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으로행복

[스크랩]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21)호스피스 의사가 추천하는 웰다잉(well-dying) 10계명 ~(31) 말기암 환자에게 신이 내린 선물

good해월 2018. 12. 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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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의사가 추천하는 웰다잉(well-dying) 10계명

입력 : 2014.04.02 05:16

김여환의 책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중에서

1.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양보하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이 순간 행복해야 합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포기하지 마세요. 순간의 행복을 젊어서 흥청망청 즐기라는 말도, 금방 사그라질 쾌락에 스스로를 내던지라는 말도 아니랍니다.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2. 건강할 때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하세요

건강할 때 단 한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하세요. 죽음을 배우는 지름길입니다. 죽어가는 노인은 곧 사라질 도서관과 같습니다. 그들을 도우면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삶의 비밀을 속삭여줄 것입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죽음이 우리에게 삶을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목욕봉사하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봉사자들.
목욕봉사하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봉사자들.
3.나쁜 소식도 정확하게 알자

무슨 병에 걸렸는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치료 목표는 무엇인지, 진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급하고 거칠고 불같은 성격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보호자들은 환자의 평소 성격이 병세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사실을 숨깁니다. 성격은 인생의 과정뿐 아니라 마지막도 결정합니다.

4. 마지막에 할 말을 지금 하세요

칸트는 “새는 죽기 직전에 슬픈 노래를 지저귀지만 인간은 떠날 때 좋은 말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9·11테러 당시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했던 말은 “I love you”였습니다. 임종 순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면 남은 이들은 당신을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할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은 마지막까지 아껴두지 말고 지금 하면 어떨까요? 이 세 마디 말이면 삶의 모든 갈등이 사라진답니다.

5. 죽음이 불행인 것처럼 대하지 마세요

병에 걸리는 것도, 주식이 폭락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도 모두 견디기 힘든 슬픔입니다. 죽음은 그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이지만 그것을 불행으로 연결시키지는 마세요. 슬픔으로 눈이 멀지 않으면 내 슬픔을 통해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깁니다. 슬픔이 찾아왔다고 해서 인생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이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자연과 하나 되는 것으로 여기는 일은 어려운 경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죽음 앞에서 제대로 슬퍼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마지막 날까지도 성경책을 읽으며 폐암과 싸웠던 고 김옥지씨.
마지막 날까지도 성경책을 읽으며 폐암과 싸웠던 고 김옥지씨.
6.통증조절을 잘하는 주치의를 알아두세요

병도 고통도 없는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면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 찾아갈 수 있는 의사를 알아두세요. 육체적 통증과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는 의사를 친구로 만드는 것은 인생의 보험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7.건강할 때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세요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마지막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암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겠다는 바람도, 잠들 듯이 편안하게 죽고 싶다는 소망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죽음의 상황을 바라기보다는 마지막 순간 가슴에 무엇을 담고 떠날지를 상상하세요.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일을 하세요.

8.마지막 순간까지도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드세요

죽어갈 때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세요. 영화를 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또 가족을 위해 절대자에게 기도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도 의미가 있습니다.

9. 당신은 가도 당신의 재산은 남습니다

한 환자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딸은 그 다음부터 병원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자주 들러서 아버지를 돌봐주던 착한 딸이었는데, 병원에 오지 않는 오빠에 비해 자신의 몫이 초라하자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남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담아 유언을 남기세요. 죽는 것도 힘들고 억울한데 떠나는 사람이 남는 사람을 배려하는 일까지 해야 되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인생의 선배가 아니라 먼저 떠나는 사람이 인생의 선배입니다. 후배를 배려하는 여유를 가질 줄 아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상자를 잘 쌓아 올리는 방법입니다.

10. 마지막을 같이하는 웰다잉 보호자를 만드세요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마지막이 외롭지 않은 건 아닙니다. 헛된 만남보다는 단 한 사람의 진심과 만나야 죽음이 쓸쓸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웰빙, 웰다잉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떠날 때 손을 잡아줄 사람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22)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엄마, 하늘나라 가는 것 무서워 마세요. 바탕화면에 두고 계속 볼게요.

 

아빠 말씀도 잘 듣고 동생도 잘 돌보고..."

 
입력 : 2014.04.06 17:48

 

38세인 지효(지은·효은) 엄마는 4년전 얼굴에 암이 생겼다. 지은이는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 지난 봄방학을 2학년 올라가는 동생과 함께 엄마가 입원한 호스피스병동에서 함께 지냈다. 그들은 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얌전하게 인사하고 병원에서 등교를 했다. 엄마는 지은이가 초경을 할 때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그 이후…/편집자

지은이 엄마가 죽었어요. 지은이네는 처음에 병동에 올 때하고는 달라졌어요. 제가 습득한 죽음에 관한 작은 지식으로 죽는 사람은 제대로 죽게 하고 산 사람은 슬픔 속에서도 견딜수 있게 한 것 같아서 보람이 있었어요. 봄꽃 피는 날 통증없이 떠나서 다행이예요.

평온관에서 김여환

첫째 지은이가 돌아가신 어머니께 쓴 편지.
첫째 지은이가 돌아가신 어머니께 쓴 편지.

둘째 효은이가 돌아가신 어머니께 쓴 편지.
둘째 효은이가 돌아가신 어머니께 쓴 편지.

병원에서 등교하는 지은이와 효은이.
병원에서 등교하는 지은이와 효은이.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23):최후의 건강식단①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암 환자들이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먹는 닭죽 요리법

입력 : 2014.04.09 04:52

 

용수 할아버지는 80세 된 췌장암 환자였다. 암 진단 전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건강했다. 하루 일을 수첩에 빼곡히 메모할 정도로 기억력이 또렷했고, 먼저 떠난 부인 대신 다운증후군 막내딸을 돌봤다. 그러나 그는 암을 진단 받고 좋아하던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큰딸의 권유로 채식 위주로 건강을 찾아주는 한 치유센터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작은 딸이 평소 아버지가 좋아 하시던 돼지고기 수육을 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은 할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그대로 들어갔다. 슬프게도 용수 할아버지는 고기반찬을 너무도 그리워했다.

현대의학으로 완치 할 수 없는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특히 내가 만나는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은 목숨을 걸고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했다. 그들은 무청과 우엉 등의 뿌리채소를 넣어 달인 야채스프를 안 마셔 본 사람이 없었으며, 검은 콩을 넣은 현미채식을 안 한 환자가 없다. 나도 전업주부로 살 때보다는 음식 조리법이 표시 나게 달라졌다. 그러나 맛이나 사랑보다는 건강으로만 흘러가는 식단이 과연 옳은 것일까?

어느 따뜻한 토요일, 말기암 환자와 보호자, 의사, 그리고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는 닭죽이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들려주는 ‘음식’이란 무엇인지, 또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들의 대화를 동영상으로 들어 보자. (총 5회로 연재 될 예정)



건강한 닭죽 레시피

삼계탕은 몸이 지치고 기운이 떨어질 때 먹으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음식이다. 닭고기와 달걀을 선택할 때는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금지하는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그냥 닭도 무방하다. 무책임한 생산자가 가축에게 함부로 호르몬을 사용하는 일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기 속의 미량의 호르몬 때문에 고기 먹기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오히려 고기 속 포화지방의 양이나 고기를 볶고 굽고 튀길 때 발암물질이 형성되기 쉽다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닭고기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서 환자의 기력 회복에 좋다. 삶은 닭국물에 녹아 있는 기름을 제거하는 것이 일반 삼계탕과는 다른 요리법이다.

재료는 무항생제로 키운 토종 닭 한 마리, 양파2개, 당근 1/2개, 파 한뿌리, 마늘 5쪽, 생강 조금, 통후추 5알, 찹쌀 1컵 , 녹두 30g, 현미찹쌀 1/2컵, 지정 20g, 표고버섯 불린 것1개, 황기, 대추, 행인, 가시오가피 약간.

1. 닭 손질하기 : 닭은 꽁지의 기름, 뱃속의 기름 등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둔다.
2. 재료 손질하기: 찹쌀과 현미찹쌀, 녹두는 깨끗이 씻어 물에 충분히 불려 물기를 뺀다.
3. 닭 삶기: 닭, 양파, 당근, 파, 마늘, 생강, 통후추, 한약재(황기, 대추, 행인, 가시오가피 등)를 넣고 한시간 정도 끓여 닭이 잘 익으면 닭을 건져낸다. 닭국물을 체에 걸러 냉장고에 한 두시간 정도 두면 기름이 굳어져서 제거하기 쉽다.
4. 삼계탕 죽 끊이기 : 불린 찹쌀과 현미찹쌀, 녹두, 지정, 표고버섯 다진 것, 파, 마늘 다진 것에 닭국물을 1.5배 분량 정도 붓고 천일염으로 약하게 간을 한다. 찜기에 뚜껑을 덮지 말고 한 시간 정도 찌면 죽이 완성된다.
5. 완성하기: 죽과 닭국물에 닭고기를 얹어 후추가루를 곁들여 낸다.


동영상 출연진(1~5편): 가나다 순
김여환(가정의학과 전문의, 대구의료원호스피스 센터장)
이춘호(영남일보 기자, 동요가수)
임재양(외과 전문의, 임재양외과 원장)
박금숙(암환자), 박금자(환자의 언니)
정미숙(사별자 가족)
함민수(경북도립교향악단 호른연주자, 오카리나 봉사자)
황철환(회사원, 발마사지 봉사자)
촬영: 황완섭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24):최후의 건강식단②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사람들은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갈까?

 
입력 : 2014.04.16 05:13

 

2012년 여름 나는 대구 중심가의 한 아름다운 집에 있었다. 그 집 부엌은 꽤나 넓어서 말기 폐암으로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해 있는 금숙씨와 그녀의 언니 금자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폐암으로 호흡곤란 증세가 있는 금숙씨가 입원한지 한 달 만에 하는 바깥나들이였다. 그래서 밥만 달랑 먹으면 허전할 것 같아 오카리나 연주자와 동요가수를 초대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남편을 떠나보낸 비슷한 연배인 미숙씨한테도 연락을 하니, 딸과 함께 와서 식탁 차리는데 도와준다고 했다.

호스피스 봉사자인 황 선생이 이동식 산소 2통과 휠체어를 차에 싣고 금숙씨를 모셔왔다. 모두들 암이 지긋지긋 할 것 같아서 항암성분이 있다고 하는 식품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의사가운을, 금숙씨는 환자복을, 미숙씨는 상복을, 그리고 황선 생은 분홍색 봉사자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소독 냄새나는 하얀 병원이 아닌, 구수한 음식냄새가 나는 따뜻한 부엌에 모여 함께 밥을 먹었다.



모임 전날, 금숙씨에게 환자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 평상복이 한 벌도 없었다. 보통 환자들은 입원하는 날 입고 온 옷을 입원실 옷장에 보관한다. 언니인 금자씨가 “입원하기 전에 벌써 싹 정리했더라구요. 입원하는 날 입고 온 옷도 나를 주면서 버리라고 했어요. 하여튼 희한한 애예요. 암 진단 받던 날도 같이 따라간 조카 신발을 사주고 오더라니까요”라면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날에는 언니 옷 한 벌을 빌려 입고 언니와의 ‘마지막 식사’를 하러 나온 것이 분명했다.

음식 차리는 것을 도와주러온 솜씨 좋은 미숙씨는 모임이 있기 2주일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호스피스병동에 있는 동안 미숙씨는 아픈 남편이 잠들면 어두운 병실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했다. 칼칼한 구정뜨개실로 큼지막한 쿠션을 떠서 주위사람에게 여름 선물을 했다. 나도 한 개 받았다.

죽어가는 남편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뜨개질을 하는 작은 움직임이 목 놓아 울부짖는 어떤 보호자보다 슬퍼보였다. 미숙씨는 암에 걸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한 사람은 상실의 슬픔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다. 나는 미숙씨를 많이 걱정하지는 않았다.

황 선생은 능숙한 발마사지사이다. 그가 다녀간 날은 환자들이 통증 없이 깊은 잠에 빠진다. 5년 전, 황 선생의 형이 내 환자였다. 젊은 나이였지만 온 몸에 누런 황달이 와서 떠나갔다. 덩치 큰 황 선생이 형님 베개를 들고 꺼이꺼이 울면서 임종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호자로 있다가 호스피스 봉사자로 변하면 그 봉사의 색깔이 남다르다. 말하지 않는 환자의 불편함도 읽어낸다.

나는 지난 7년동안 차디찬 죽음과 함께 호스피스 의사로 살아왔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마지막 주치의도 됐다. 죽음이 다가오면 통증이나 피로 같은 여러 가지 증상이 많아진다. 환자들은 적당한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증상이 조절되면 살아온 모습 그대로 마지막까지 지냈다. 그래서 이제 와서 나는 삶보다 죽음을 먼저 배우지 말라고 말을 바꾼다. 금숙씨처럼 인자하게 잘 살면 죽음이란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모임이 있고 한 달 뒤, 그녀는 평화롭게 떠났다.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25):최후의 건강식단③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죽음은 자식의 죽음

 
입력 : 2014.04.24 04:06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물고 있을 뿐이죠.
- 파울로 코엘료의《알레프》중에서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면서 섞여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보다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그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누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을 지친 환자가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의 간병을 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뭐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12살짜리 뇌종양 환아(患兒)는 고소한 과자를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기자가 말기 폐암환자에게 물었다.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 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그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저는 그런 것은 선배가 되기 싫은데요”라고 쓸쓸하게 말했다.


죽음이란 90살에 마음 독하게 먹고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금숙·금자씨 자매는 남들보다 20년쯤 일찍 찾아온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미숙씨도 온갖 정성에도 불구하고 먼저 떠나야만 하는 남편을 차분히 돌봤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죽음은 ‘나’나 ‘남편’의 죽음이 아니다. 자식의 죽음이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말기 뇌종양을 진단 받았을 때 이미 반쯤 죽었다고 했다.

나는 가족에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거두는 어떤 희망의 이야기도 뽑아낼 수 없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은 남은 사람들의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봐, 경제적으로 힘들까봐 등등 숱한 걱정을 몰래 했다.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져 있고, 살아남은 이들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고 말한다.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26):최후의 건강식단④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3개월 남겨 놓고 백내장 수술한 덕수 할아버지

입력 : 2014.04.30 05:11

왜 건강에 지름길을 찾을까?


‘성형수술이라도 했나?’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생 남옥이가 이런 표정으로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학교 때보다 살이 많이 빠졌다. 그것도 22㎏이나. 결혼할 당시 몸에 맞는 웨딩드레스가 딱 한 벌밖에 없을 정도로 뚱뚱했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말라깽이다. 그래도 체질량지수(BMI:Body Mass Index)가 18.5이므로 저체중은 아니다.(참고로 정상체중의 BMI는 18.5~25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년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노력을 했고, 지금도 한다.

의사들이 말하는 ‘살빼기’ 원칙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다. 움직인 만큼 먹는 것이다. 나는 아침식사 준비하기 전과 퇴근하기 전에 엉거주춤 앉았다 일어나는 스쿼트 운동을 50개씩 한다. 3분도 안 걸린다. 이틀에 한번은 3㎞ 정도 걷는다. 현미 채식으로 식단을 준비하고 고기는 가끔씩만 먹는다. 그 덕분에 부모님과 형제들은 당뇨병에 시달렸지만, 나는 가까스로 피해 간다. 그러나 심각하게 체중을 줄인 비결을 말해주면 “그냥 이대로 게으르게 살래요. 먹고 싶은 것 다 먹다가 조금 일찍 갈래요”라고 하거나, “스님처럼 80살까지 살기보다는 사업가로 70살까지 사는 것이 낫겠어요”라고 한다.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서 선 사람들이 간절하게 더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토록 쉽게 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오십까지 살면 오십까지 산대로, 구십까지 살면 또 그 세월만큼 헤어지기가 서운하다. 손자 결혼식 때까지만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삶의 미련한 집착은 아니다.

현대의학은 세련된 학문이다. 흰자위가 샛노랗게 변한 말기 암환자인 덕수 할아버지에게도 광명(光明)을 찾아 주었다. 덕수 할아버지는 바로 코앞에 있는 것도 부옇게 보여서 백내장 수술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복부에 통증이 생기고 황달이 왔다. 말기 담관암이었다. 백내장 수술을 미루고 대학병원에 가서 응급으로 담즙 빼내는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덕수 할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도착 했을 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단 한번이라도 세상을 환하게 보는 것이었다. 목숨이 겨우 3달 남짓 남은 환자가 백내장수술을 하는 것이 의료의 낭비가 아닌지에 관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덕수 할아버지는 소원대로 피한방울 흘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을 받고, 남은 생애를 훤하게 살다가 떠났다.

우리는 발전된 현대 의학을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신중한 결정해야 한다. 일본인의사 곤도 마코조는 그의 저서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에서 극단적인 충고를 멋모르고 했다. 그는 책에서 “위암, 식도암, 간암, 자궁암 같은 암은 방치하면 통증 같은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설령 통증이 있더라도 모르핀으로 조절할 수 있다”라고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말은 틀렸다. 적절한 현대의학의 치료는 환자의 여명뿐만 아니라 통증까지도 없앤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게 치료해 보이는 환자들도 실은 목숨 걸면서 결정하는 일이다.

나는 죽기직전까지 의미 없는 현대의학의 치료에 매달리는 환자, 근거 없는 대체의학에 비현실적인 희망을 걸고 있던 환자, 그리고 현대의학을 송두리째 거부한 환자의 마지막을 돌봤다. 모두가 마지막에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솔깃해서 찾아낸 지름길은 되돌아 올 수 없는 먼 길이 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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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시한부 암환자가 10년을 살았다. 그 이유는..."

입력 : 2014.05.14 04:31
말기 암환자의 가족과 함께 밥 한 끼 먹는 일이 끝났다.
-환자의 언니께서 오늘 식사를 마치면서 한 말씀 해주세요.
“저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 하고 싶을 뿐이다.”

-봉사자께서는.
“아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직전까지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환자분과 언니 분을 무사히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겠다.”(황철환: 발마사지 봉사자)
“갇혀진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다가 오늘 부엌에서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음악과 음식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뜻 깊었고 살면서 오늘 같은 날이 계속 있었으면 한다.”(함민수: 오카리나연주 봉사자)

-사별자 가족으로서 바람이나 덕담이 있으면.
“애들 아빠 보낸 지가 아직 보름도 안됐는데 이렇게 나서기가 좀 그랬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싶다.”

-외과의사로서.
“암 전공을 하다 보니 환자들한테 미안한 점이 많고 의사로서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80%는 낫는다고 생각하지만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사들이 함부로 이야기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10년 이상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전국적으로 모으니까 꽤 많았다. 1기나 2기로 90%이상 완치되었다고 하는 환자도 6개월 만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달밖에 못산다고 했는데 10년, 20년 사는 사람도 드물게는 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과 죽음은 무엇이 결정을 하는가? 하늘의 뜻일 수도 있겠지만 정성을 담은 물 한 그릇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거기에 정답이 있는 것 같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에서 잠깐 벗어나서 누군가를 한없이 돌봐주는 좋은 기운으로 밥 한 끼 먹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호스피스의사로서.
“말기 암환자가 되면 고기를 먹어서라든지 성격이 별나서라든지 무언가 잘못해서 그럴 것이다라는 선입견으로 본다. 배우자가 암에 걸리면 남편을 혹은 아내를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오신 금숙님은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하기 전에 옷이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병실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보이셨다. 많이 배웠다. 호스피스의사로서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환자는.
“약속시간 몇 시간 전부터 기다렸다.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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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를 고통 속에 죽게하는 정부

입력 : 2014.05.21 04:22

암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면

치통(齒痛)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다가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하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6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정용량 이상을 올리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조절이 잘된다. 더군다나 날록손(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마약성 진통제)’이야 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구강형 마약성 진통제
구강형 마약성 진통제
사망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 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되는 묵직한 암성통증도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마지막 순간에는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남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알려주면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도 가느다란 희망을 가진다.

얼마 전, 50대 폐암환자 정구씨에게 고용량의 진통제를 처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른쪽 가슴부위의 통증을 다스리느라 한꺼번에 60알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기 때문이다. 나는 60알을 처방한 근거와 마약성 진통에서 고용량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혀야 했다. 정구씨에게 투여한 마약성 진통제의 종류에 대해서도 73만원의 삭감통보를 받았다. 굳이 먹는 약을 쓰면 되는데 몸에 붙이는 패취와 같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먹는 마약성 진통제만을 처방했다면 정구씨는 한꺼번에 8알씩 매일 죽을 때까지 먹어야만했다.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번거로웠지만 꼼꼼히 그 이유를 적어 의의신청을 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조차 마약성 진통제 쓰는 것이 원활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프게 죽어갈 수 밖에 없다.
패취형 마약성 진통제
패취형 마약성 진통제
2008년 기준 국내 1인당 모르핀 사용량은 2.5480mg으로 세계 42위 수준이다. 전 세계 158개국 평균치인 6.0051mg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지는 수치이다.
우리는 아직도 매년 약 7,000여 명의 말기 암환자가 제대로 된 통증 관리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임종을 맞는다. 이제는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모두가 통증 완화치료에 대한 열린 마을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할 때다. 살아 있는 우리도 언젠가 한번은 이곳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암환자를 고통 속에 죽게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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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암에 걸리자 22살 어린 장애인 아내는...

입력 : 2014.05.28 04:52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석주의 풀꽃.

‘뻔한’ 이야기였다. 실화라는 것만 빼면 소설이나 영화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흡사했다.

철주씨는 첫 결혼에 실패한 알코올 중독자였고, 혜연씨는 희귀한 윌슨병(구리의 대사 장애로 간경화와 신경증상이 있는 열성유전병)을 앓고 있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이었다. 그들은 각각 치료를 받기 위해 같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에 빠졌다. 22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니까, 혜연씨 부모는 펄펄 뛰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던가?

철주씨는 말도 어둔하고 한쪽다리도 절뚝거리는 혜연씨를 ‘여인’으로 봐주는 유일한 남자였다. 그들은 환자복을 벗고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검정색 턱시도를 차려 입었다. 그리고 혜연씨는 고아원에 버렸던 철주씨 전처(前妻)의 아이들을 데려왔다.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한 새엄마였으나, 그저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금방 10년이 흘렀다. 6개월 전쯤 철주씨 혓바닥에 땅콩만한 덩어리가 생겼다. 설암(舌癌)이었다. 사위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장인은 “내가 어쩌자고 그 결혼을 허락 했을꼬”라며 가슴을 쳤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병든 딸이 죽어가는 사위를 간병하는 것도 볼썽사나웠고, 또다시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딸의 팔자도 서러웠다. 철주씨의 암은 방사선치료에도 자꾸 커져서 목 뒤쪽에 사과만한 덩어리가 툭 불거졌다. 이제 그는 물 한모금도 삼킬 수 없는 말기 암환자가 됐다.
필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
필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
바짝 여윈 몸으로 혜연씨는 남편의 몸도 구석구석 닦아주고, 통증이 생기면 비틀비틀 걸어 나와서 불편함을 알렸다. 그러나 나는 철주씨의 죽음이 다가오면서 혜연씨 아버지의 가슴치며 통곡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했다. 혼자 남겨질 혜연씨는 실로 걱정이었다. 철주씨가 떠난 후, 친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안 갈수도 없을 것이다. 혜연씨 말로는 “나는 장애인 연금이 나와서 괜찮아요”라며 눈물만 흘렸다. 그래도 철주씨가 떠나면 혜연씨의 법적 보호자는 그녀와 고작 11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대학생 의붓아들이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떠나고 새엄마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아들은 “당연히 엄마와 같이 살아야죠”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병원에서 의사생활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행운 중의 하나는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와 비밀스럽게 만난다는 것이다. 물론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하나같이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듯 환자의 사연에 빠져든다. 그들이 남기는 이야기가 상투적인 사생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박하게 사느라 잃어버렸던 삶의 진정한 가치관, 이를테면 ‘사랑, 우정, 배려, 용서’를 우리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내어 준다.

인생은 스스로가 아니라 저절로 새겨지는 한권의 소설책이다. 환자들은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서 많은 펀치를 맞은 지쳐버린 복서처럼 만신창이가 된 채 입원을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곱씹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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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세 암환자, 임종이 가까워 오자 "내가 왜 벌써 죽어야 해?”

입력 : 2014.06.04 04:50

 

“자연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세상에서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을 선사한다.”
-장 그르니에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건 따로 있다. 예를 들면 여자들이 “나 살쪘어?”라고 물어볼 때 실수로라도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된다는 것. 위장 내시경을 할 때는 숨을 입으로 들어 마시면 안 된다는 것. 버림받은 첫사랑을 30년 뒤에 만나면 그때 버려줘서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등이다. 경험을 통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몰라서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내가 왜 벌써 죽어야 하는데?”
태순할머니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 봤다. 얼떨떨했다.
“이렇게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 거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안 아프게 해줘서 고맙다며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던 77세 대장암환자였다.

당황한 사람은 내가 아닌 그녀의 딸이었다.
“아니, 엄마가 왜 그럴까요? 나쁜 소식을 알리니까 다 받아들인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굿이라도 해보자하고 한 것도 취소하고 부랴부랴 입원하셨는데….”
딸이 너무도 상심해 보여 잠시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태순할머니와 나, 단 둘이 남았다.
“할머니, 이제까지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세요?”
“그래.”
태순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세월호 사건도 있었잖아요. 할머니 손자 같은 고등학생 아이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이럴 때는 괜찮아질 거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으로 위로를 하는 것보다 곧 밀어닥칠 현실을 귀띔해 주는 것이 낫다.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그리고 아무리 의사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태순할머니는 눈을 아래로 깔고 그녀가 죽어가는 것이 마치 내가 아무런 치료를 안해서인양 투덜거리셨다.

태순할머니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수용에 이르는 죽음의 5단계를 거꾸로 밟아갔다. 그녀는 40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을 위해서 억척같이 살았다. 아낌없이 베풀면서 잘 살아온 사람들은 마지막 날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죽음의 순서는 그리 상관이 없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 어느 단계도 밟지 않는 경우가 제일 안타깝다. 그런 환자와 가족은 ‘죽음’이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한다.

2주일이 지나자 태순할머니는 “눈을 떠보니 오늘도 살아 있는 거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드디어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통과했다.
“할머니, 이제까지 살아오신 것처럼 따님을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 오신대로 살아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힘들어 하시는 동안 따님이 많이 우셨어요.”
나는 기다렸던 작은 위로를 했다.

잘 죽어가기 위해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속에 들어가 보는 것이 아니다.
“저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 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해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그리고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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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에게 신이 내린 선물

 
입력 : 2014.06.11 04:16

 

죽음보다 더한 것은 통증이다.
-슈바이처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1964년에 발표한 <죽음의 춤>이라는 책에서 암과 싸우는 어머니의 고통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마약성 진통제가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보부아르의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엄청난 통증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라고 썼다. 톱니바퀴로 배를 자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것은 보부아르의 말처럼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일 것이다.

2012년 한 해, 전 세계에서 8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암으로 삶을 마감했고, 내 어머니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는 폐암 환자였다. 그러나 폐암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은 별로 없었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것조차 힘들어 할 정도로 심각한 통증을 호소했다. 폐암이 머리부터 척추, 골반까지 몸의 중심을 이루는 뼈로 빼곡히 전이됐기 때문이었다. 뼈란 그저 딱딱한 구조물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풍부한 혈관과 여러 종류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어 암세포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암이 뼈로 전이 되면 뼈의 표면에 풍부하게 있는 신경을 자극하기도 하고 뼈의 파괴가 진행되어 골절을 유발하기도 한다. ‘뼈를 에이는 듯한’이란 표현이 있듯이 어머니는 매우 곤혹스러운 통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나는 호스피스병동의 다른 보호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어차피 오래 살수 없다면 안 아프면서 떠나시기를 원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적절한 방사선치료와 모르핀의 투여로 편안한 임종을 맞이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처방하고 있는 모르핀 앰플.
호스피스병동에서 처방하고 있는 모르핀 앰플.
1964년과 2012년, 두 어머니들의 죽음이 확연히 다른 이유는 순전히 모르핀 때문이다. 나는 호스피스 의사가 된 뒤 ‘한번은 죽어야하는 인간’에게 신이 내린 마지막 선물이 모르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1803년 독일의 세터너(Serturner)가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Morpheus)을 따서 만든 이 약은 아편에서 추출한 것이다. 오늘날에의 아편은 마약 물질로 분류돼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중세 때의 아편은 궤양이나 우울증 환자의 치료제였다. 또 불과 200여 년 전만 해도 이질, 콜레라 등 전염병의 특효약이기도 했다. 아편은 한때 고통을 잠재우고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신의 선물이라고 칭송 받았지만, 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되고 범죄 조직의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기 시작하면서 ‘몹쓸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지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료진조차도 마약성진통제에 대해 많은 오해와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아버님이 입원하시고 부쩍 더 아프다고 하시네요. 혹시 마약에 중독되신 것은 아닐까요? 나중에 진통제가 듣지 않아서 아프시면서 떠나실까봐 걱정이예요. 저렇게 진통제를 많이 쓰면 약 때문에 혹시 일찍 떠나시는 것은 아닌가요?”

어제 입원한 재룡할아버지의 며느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 왔다. 재룡 할아버지는 대장암이 복막으로 전이된 환자로 간호사에게 내가 처방한 것보다 ‘2시간 먼저’ 약을 요구했다. 그가 마치 ‘중독’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단순히 심한 통증을 느꼈을 뿐이었다. 통증을 가진 환자의 1만명 중 2명 미만의 환자만이 마약성진통제에 대한 중독을 나타낸다. 이것은 초보 골퍼가 홀인원을 할 확률보다 낮은 것이다.

중독이란 단순히 신체적인 의존을 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마약을 사용하기를 원한다. 기분이 ‘뜨길’ 원하고 마약이 주는 해방감을 얻어 ‘일상에서 탈출’을 위해 마약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통증을 가진 환자는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진통제를 찾고 통증이 사라지면 더 이상의 진통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약성 진통제는 쓰면 쓸수록 통증에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암이 커져서 통증이 심해지면 그만큼 더 쓰면 되니까 나중을 생각해서 아껴서 쓸 필요는 없어요. 아버님께서 진통제를 자주 달라고 하는 이유는 마약중독이 되신 것이 아니라 아직은 통증을 조절하는 단계라서 그래요. 아버님한테 필요한 진통제의 하루용량을 찾아내면 지금처럼 자주 아프다고는 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마약성진통제는 여명을 절대로 앞당기지 않아요. 오히려 통증이 없어지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더 오래 사실 수도 있답니다.”

통증이 조절된 재룡 할아버지는 평소 즐겨 마시던 구기자 술을 며느리에게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두발을 부드럽게 만져준 발마사지 봉사자와 함께 즐겁게 한잔 했다.(병원에서 술을 드시게 했다고 놀라지 마시길.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가 평소에 좋아 했던 막걸리나 소주 한잔 정도는 드시게 한다.)
암성통증이 조절되어 호스피스병동에서 즐겁게 지내는 환자와 봉사자들.
암성통증이 조절되어 호스피스병동에서 즐겁게 지내는 환자와 봉사자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통증에서 해방 시켜주는 훌륭한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아직도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말기 암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약성진통제를 거부하고 의미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얼굴을 똑바로 응시 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학성산의 행복찾기
글쓴이 : 학성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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