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4일, 미 해군 조종사 토머스 허드너 중위는 단발프로펠러 전투기인 F-4U 코세어(Corsair)를 몰고 함경남도 장진호 인근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이때 절친한 동료 조종사인 제스 브라운 소위가 몰던 코세어가 중공군에 피격돼 추락했다는 무선이 날아들었다.
허드너는 곧바로 자신의 코세어를 근처 눈밭에 비상 동체 착륙 시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화염에 휩싸인 브라운의 코세어에서 불길을 잡고 브라운을 찾아냈지만 부서진 기체에 다리가 끼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구조 헬기까지 현장에 도착했어도 영하의 추위와 기체 폭발 위험, 중공군의 계속된 공격 때문에 결국 브라운을 구조하지 못했다. 허드너는 브라운에게 "걱정 마. 꼭 돌아올게"라는 말만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브라운은 끝내 전사했다. 미시시피주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브라운은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였다. 반면 허드너는 매사추세츠주의 부유한 백인 집안 출신이었다. 인종의 벽을 넘어 목숨을 건 구조 활동을 펼친 허드너는 1951년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그러나 '꼭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못 지킨 게 늘 마음의 빚이었다.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2013년 7월 허드너는 브라운의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63년 만에 두 번째 '구출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번엔 북한에 내린 폭우가 그의 앞길을 막았다. 다리가 끊기고 도로가 유실돼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올해 91세가 된 허드너의 우정과 한(恨)이 담긴 책이 나왔다. 자신이 구술한 브라운과의 극적인 전우애가 전쟁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덤 메이코스의 7년에 걸친 노력 끝에 '헌신(Devotion)'이란 제목으로 지난달 27일 출판된 것이다.
'헌신'은 지금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항공군사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허드너는 8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전쟁에서 인종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브라운은 '영웅'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