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년, 기적의 60년]
미러클 코리아 "한국의 성장 보면 참전 자랑스러워"
미러클 코리아…307일 걸리던 1억弗 수출, 지금은 3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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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팔다리를 잃은 거지들이 가득했다. 굶주린 여인들은 어두운 얼굴로 젖먹이를 안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눈뜨곤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한국 현대사 연구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저서 ‘한국현대사’에 묘사한 6·25전쟁 직후 한국의 모습이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기아와 궁핍의 땅엔 최첨단 산업시설과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한국을 두고 세계는 ‘한강의 기적’ 혹은 ‘코리안 미러클(Korean miracle)’이라고 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제외하곤 20세기 역사를 논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지금은 과거 참전국을 지원하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1인당 소득 300배 넘게 증가 1950년대 중반. 배를 곯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생기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두는 게 버릇이었다. 누런 보리밥이든 희멀건 강냉이 죽이든 일단 그릇이 커야 했다. 하지만 1950년대 670㎖였던 밥그릇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작아졌고 2000년대에는 290㎖까지 줄었다. 흥미로운 것은 밥그릇이 작아질수록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육류 등 고열량 식품의 섭취가 늘었으나 쌀 소비량은 오히려 줄어든 것.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GNI는 지난해 2만1632달러로 300배 넘게 뛰었다. 도시 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도 통계집계를 시작한 1963년에는 5990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02만원으로 50년 만에 1000배 가까이 늘었다. 삶의 질도 높아졌다. 1949년 1만8000여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등록대수는 1916만대(올 6월 기준)로 폭증했다. 유선전화 가입자 수는 1949년 4만1000명에서 2012년 1826만명으로 늘었다. 유선전화보다 3배가량 많은 휴대폰 사용자까지 포함하면 7186만명에 달한다. 1억달러를 수출하기까지 1963년엔 307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3시간30분이면 된다. 수출 규모가 2만배 가까이 늘면서다. 1955년 7대뿐이었던 자동차 연간 생산량은 지난해 456만대를 돌파했다. 금융시장도 천문학적인 속도로 발전했다. 4억원 규모였던 1956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1977년 처음 1조원을 돌파했고, 1993년 100조원, 지난해엔 512조원까지 증가했다. ◆험난했던 코리안 미러클의 여정 6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이 900배 가까이 급증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전 직후 미국은 한국의 공업화에 회의적이었다. 1961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미국을 방문해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놓으면서 원조를 요청했을 때도 미국 국무부 관료들은 “이게 무슨 경제개발 계획인가. 쇼핑 리스트지…”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탄광을 개발하고, 철도를 놨다.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택하면서 중화학 공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해 경제 고속성장의 기틀을 만들었다.
선진국들의 원조 덕에 초기 경제의 기틀을 잡아 빠른 성장을 이룬 만큼 한국은 이제 후발국들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정부는 무상원조 확대 과정에서 참전국에 대한 ‘보은 원조’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무상원조 집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참전 16개국 가운데 선진국을 제외한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에서 원조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를 공적개발원조(ODA)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해 1991년부터 총 2억1470만달러 규모의 원조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내적으로는 이념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다. 북한의 끝없는 도발에 대응하는 비용도 엄청나다. ‘북한발 안보 불안’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는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위협요소다.고은이/조수영/도병욱 기자 koko@hankyung.com
[정전 60년, 기적의 60년]
"잊혀진 전쟁 아닌 명예로운 전쟁…한국의 성장 보면 참전 자랑스러워"
한국전 참전용사 찰스 랭글 美 하원의원
6·25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 미국 연방 하원의원(82·민주·뉴욕). 22선(選), 43년의 의정 경력을 갖고 있는 랭글 의원은 미 의회 내 대표적인 ‘지한파’다. 그는 지난해 존 코니어스 등 다른 6·25전쟁 참전용사 출신 의원들과 2012~2013년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올해 미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리는 정전 60주년 기념행사를 일군 주인공이다. 랭글 의원은 “역사가 한국전 참전용사를 잊기 전에 영웅들에 대한 예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주의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 미 의사당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식 리셉션에서 그를 만났다.▷한국전 참전용사로서의 특별한 감회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1951년 희망이 없어 보였던 한국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6·25전쟁에 참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정전 이후 한국과 미국의 우정은 그 세월만큼 깊어졌다. 이제는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켜야 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남북통일이 이뤄지길 희망한다.”(랭글 의원은 지난달 의회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2012~2013년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제출한 배경은. “참전용사들이 대부분 80대 고령이다. 70주년 기념식에는 많은 분이 참석하지 못할 수 있다. 올해 60주년 기념식이 영웅들에게 마지막으로 감사해 할 기회일 수 있다. 참전용사들의 희생 가치는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6·25전쟁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 ‘명예로운 전쟁’ ‘잊혀진 승리’로 불러야 한다.”▷정전 60주년 기념행사가 과거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미국 정부가 6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고, 크게 조명하고 있는 것은 6·25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한 중국이 여전히 북한을 지원하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한·미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것은 영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북한과 중국을 향해 굳건한 한·미 동맹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있다.”▷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정전 60년 만에 폐허를 딛고 세계 강국으로 성장하고 발전했다.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젊은 나라다. 이런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는 것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만약 미국을 비롯해 우방국들이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한반도 전체가 지금의 북한처럼 됐을 것이다.”랭글 의원은 1950년 8월 미 2사단 503야전포병대대 일병으로 참전했다. 부산에 상륙해 낙동강을 거쳐 서울, 평양을 지나 청천강 군우리전투에서 중공군에 포위됐다. 동료 시신 사이에서 죽은 체하며 하나님께 “살려주신다면 죽을 때까지 어떤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기도했다고 한다.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60년 만에…전우가 묻힌 땅 밟은 '백발의 영웅들', "희생이 헛되지 않았구려"
- 버스 밖 한강변 풍경,"다리 하나밖에 없던 폐허,압도적 발전…기적"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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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우여, 우리가 왔네” >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유엔 참전국 노병들이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분향한 뒤 거수경례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오 세상에(Oh, my god), 믿기지 않습니다. 이곳이 정말 한국 맞습니까?”열여덟 살에 6·25전쟁에 뛰어들었던 미국인 해리 벡호프 씨(78)는 전쟁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60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벡호프 씨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북한이 도발한 6·25전쟁이 ‘정전(停戰)’된 지 27일로 60년. 풋풋했던 벽안(碧眼)의 젊은이들은 이제 다리가 불편하고, 허리는 구부정했으며, 머리칼은 백발로 변했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나이에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나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싸웠던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터키 네덜란드 등 6·25전쟁 참전 ‘백발의 영웅’들이 25,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잇달아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정전 60주년 관련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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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참전용사 해리 벡호프씨가 찍은 1953년 당시 명동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다. 당시엔 미군 PX 건물로 쓰였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60년 전에 비해 그야말로 ‘천지개벽’한 모습이었다. 1953년 미 공군 605 전술통제 비행중대에서 통신병으로 참전한 벡호프 씨는 “한국은 지난 60년간 기적을 일궈냈다”며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해낸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숙소인 잠실롯데호텔월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벡호프 씨는 창 밖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참전 당시 한강에 다리가 1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27개나 된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서울의 고층 빌딩과 자동차를 보면서 ‘압도적이다(overwhelming)’는 감탄사를 연신 쏟아냈다. 벡호프 씨는 자신이 미국에서 쓰는 LG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집에 있는 TV 3개는 모두 삼성 제품이라고 말했다. 터키 참전용사 투란 초크메드 씨(85)는 한국전을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한국이란 나라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자원해 참전했다”며 “중공군이 밀려왔을 때 최선봉에서 싸웠다”고 회상했다. 또 “탄환이 코를 스치고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어 치료를 위해 터키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싸웠다”며 “한국은 제2의 조국”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 고아들이 초콜릿을 달라고 따라오고는 했는데 이렇게 부강해졌다니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참전후 아들 이름 킴으로 지어"
역시 터키 참전용사인 메흐멧 므스르 씨(81)는 “한국전에 참전해 지킨 이 나라가 이 정도의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는 걸 믿기 어렵다”며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힐미 에르균 씨(83)는 “배를 타고 한 달 걸려 1952년 10월 부산에 내렸다”며 “전혀 모르는 나라에 와서 목숨 걸고 싸웠는데 한국의 발전상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가 준결승에서 붙었을 때 두 나라 모두 응원했다”며 “예전에는 일본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한국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덴마크 참전용사인 맥스 안데르센 씨(82)는 그의 아들 이름을 한국 성씨 ‘김’에서 따와 킴 안데르센으로 지었을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1954년 2월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였던 마릴린 먼로가 종전 후 미군 장병을 위문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한 뒤 한국 여성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6·25전쟁 3년 동안 세계 21개국에서 연인원 194만명의 용사가 참전해 4만여명이 전사했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은 각종 행사에 참석한 뒤 30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정성택/홍선표 기자 naive@hankyung.com
美 “한국 성공은 6·25의 값진 유산”
[정전 60년… 韓-美-北-中의 7·27]4국 4색 표정
27일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기념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 6·25전쟁이 유엔군과 북한, 중국군 간의 협정으로 끝난 지 60년. 정전협정 기념일인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참전국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며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로 나서길 촉구한 반면 북한은 전술핵무기에 속하는 핵배낭 등 신무기 과시에 바빴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기념식을 열어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천명했고 정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에선 6·25전쟁 참전 후회론이 일고 있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각기 다른 표정을 전한다.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미국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고 기적 같은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6·25전쟁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봉사를 기억해 준 한국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6·25전쟁 참전용사인 찰스 랭걸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은 27일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치하했다. 다른 미국 측 행사 참가자들도 “대한민국의 성공은 6·25전쟁의 값진 유산”이라고 평가했다.그동안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던 6·25전쟁은 정전 60주년을 맞아 미국 내에서 ‘잊혀진 승리’로 재탄생했다. 미국과 국제연합군이 함께 지켜 내 자유와 번영의 나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었다.행사에 참석한 미국 참전용사들은 60년 전 자신과 동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시 미 해병으로 항공모함에 승선해 동해와 서해를 지켰던 참전용사 조지 그리치 씨(80)도 그중 한 명이었다.그는 오전 10시 반경 단상에 등장한 미군 남성 중창단이 ‘아리랑’을 한국어 가사로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하자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그는 “전쟁 당시 한국군과 주민들이 불러준 노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오늘 행사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대목이었다”고 말했다.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막아냈던 함경북도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존 콜 씨(86)는 한국 기자들과 만나 “당시 전투에서 사망한 동료들이 생각난다. 오늘 이 뜻 깊은 행사에 그들과 함께 왔어야 하는데 나만 와서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한미 양국은 또 다른 60년도 동행할 것임을 약속했다.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은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같이 갑시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했다. 이에 정승조 합참의장은 성대한 행사를 마련해 준 미국 측에 진정으로 감사한다며 영어로 “We will go together(우린 함께 갈 것이다)”라고 인사했다.한국 측은 모든 참석자에게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영웅입니다’라고 영어로 쓴 작은 선물 배낭을 증정했다. 정전 60주년, 한미동맹 60주년을 강조한 부채와 수건, 접었다가 펼 수 있는 챙이 넓은 모자 등이 들어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리틀엔젤스 합창단은 즐거운 식전 여흥을 선사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오바마 “한국전은 승리한 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식서 “민주주의-경제발전이 증명”朴대통령 “DMZ 평화공원 조성에 참전국 참여 부탁”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한국전쟁은 승리한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전은 비긴 것이 아니라 한국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We can say with confidence that war was no tie. Korea was a victory)”라고 연설했다. 이는 미국 일각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며 참전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6·25전쟁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정전 기념식에 참석했다.“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로 기념사를 시작한 오바마 대통령은 “5000만 명의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는 바로 한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데 따른 유업(legacy)”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며 한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결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한국은 빈곤과 억압에 시달리는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며 “역사는 한국전쟁을 냉전시대 자유 국가들이 힘을 합쳐 승리한 최초의 전투로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에 6·25전쟁 참전국들의 참여를 요청했다.▶본보 7월 22일자 A1면 朴대통령 “DMZ평화공원, 참전국들과 함께 조성”박 대통령은 “저는 비무장지대의 작은 지역에서부터 무기가 사라지고 평화와 신뢰가 자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며 “정전협정을 맺은 당사국들이 함께 국제적인 규범과 절차, 합의에 따라 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그곳이 바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에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북한을 향해 “이 자리를 빌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진정한 변화와 평화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8·15 경축사 때를 포함해 향후 DMZ 세계평화공원과 관련한 추가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동정민 기자 mickey@donga.com
北 ‘방사능 표시’ 단 배낭부대 첫 등장… 김정은, 외신 기습 질문에 손만 흔들어
[정전 60년… 韓-美-北-中의 7·27]4국 4색 표정■ 20년만에 전승일 열병식
핵배낭? 위장전술? 북한이 27일 6·25 정전일(북한은 전승절로 주장) 60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방사능 표시’ 부대. 이들이 앞에 멘 핵배낭은 일종의 전술핵무기이지만 위장전술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TV
《 6·25전쟁이 유엔군과 북한, 중국군 간의 협정으로 끝난 지 60년. 정전협정 기념일인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참전국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며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로 나서길 촉구한 반면 북한은 전술핵무기에 속하는 핵배낭 등 신무기 과시에 바빴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기념식을 열어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천명했고 정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에선 6·25전쟁 참전 후회론이 일고 있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각기 다른 표정을 전한다. 》27일 북한이 6·25 정전일(북한은 전승절로 주장) 60주년을 맞아 진행한 열병식에서 ‘방사능 표시’를 한 부대가 눈길을 모았다.
北 전승절 열병식 27일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여군들이 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발을 높이 들고 굳은 표정으로 행진하고 있다. 신발이 안 벗겨지도록 한결같이 끈으로 발을 동여맸다(작은 사진). AP 뉴시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이날 열병식에는 가슴에 ‘방사능 표시’를 달고 배낭을 멘 부대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4월에도 같은 복장의 부대가 있었으나 가슴에 방사능 표시는 없었다. 군 관계자는 “올해 핵무기의 ‘경량화, 소형화’에 성공했음을 홍보해온 북한이 핵배낭을 개발했음을 과시하려는 목적일 것”이라며 “가짜 핵배낭으로 위장만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핵배낭이란 배낭 형태에 무게 30∼50kg의 핵무기를 담아 사람이 목표 지점으로 운반해 폭발시키는 전술핵무기 중 하나다. 방사성물질과 재래식 폭탄을 결합시켜 방사능 오염을 유발하는 ‘더티밤(dirty bomb)’도 핵배낭이 될 수 있다. 일부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2011년 핵배낭 부대를 창설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여부는 한 번도 확인된 바 없다. 이날 조선중앙TV 아나운서도 방사능 표시 부대의 명칭과 역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주한미군에 배치됐던 핵배낭은 1990년대 초반 철수했다. 열병식에는 북한이 그동안 공개한 적이 없던 경량 공격헬기 H-500(한국 육군의 500MD와 동일 모델)도 등장했다. 북한은 미국산인 이 헬기를 유사시 피아 식별에 혼선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동유럽권에서 밀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정전일에 열병식을 한 것은 1993년 이후 20년 만이다.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에 맞춘 열병식에 비해서는 동원된 병력과 장비의 규모가 줄었다. 군 당국은 지난해 병력 1만5000명과 장비 800여 대가 동원된 것에 비해 올해 열병식은 병력 1만3000명에 장비도 400여 대가 동원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열병식 때 얼룩무늬로 공개한 KN-08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회색 페인트를 칠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날 열병식이 끝난 뒤엔 실신해 동료들에게 업혀 나가는 북한 병사 모습도 포착됐다. 한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이날 행사 취재를 위해 평양을 찾은 외국 기자들과 접촉했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의 봉황TV 기자가 ‘중국 인민들에게 몇 마디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기습 질문을 던졌으나 별 다른 대답 없이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런민일보 자매지 “中참전 반성여론 적지 않다”
[정전 60년… 韓-美-北-中의 7·27]4국 4색 표정 ■ 온라인 여론조사서도 33%가 부정적
《 6·25전쟁이 유엔군과 북한, 중국군 간의 협정으로 끝난 지 60년. 정전협정 기념일인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참전국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며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로 나서길 촉구한 반면 북한은 전술핵무기에 속하는 핵배낭 등 신무기 과시에 바빴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기념식을 열어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천명했고 정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에선 6·25전쟁 참전 후회론이 일고 있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각기 다른 표정을 전한다. 》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6·25전쟁 참전에 대한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특히 소수지만 참전군인 사이에서는 공개적으로 “참전을 후회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분위기를 겨냥한 듯 중국 관영 언론은 사설로 6·25 참전의 필요성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주요 포털 중 하나인 텅쉰(騰迅)은 26일 ‘항미원조전쟁에 참전했어야 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이 소련 대신 참전했다’와 같은 참전 관련 의문을 소개하고 반박했다.
텅쉰이 27일 진행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도 약 33%가 6·25전쟁에 참전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응답했다. ‘참전이 옳았다’는 응답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하루 뒤인 28일 삭제됐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국제시사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27일 ‘정전 60주년, 중국 여론은 미국보다 더 당당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근 지원군(중국군)의 위대한 정신을 널리 알리는 글은 많지 않고 오히려 ‘반성’의 글이 적지 않다”고 개탄했다. 이 신문은 “항미원조전쟁은 중국에 필연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허진석 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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