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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어머니 』 / 법정스님

good해월 2017. 1. 26. 18:11

   아래표시하기하시어 즐거운노래와함게하세요.

『 어머니  』 / 법정스님
 
우리 같은 출가(出家) 수행자(修行者)는 세상(世上)의 눈(目)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不孝者)이다. 
낳아 길러준 은혜(恩惠)를 등지고 뛰쳐나와 
출세간(出世間)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消息)을 듣고 
대전(大田)에 들러 만나뵈었다. 
그 때는 어머니는 많이 쇠약(衰弱)해 보였다. 
나(我)를 보시더니 전에 없이 눈물을 지으셧다. 
이때가 이승 에서 모자간(母子間)의 마지막 상봉(相逢) 이었다. 
어머니가 아무 예고(豫告)도 없이 
내 거처(居處)에  불쑥 찿아오신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광주(光州)에 사실 때인데 고모(姑母)네 딸을 앞세우고 
직접(直接) 불일암(佛一庵)에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手)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끊여 점심상을 차려 드렸다. 
어머니는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飮食) 솜씨를 대견(大見)하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 날로 산(山)을 내려 가셨는데 
마침 비(雨)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老人)이 
징검 다리를 건너가기가 위태(危殆)로웠다. 
나는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登)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솔잎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파웠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實體)를 두고두고 생각(生覺)케 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消息)을 듣는 순간(瞬間) 
아. 이제는 내 생명(生命)의 뿌리가 꺽였구나 생각(生覺)이 문득 들었다. 
그 시절(時節)은 혼자서도 결제(승가의 안거제도)를 
철저(徹底)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付託)하여 
나 대신(代身) 장례(葬禮)에 참석(參席) 하도록 했다. 
49재 결제(決除)가 끝난 후(後)라 참석(參席)할 수 있었다. 
영단(靈段)에 올려진 사진(寫眞)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친(親) 어머니에게는 
자식(子息)으로서 효행(孝行)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모이는 집회(集會)가 있을때면 
어머니를 대(代)하는 심정(心情)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不孝)를 보상(報償)하기 위해선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에 이 처지(處止)인데도 
인자(仁慈)하고 슬기로운 모성(母性)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生覺)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의 생명(生命)의 언덕이며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하고 싶은 것인가. 
-법정스님 오두막 편지에서-
『가장행복(幸福)한 공부(工夫)
〓삽다리; 編輯〓
<2017.1/24화요일.>
아무도 일년을 더 못살 만큼 늙지 않으며, 
아무도 오늘 죽을수 없을 만큼 젊어 지도 않는다.
-로하스-
짧고 좋은 글 한줄 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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