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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년기(老年期)의 슬픔에 대하여]

good해월 2017. 8. 29. 13:15



[노년기(老年期)의 슬픔에 대하여]



노인들에게 “요즘 어떻게 보내요?” 하고 물으면 그 답(答)이 궁색(窮塞)하다. ”글쎄 왜 사는

지?“ 하고 혀를 차며 쓸쓸해 한다. 지나온 삶을 서로 나누다 보면 말라붙은 주름살속에서 어

려웠던 삶을 헤아릴 수 있다.

 

어느새 목이 메는 가운데 지난 세월(歲月)의 거품이 사라지고 아픈 추억(追憶)만 남는다. 현

실적(現實的)인 꿈도 이상적(理想的)인 꿈도 다 허사(虛事)가 된 듯하다. 후회(後悔)나 회한

(悔恨)이 아니라,

 

그저 매순간(瞬間)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늙어가면서 느끼는 다양(多樣)한 상실감(喪失

感) 때문이리라. 열정(熱情)의 세월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빈 가슴이 아닐 수 없다.

 

​노인(老人)들 세대(世代)를 중심(中心)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몸이 아프고 힘들다고 한

다. 심신(心身)의 피로(疲勞)에다가  경제적(經濟的) 빈곤(貧困), 외로움이 겹치다 보니 모두

가 슬픈 감정(感情)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듯하다.

 

슬픔 속에는 초라(綃羅)함, 불안(不安), 걱정, 허무(虛無), 상심(喪心), 고독감(孤獨感), 불화

(不和), 무력감(無力感) 등이 섞여 있다. 목숨을 이어가지만 꿈이없고 비전이 없을뿐더러 무

엇에 미쳐 볼 수있는 대상(對象)도 보이지 않는다. 감정의 뇌(腦)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도

모르는 삶이다.

 

​더구나 한국(韓國)이 경제적(經濟的)으로 성공(成功)해 잘 살아가는 시대(時代)지만 역설적

(逆說的)으로 슬픔이 많은 사회(社會)다. 젊은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고달픈 생활속

에 슬픔이 강물처럼 넘친다.

 

사회적 역동성(逆動性)을 잃은 듯하고 오지않은 미래(未來)를 상상(像想)할 힘도 소진(消盡

)되는 듯하다. 어쩌다가 버스, 지하철 타고 어디를 가도 기쁨이없고 피곤할 뿐이다. 요새 사

회분위기(雰圍氣)가 그렇다. 슬픈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적 비용(費用)도 더 늘어나게마련이

다.

 

그러나 슬픔이 많은 사회구조(社會構造)속에서 살지만 남다른 용기(勇氣)와삶의 기술(技術

)이 필요(必要)한 시대다. 슬픔에서 새 길을 찾지 못하면 헛된 슬픔이 되기 때문이다.

 

​1. 슬픔은 왜 오는가?

 

​늙으면 마음도 몸도 늙게마련이다. 여기다 질병(疾病)이 들거나 배우자(配偶者) 혹은 가족(

家族)들을 잃었을때 더욱 슬픈 감정에 빠지게된다. 때로는 슬픈 감정이 깊어지면서 삶의 의

미(意味)를 잃고 상실감(喪失感)에 빠진 상태(狀態)에서 하루하루 보낼 수 있다.

 

슬픔의 자궁(子宮)인 가족, 일, 집, 몸, 사랑, 사회 속에서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이 슬픔

이다. 슬픔은 생애과정(生涯過程)에서 끊임없이 만나는 거부(拒否)할 수없는 현실이다.누구

에게나 슬픈 스토리가 있다는 얘기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이야기는 항상 고통(苦痛)의

이야기다”고 했다.

 

​무엇보다 일상적(日常的) 삶에 상처(傷處)를 받을 때, 상실을 경험(經驗) 할때 삶의 가치(價

値)를 느끼지 못할 때에 많이 슬프다. 삶의피로감(疲勞感)은 심각(心覺)한 허무주의(虛無主

義)와 의미의 상실로 이어지는 슬픔을 자아낸다.

 

심지어 지금 세대는 잘 살고 고급차를 타고다녀도 만족(滿足)을 모르는 슬픈세대다. 노인들

도 이와 비슷해서 그저 별 이유(理由) 없이 세상(世上)을 멀리하며 ‘슬퍼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슬픔은 마음속에 잠복(潛伏)해 있다가 어떤 사건사고(事件事故), 심신

(心身)의 허무감(虛無感)이 올때 고통으로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인류(人類)는 사랑

과 함께 슬픔을 간직한 존재(存在)들이 아닌가 싶다.  “내 인생 참 슬프다. 아 이게 인생이로

구나!”

 

그야 말로 우리는 슬픈 사회(Sad society)에 살고 있다.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가 한평

생 거리를 헤매는 감정과 같은 형태(形態)의 슬픈 사회다.  특히 노년후기(老年後期)에는 손

실(損失)이 크고 죽음이 가까워 온다는 사실에서 슬픔은 더욱 커진다.

 

남몰래 동굴(洞窟) 속에서 한마리 짐승처럼 신음(呻吟)한다. 일생동안 지속(持續)될 줄 알았

던 소중(所重)한 기억(記憶)들도 하나 둘씩 빠져나간다. 모두가 늙어가는 생명(生命)의 소멸

과정(消滅過程)이다.

 

만나는 노인들 모습에서 미세(微細)한 얼굴색깔, 근육상태(筋肉狀態), 고뇌(苦惱)와고통, 기

쁨과 슬픔이 중첩(重疊)되어 있음을 발견(發見)하게 된다.

 

결국 누구나 숨어서 많은 눈물을 삼키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은 우리 삶에서 일

상적(日常的)인 것이며 상처(傷處)위에 상처를, 아픈 기억 속에 가슴 아픈 슬픔을 안고 살아

가는 것이 현존(現存)의 감정이다.

 

앞으로도 비올 때  우산을 빼앗기는 경쟁사회(競爭社會)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슬픈 사회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런 슬픈 감정을 이겨 내야 한다. 살아야한다. 우리는

계속 진보(進步)해야 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대처(對處) 하느냐의 문제는 자신의 능력(能

力) 뿐이다.



​2.슬픔이 노년기 삶에 미치는 영향(影響)

 

​슬픔은 마음이 아픈 것이다. 이제는 늙으니 울 수 있는 능력까지 잃어버린 듯, 할 것이다. 한

평생 처자식(妻子息) 밥그릇에 자신의 생명(生命)을 걸었지만 그들이 구박(驅迫)한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悲愴)’은 비탄(悲嘆)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慰勞)하는 음악(

音樂)이지만 어떤 이는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울기도 할 것이다. 슬프니 길거리에서 빵 굽는

냄새조차 모를 것이고 정원(庭園)에 곱게 핀 장미꽃의 아름다움조차도 잊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슬픔이계속되면 불면증(不眠症), 두통(頭痛), 근육의긴장(緊張), 식욕부진(食慾不振

) 등 불안장애(不安障礙)를 겪을 수 있다.  다양한 생활고(生活苦), 사건사고, 손실(損失), 슬

픔과 슬픔의 결과(結果)는 지속적으로 정신건강(精神健康)에 부정적(否定的)인 영향을 미친

다.

 

불안과 우울증(憂鬱症)으로 인해 약물남용(藥物濫用)에 빠질 수도있다. 남자들의 경우 쉽게

슬픔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감정을 숨기기보다 분노(憤怒)하기도한다. 남자들은 슬픔을피

하기보다는 폭발(暴發)하거나 일탈행동(逸脫行動)으로 남에게 피해(被害)를 주기도 한다.

 

반면(反面)에 슬픔은 긍정(肯定)인 역할(役割)도 한다.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

회(機會)가 될 수 있다. 사별(死別)로 인해  혹은 손실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當然)한 감정이

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손실이나 죽음을 애도(哀悼)하듯이 자신의 생활의 일부분(一部分)이 손

실되거나 일이 없어졌을때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슬픔은 당신의 마음을 긍정적으

로 녹이는 역할을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다시 찾는 생애 성장과정(成長過程)을 밟게 된다. 건강한 라이프스

타일을위해 사소(些少)한 것들을 정리(整理)하는 한편 새로운 단계(段階)를 만들 수있는 즉

슬픔의 낙관적(樂觀的) 측면(側面)으로 발전(發展)하게 된다.

 

​3.슬픔의 대처 능력(對處 能力)

 

​우리 삶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끔찍하다. 우리 삶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신체활동(身體活

動)이 급격(急激)히 줄어들면서 감옥(監獄)같은 집에서 오로지 번뇌(煩惱), 고뇌(苦惱), 외로

움을 안고 밤 시간을 헤맬 때도 있다. 가까운 친구(親舊)가 죽었다는 소식(消息)에 아련했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눈물을 흘린다.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사랑이야기도 슬프다.  영화(映畫) ‘은교’(정지우 감독, 2012)에

나오는 시인(詩人) ‘이적요’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선물이 아니다”라며 늙음을 항변(抗辯)한다. 이렇게 노년기에 느끼는 슬픈감

정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천년(千年)의 슬픔이 언제끝날까? 당신의 가슴통증(痛症)을 어떻게 치유(治癒)할까?

 

​첫째, 자신의신념(信念)과 가치, 지식(智識) 정도, 의사소통(意思疏通) 능력(能力)에따라 대

처 능력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노인은 자신이 느끼는 슬픔, 분노, 외로움, 절망감(絶望感),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방법(方法)은 오직 자신의 능력과 감정을 잘 처리하는 의지

에 달려 있다.

 

​둘째, 자기만의 치유 방식(治癒 方式)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이 슬픈 이유를 잘 알기 때문에  자기감정을 스스로 조절(調節)하며 치유할 수밖에 없

다. 당신 외에는 아무도 당신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 결핍감,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

는 방식으로 자신을 가두는 것은 슬픔을 치유하는 자세(姿勢)가 아니다.

 

셋째, 자기 스스로 치유의 한계(限界)가 있다는 것을 인정(認定)하고 누군가와 함께 울어라.

혼자 우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면 훨씬 더 쉽게 치유할 수있을 것이다. 어느누

구도 내 슬픔을 알아주거나 해소(解消)시켜 주지못하지만 분명이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내할

아버지 내 할머니 내 형제자매, 내 자식은 큰 힘이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슬픔을 달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그러나 가족들, 자녀들에게 당신이 슬

프게 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괜찮다. ​덧붙이면 “슬프다”는 것은 바로 “웃다, 웃어라”의

반대말이 아닌가?

 

그러니 마음껏 웃고, 즐거워서 웃고, 함께 웃고, 한번 웃고 또 웃는 노력도시도(試圖)해보자.

하하 허허 걸걸 킬킬 대고 웃는 모습을 그려보라. 좋은 생각으로 환하게 즐겁게 기쁘게 웃으

면 슬픔은 사라지고 희망적(希望的)인 삶이 찾아 올 것이다.

 

​끝으로 아마도 원치 않는 병원침대에 누워 이글을 읽을 수도있고 공원벤치에서 스마트 폰으

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 모두가 자기 생애의 슬픈 결말이 아니라 해피엔딩으로,

그리고 좋은 생각과 긍정의 힘으로 “어떻게 닥쳐오는 슬픔을 극복(克服)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 할 것이다.

 

그 해결방법(解決方法)은 다양하지만  무조건 슬픔을 진정(眞靜)시키기보다 소리 높여 울면

서 흥분(興奮)된 감정을 조절하는 것, 아니면 깊은 명상(瞑想)으로 스트레스 울분을 가라 앉

히는 일이다.

 

​또한 당신의 건강 정도,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 그리고  신분지위(身分地位) 관계(關

係)의 상실, 독립(獨立)과 자율(自律)의 제한(制限), 생활 빈곤(貧困)에 따라 슬픈 감정의 치

유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즉 노년기 홀로 사는가, 가족들과 잘 지내는가, 사회활동이 재미있는가, 무언가 일거리가 있

는가에 좌우(左右)될 것이어서 자기만의 대처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깊어만 가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누적(累積)된 잠재력(潛在力)을 극대화(極大化

) 하는 일, 신체건강의 최적화(最適化), 소셜네트워크를 확대(擴大)해가는 일이 곧 노년기에

오는 슬픔을 멀리 할 수 있는 방법이다. <禹晶 著>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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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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