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400~500년의 제주도 지정문화재 보호수 쓰러져
주민들의 무속신앙 중심지…해마다 당굿 열리는 ‘성소’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 본향당’의 팽나무가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쓰러진 모습. 허호준 기자
“팽나무가 쓰러졌어요?”
“역사가 깊은 거목인데…”
12일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 마을 무속신앙의 성소인 와흘본향당의 팽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했다. 수령 400~500년으로 추정되는 제주 와흘 본향당 팽나무가 지난 6일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쓰러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팽나무는 와흘리 주민들의 무속신앙의 ‘성소’나 다름없는 와흘 본향당의 상징이다. 와흘 본향당의 팽나무 2그루는 1982년 당시 북제주군의 보호수로 지정됐고, 2005년 4월에는 본향당과 팽나무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도지정문화재인 ‘민속자료 9-3’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지 한 달도 안 돼 1그루가 부러졌다가 2014년 밑동이 썩어 고사했다. 그리고 이번에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남은 1그루 마저 완전히 쓰러진 것이다. 이 팽나무는 2009년 1월 무속 행위를 하다 불이 옮겨붙어 고사위기를 맞는 수난도 겪었다.
지난해 1월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 본향당’의 팽나무 모습. 허호준 기자
지난해 1월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 본향당’의 팽나무 모습. 허호준 기자
과거 제주사람들은 먼 길을 떠날 때나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 등 사소한 일까지 본향당신에게 찾아가 알리고, 무사히 이를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제주도내 각 마을에는 지금도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들이 많이 남아 있다.
와흘 본향당에서는 음력 1월14일 본향당신에게 신년하례를 드리는 굿인 ‘신과세제’를, 음력 7월14일에는 목축민들이 본향당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제를 지내는 ’백중마불림제’ 등 1년에 2차례에 걸쳐 굿과 제를 지낸다.
12일 팽나무가 쓰러진 사실을 모르는 이 마을주민(76·여)은 “지난 음력 7월 백중마불림제 때도 갔다 왔는데 어떻게 쓰러졌는지 모르겠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안녕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장소”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 주민은 “예전에는 본향당이 세서 말을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와흘 본향당 앞을 지날 때는 내려서 가곤 했다”고 말했다.
2008년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문화상징>에 실린 현명자씨가 찍은 ‘와흘 본향당’에서 치러지는 신과세굿 모습. 거대한 팽나무 앞에 다양한 제물이 차려져 있다.
또다른 주민(77·여)은 “어릴 때는 일주일 동안 큰굿을 했었는데 나중에 사흘 동안 하는 굿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하루 굿으로 바뀌었다. 이곳 주민만이 아니라 이곳 출신으로 타지에 나가 사는 사람들도 제일이 되면 찾아온다. 걷지 못하게 될 때까지 1년에 두 차례는 꼭 본향당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김송옥(80)씨는 “과거 제일이 가까워지면 집집이 장작 2개와 ‘검질’(잡풀)을 마을에 내면 제일에 제관들이 자리를 만들어 앉곤 했다. 제물 비용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구당 1만~2만원씩 내기도 했다”며 팽나무가 쓰러진 데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팽나무가 쓰러지더라도 본향당은 있기 때문에 1년에 2차례 제를 지내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강정효의 이미지 제주]조천읍 와흘본향당 수난사
이들 팽나무는 1982년부터 보호수로 지정, 보호돼 왔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4월 15일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팽나무의 수난은 그 직후부터 시작됐다. 문화재로 지정된 지 한 달도 안 돼 신목 한 그루가 강풍으로 가지가 부러지는 참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 행정 당국이 정비작업을 벌이고자 했으나 신의 노여움을 우려한 인부들이 작업을 거부하는 사태마저 발생했다. 결국 예산 300만원을 투입, 심방(무당)이 나서서 굿을 한 뒤에야 부러진 가지의 제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제주 특유의 신앙심이 여전히 발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 지역에서 기도를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생각지도 않은 불상사가 발생한다. 지전과 물색 등 소박하게 제물을 바치는 제주의 전통 방식과는 달리 육지에서 온 무속인들이 오방색 천으로 나뭇가지를 감싸면서 문화의 왜곡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2009년 1월에는 무속인들이 방치한 촛불이 오방천에 옮겨 붙으며 화재가 발생, 신목이 고사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결국 2014년에는 팽나무 한 그루의 밑동이 썩어 죽고, 남아있던 한 그루마저 이번에 쓰러진 것이다.
제주에서 본향당(本鄕堂)은 마을의 토지를 보호하고, 마을 사람들의 출생과 사망을 관장하는 본향당신이 머무는 공간이다. 신을 형상화한 신체(神體)로는 신목과 신석, 석함, 신혈, 신상, 위패 등이 있는데, 신목은 신이 타고 내려오는 나무이자, 신의 우주로 상징된다. 신목 중에는 팽나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와흘 한거리 하로산당’ 또는 ‘노늘당’이라고도 불리는 와흘본향당의 당신(堂神)은 제주도 신당의 뿌리인 구좌읍 송당본향당의 당신인 백주또와 소천국의 11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다. 백조도령은 와흘리에 사는 서정승의 딸과 혼인했다. 이들 부부신을 모신 제단은 신목의 남쪽과 동쪽 구석 두 곳에 설치돼 있다.
팽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던 모습. 1998년. @강정효
2006년 와흘본향당 풍경. 외지 육지 무속인이 들어와 오방색 천을 두르는 문화 왜곡이 발생했다. @강정효
와흘본향당에서는 매해 음력 1월 14일과 7월 14일에 당굿이 열리는데, 1월에는 신과세제(新過歲祭)를 올리고, 7월에는 마불림제를 한다.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당신은 산신으로 형상화되는데,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산받음’과 액운을 막는 액막이로 끝나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굿의 말미에 산신을 위해 벌이는 산신놀이까지 진행한다. 당굿을 앞두고 미리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데, 굿이 열리는 날이면 마을 부녀자들은 아침 일찍 대로 만든 바구니인 구덕에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단에 진설한다. 당굿이 열리는 날이면 마을을 떠나 외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빠짐없이 참가하는데 예전에는 200명 이상이 몰려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다른 마을의 경우 신당은 부녀자들만 찾고 남자들은 포제단에서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酺祭)를 지내는데, 와흘리의 경우는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당굿에 참여한다.
그렇게 마을의 구심체 역할을 해왔던 본향당의 상징이 이번에 쓰러진 것이다.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현재 마을에서는 대체 수목 이식 등 대안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 과정이 마을공동체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한국일보 /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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