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도 사랑을 할까
로랑 알렉상드르, 장 미셸 베스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216쪽|1만2000원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뛰어넘는 순간인 '특이점'(Singularity)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과학기술이 점차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까닭은 'NBIC 융합' 때문이다. 그동안 각각 발전해 오던 나노기술(N), 바이오기술(B), 정보기술(I), 인지과학(C)이 하나로 모이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다.
프랑스 의사이자 작가인 로랑 알렉상드르(58)와 기술철학자인 장 미셸 베스니에(68)가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올 인간의 미래에 관해 12가지 주제로 나눠 논쟁을 펼친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트랜스휴머니즘'이라 부른다. 반면 인간이 생물학적 조건을 크게 벗어나도록 '증강'시키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바이오 보수주의'라고 한다. 두 저자는 두 입장을 각각 대변한다.
과학기술 혁명으로 인간의 역량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초소형 카메라가 달린 첨단 전자장치를 망막이나 대뇌 피질에 장착하면 실명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치보다 수십 배 시력을 높이기 위해 인공 망막을 장착하는 일은 용인해야 할까?
태아의 유전자를 진단해 질병 가능성이 높은 아이를 골라내는 일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DNA 염기 서열을 측정하는 비용은 300만분의 1로 줄었고, 2025년 이 기술은 보편화된다. 좀 더 지나면 식당에서 메뉴 고르듯 예쁘고 똑똑한 자식만 골라 낳을 수도 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도 인공 자궁에서 아이를 키워 낳는 일도 가능하다. 영화 '그녀'에서처럼 로봇과 사랑을 나누는 일도 가능하다. 인간의 성생활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옹호하는 알렉상드르는 인공지능의 발달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도입하는 나라일수록 세계 질서를 선도할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베스니에는 기술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며,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윤리·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베스니에는 과학기술 발전에 큰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 품종을 개량한다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우생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기술을 장착해 신(神)에게 다가간 인간과 그런 장치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나뉘게 된다. 과학기술 결정론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결국 인간 자체를 파괴할 것이다.
구글 총괄 엔지니어 레이 커즈와일은 "죽음을 안락사시키자"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최전선에 있다. 그는 "2030년쯤 우리는 나노 크기의 전자 부품을 삽입한 뇌 덕분에 우주를 창조한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천 살까지 살 아이는 이미 태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2018년 태어난 아이는 22세기가 되어도 여든두 살에 불과하다. 이때의 바이오기술은 그의 수명을 100년 더 늘릴 수 있고, 그가 살아갈 2150년의 기술은 그의 수명을 더 늘려줄 수 있다.
책은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일을 논의한다. 10년 후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과학자도 알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1970년 메신저RNA를 발견해 노벨 의학상을 받은 자크 모노는 "유전자의 크기는 워낙 작아서 이를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염색체 배열 분석은 이미 2003년 이뤄졌고, 2025년 인간은 자신의 DNA 염기 서열을 완전히 알게 된다.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입력 2018.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