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어서 좋은점
설이 지나면 누구나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그러나 같은 나이를 먹어도 10대와 20대가 다르고 중년과 노년이 다르다.
특히 노년에서의 나이는 한 살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의 넓이와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늙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거스를수가 없다.
특히 지금과같은 고령화시대에는 나이먹음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할수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나이먹음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깨달을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현역에서 은퇴하면 허둥댈수가 있기 때문이다. 준비가 부실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노년도 차분하게 살아보면 좋은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 ‘다 살게 마련이야’ 라는 말이 그 뜻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노년생활에 적응하면 젊었을때는 몰랐던 ‘삶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노년도 살만 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뭐니뭐니해도 노년의 삶은 ‘자유’ 다. 생각해 보자. 사람이 그 어디에도 매이지않고 자유스럽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서양에서는 한 가정의 가장, 한 아내의 남편을 ‘당나귀’ 라고 부른다.
힘겹게 가정 이라는 짐수레를 끌고 간다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 husband 는 housband 라는 얘기다.
어깨를 짓누르던 직장에서의 책무도없고, 어떤일을 반드시 해야하는 압박감도 없다.
남에게 폐가 안되고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섭없이 마음대로다.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한 무서울 것도 없다.
일체의 부담스러운 ‘관계’에서의 해방은 또 어떤가. 경조사에도 자식을 대신 보내면 된다.
보기싫은 것을 안 볼 수 있는 자유도, 듣기싫은 것은 안 듣는 자유도, 먹기싫은 것은 (억지술잔) 안 먹어도 되는 자유. 이 모두가 늙음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다.
한번 이 자유의 맛을 알게되면 현역으로 돌아갈 생각은 싹 가신다. ‘굴레’를 다시 쓸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유란 그렇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유가 방종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이 ‘여유’ 다. 여유(餘裕)는 매사에서 물질이나 시간, 공간이 넉넉해서 남음이 있는상태다. 자유가 있으니 느긋해지고 느긋해지니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총총걸음으로 뛰다싶이 살던 현역때를 생각하면 노년의 여유는 더 뜻이깊어진다.
웰빙이나 힐링도 ‘여유’만 있으면 해결이다. 사실 현대인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쫓기는 생활을 하고있다고 말할수 있다.
인간이 만든 법, 제도, 기계적인 시스템이 한데 얽혀 사람들을 쪼고 있다.
여유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을 안하는 것이다. 경쟁은 무서운것이고 거기에서 생긴 스트레스는 사람을 소모하고 퇴화시킨다. 경쟁의 틀에서 자유할수 있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그 무서운 경쟁에서 물러설수 있다. 비로서 ‘여유’ 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모두가 미친 듯이 뛰어갈 때 혼자서 천천히, 여유있게 걷는다는 것은 특혜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년이 되어서도 이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격이 매마르고 급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성격이 운명이다’ 라는 말은 참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꼭 하고싶은 일이있다. 다른일 다 제쳐두고 그 일만, 마음껏 하고싶은게 있는법이다.
놀랍게도 그런일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믿기 어렵지만 그건 사실이다.
사람이 나이들어 현역에서 은퇴하면 어떤 간섭도 없이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행복이고 축복이다.
돈을 벌기위해 아웅다웅하고, 승진하려고 동료의 어깨를 발로 밟아야 했으며, 마음에도 없는 아첨은 또 얼마나 했는가.
그러나 노인이 되면 그 모든 부조리에서 해방된다. 비로서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싶던 일을 마음껏 할수있게 되며 여기에는 이해타산이 없다.
내 경우는 책읽기와 음악듣기, 그리고 악기연주가 그런것들이다.
지금 나는 누구의 어떤 간섭도 없이 마음껏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미 좋아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 돈만이 아니다. 사실 돈은 충분조건의 하나일 뿐이다. 이 구분을 잘 하는 것이 정말지혜다.
산으로 비유하자면 사람의 나이는 지금의 위치를 나타내는 능선이라 할 수 있다.
100세를 산 꼭대기라고 생각할 때 70-80세는 7부, 또는 8부 능선에 있다는 뜻이다.
모두가 아는대로 10대와 20대는 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주변밖에 못본다.
중년이 되면 산 허리에 올라 비교적 넓게 볼 수 있다. 그러나 9부능선이나 정상에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거기에다 나이많은 노인들은 험한세상을 살아오면서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관망할줄 알게된다.
관망(觀望)은 형세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꿰뚫고 앉아있다는 의미다. 어찌 철없는 젊은이가 노인들의 지혜의 눈을 당할수 있겠는가.
‘늙은이’ 가 되어 눈도 귀도 어두운 것 같지만 그들은 9부능선에 올라 세상을 정확히 관망하는 속깊은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건 살아온 경륜이 가져다준 기능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겐 없는 전문성이기도 하다.
나이 팔십이 다 된 유명여류 화가에게 기자가 부탁했다.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하시라고, 그 대답이 이랬다. ‘산이되든 바다가 되든 모두가 자기 책임이다.’
두 번의 실수보다 한번 묻는게 낫다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요지음 젊은이들은 자기분야의 전문 ‘멘토’ 는 찾아도 노인들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구닥다리 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스마트폰의 ‘앱’ 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의 의미’ 는 답해주지 못한다. 그게 기계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경험과 체험’ 이라는 값진 앱을 가득담고있는 그릇과 같다. 그러나 물어오지 않으면 대답을 안한다. 산이되든 바다가 되든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상관할수도 없는 무서운 세상이다. 인생의 체험은 IT의 첨단 기기라 해도 대신할수 없는 값진 것이다.
주변에 노인이 계시다면 인생을 물어볼 일이다.
인생의 길라잡이는 그 인생을 먼저 살아본 인간만이 할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값진 경험을 살려내는 것도 사장 하는것도 그래서 젊은이들의 선택이다.
본래 우리의 전통사회는 ‘노인들’을 어르신으로 우대하던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삼대가 한 지붕밑에서 그렇게 살아왔었다.
광복과 함께 먼저 들어온 GI문화는 그 저질스러움으로 우리사회를 오염시켰다. 나쁜 것은 떠 빨리 배우는 속성에 따라 급속한 변화는 노인들을 내 몰았다.
(主)미국GI문화(미군병사들에의한 미국의저질 저급문화)의 침투로 문화상대주의를가져오게한 것
비로서 근자 우리사회는 노인들을 어르신 이라고 부르면서 지하철이라도 그냥 태워 주는 혜택을 베풀고 있으며...
사회적인 ‘노인복지’의 시스템이 크게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를 일으켜세운 ‘땀흘린 세대’를 배려하려는 움직임이 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좋은일이고 다행한 일이다.
노인들을, 그것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들을 배려하는 사회라면 그건 아주좋은 징조다.
미흡하다 해도 ‘대우받는 존재’ 가 된다는 것은 좋은일이 아닌가.
죽은지 몇 년만에 발견되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노인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무슨 예외가 있겠는가.
노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것도, 여유를 가지고 하고싶은 일을 하는것도, 관망하는 자세로 사는것도 반드시 돈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해진다.
늙어서 돈 없으면 죽음목숨 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돈이 충분조건 이라고 말한게 그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이미 웬만한건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돈이 많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나의 평균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면, 자식을 포함, 그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살수 있어야 한다.
시간, 공간, 물질에서의 독립없이 개성적인 노년을 살 수 없다. 그래서 판자집이라도 제집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공평한건, 젊어서 힘써 저축하고 절약하면서 노후를 준비한 사람은 그 늙마가 편하고, 과소비에 저축도 없이 늙으면 비참한 인생을 살게된다는 점니다.
그러나 돈은 돈일뿐, 그게 곧 노년기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패턴’ 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고있는가. ‘국민연금연구원’ 의 조사에서 노인의 72%가 무료하게 지낸다고 했다. 겁나고 무서운 일이다.
노년기 생활에서 정말 무료처럼 무서운 적은 없다. 인간이 무료하면 지치고, 빨리늙고, 일찍 죽는다.
이제 재미있는 얘기를 해 보자.
우리나라에 휴대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거의 일착으로 그것을 구입한 계층에 속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은퇴할때까지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은퇴하던날 그 휴대폰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은 실로 오래동안 나를 옥죄고, 얽어매고, 흡사 노예처럼 나를 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의 은퇴생활은 단연코 ‘내’ 가 주체가 되는, 내부지향적인 것이 되어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나를 외부로 불러내는 그 물건부터 폐기해야 했다. 나는 지금도 휴대폰이 없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없다. 만약, 그것이 없는 생활이 결정적으로 불편하다면 벌써 구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생활패턴에서는 스마트폰은 용도가 없다. 유선전화로 육성을 들으며 인간적인 소통을하고,
이메일,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의 계정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홈쇼핑과 인터넷뱅킹 으로 아무 불편없이 잘 살고 있다.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구입할 계획은 없다. 스마트폰 없이도 아무불편없이 살고있는 자유하는 현대인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best 보다는 better를 추구한다.-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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