠도 그거 문자 받았는데, 딸이 아빠 살이 까매져서 창피해서 오지말라고 전화 안하는 줄 알았네...ㅠㅠ 따님이 오라면 아빠야 좋지 뭐^^.” 하고 회사일도 다 미루고 그 주 토요일에 한걸음에 달려오셨죠. 제가 좋아하는 포도즙 한 박스 들고서요.

그 날 아빠와 하루 종일 함께하면서 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아빠께 너무 죄송했어요.
고등학교 와서 힘들다는 핑계로 공부도 잘 안해서 성적도 안 좋고, 기숙사 벌점이나 받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 엄마 한테 전화도 제대로 안했잖아요. 3주에 한 번씩 집에 가도 매번 친구들이나 만나고, 잠 잘 생각만 했을 뿐 어째 아빠랑 엄마와 함께 가족을 느낄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네요. 그리고 또 큰 언니 등록금, 생활비랑 철안든 남동생 게임 비용도 달라고 졸라대는데 그 옆에서 저도 친구들 입는 메이커 옷 하나 달라고 그럴 때만 아양 떨기나 하는대도 아빠는 항상 저를 믿어주고, 무조건적으로, 그냥 무조건적으로 믿어주셨죠.

이제 철이 좀 들었는지 이제야 정말 많이 느끼네요. 그날 하루종일 아빠랑 붙어있으면서 아빠가 생각보다 저를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제가 아빠한테 한 번 물어봤잖아요. “아빠는 저한테 무슨 말이 제일 듣고 싶어요?” 그 때 아빠가 해준 말은 지금도 제 자습실 책상에 포스트잇으로 붙어있어요. “아빠, 전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아빠도 이제 아빠 인생 사세요.”

아빠가 입버릇처럼 말하시는 “태희야, 나중에 주말에 쉴 수 있고, 쉬는 날 쉴 수 있는 직업을 가지렴.” 하는 말을 그제서야 이해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에 아니 어쩌면 저번 달까지만 해도 아빠가 슈퍼맨인 줄 알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아빠니깐.” 내가 이렇게 해도 “아빠니깐.” 하는 생각에 이제껏 아빠께 제대로 된 편지 한 번 써본 적이 없네요. 어버이날이면 항상 마지막 문장에는 “이제부터 아빠 말 잘 듣고 언니랑 동생이랑도 안싸울께요. 아빠 사랑해요.”하고 삼일도 못 지킬 말들을 읊어댔는데, 아빠의 진심 어린 소망 한마디에 과거의 저에게 한 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했어요.

그리고 그 날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아버지와 자녀의 편지 공유 시간에 저는 바보처럼 아빠께 편지 한 통 안가져왔었죠. 아빠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초록색 꽃무늬 편지 하나를 꺼내셨어요. 그 다음은 기억나죠? 편지 읽기도 전에 그 편지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어요. 아빠께 너무 죄송해서, 그리고 너무 고마워서. 무엇보다 아빠의 딸인 게 기뻐서…. 저는 아빠의 딸이라서 너무 기뻐요. 독하디 독한 공부 자극 문구에도 움직이지 않던 제 손이 아버지의 진심에 이제는 펜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냥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아빠께 너무 감사해서요. 더 이상 아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아빠께 창피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요. 아빠가 저의 유년기를 예쁘게 꾸며주신 만큼 저도 아빠의 노년기를 예쁘게 꾸미고 싶어요. 그 누구보다.

“휴... 아버지도 잘난 우리 딸 뒷바라지하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헤헤”라는 말 아빠에만 해당되는 거 아니에요. 저도 우리 존경하는 아빠 뒷바라지하려고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할꺼에요. 저도 힘들면 가족 사진 보면서 힘내고 있어요. 우리 가족들 진짜 열심히 일해서 건강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멋진 부녀가 됩시다, 아빠. 이제부터 아빠 말 잘 듣고 언니랑 동생이랑도 안싸울께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 잘 때 옷 두껍게 입으시고, 현장 나가면 꼭 안전모 쓰고 가세요. 그리고 출근하실 때는 지퍼 다 잠그고 다녀서 항상 감기 조심하세요. 또 가끔씩 제 용돈 줄 돈으로 아빠 쓰고 싶은 데에 좀 쓰세요.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세상에서 제일, 엄마보다 많이.

아빠! 저는 끝이 없는 인생의 긴긴 길을, 아빠와 같이 걷고 싶습니다. 아빠와 같이 걷고 싶습니다. 아빠 사랑합니다.

 

2014년 11월 어느 밤
그리 멋지지 않은 딸이

 

한국일보에서

 

출처 : 박종국에세이칼럼블로그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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