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의사가 태어나지 않은 당신의 아이가 심신쇠약 질병을 갖고 있어 치료를 위해 당신이 알약을 먹어야 한다고 권한다면 기꺼이 승낙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가 당신에게 아이의 성별(性別), 머리카락과 눈의 색깔, IQ(지능지수)까지 결정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더 높은 IQ를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나 더할 텐가. IQ 10, 50 또는 100?
한국의 부모들은 학업성적 경쟁처럼 서로를 능가하려 해 가능한 한 가장 높은 IQ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기계'와 같을 수 있다. 사람은 불완전하며,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 불완전함이다. 그런데 1997년 개봉한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첨단 생명과학기술을 이용해 나쁜 인자(因子)를 모두 제거하고 최상의 유전자 조건만 갖춘 '맞춤형 아기(designer baby)' 등장이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향후 10~15년 내에 현실이 될 것이며, 우리는 매우 어려운 도덕적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앞당기는 기술이 급진전하고 있다. 2012년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와 MIT의 펑 장이 연구실 내 동식물 유기체의 DNA를 교정(矯正)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가 핵심이다. 그전까지는 DNA 실험과 교정을 위해 수년간의 경험과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필요했지만, 크리스퍼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크리스퍼는 교정해야 할 DNA를 찾아내는 '가이드 RNA'와 DNA를 잘라내는 'Cas 단백질', 이 두 가지를 활용해 인간이나 동식물의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 서열을 갖는 DNA를 교정할 수 있다. 즉 원하는 부분을 쉽고 빠르게 찾아내 며칠 만에 유전자 교정·조작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용도 수십달러로 저렴한 데다 사용도 쉬워 크리스퍼는 유전자 연구에서 혁명적 변화와 민주화를 가져왔다. 전 세계 수천 개의 연구소가 크리스퍼를 기반으로 한 유전자 교정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규제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매우 허술한 상태다. 규제 당국이 현재 어느 단계까지 이 기술이 발달해 있고 무엇이 가능한지를 정확하게 모르는 탓이 크다.
흥미롭게도 모든 윤리적 고려보다 과학발전을 더 우선시하는 중국은 이 분야에서 놀랄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14년 중국 과학자들은 유전자 변형 원숭이들을 수정란 단계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고, 이듬해 4월엔 중국의 다른 연구팀이 인간 배아(수정 후 첫 8주까지의 태아) 유전자 교정을 위한 최초 시도를 상세하게 기술한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말에는 허젠쿠이(賀建奎) 남방과기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교정 아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류 최초의 살아 있는 '맞춤형 아기'는 쌍둥이 소녀 중 한 명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수정란 상태에서 에이즈(AIDS) 감염 관련 유전자가 제거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과학계는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허 교수가 시도한 방법의 위험성을 규탄하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유전자 편집' 기술의 진보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이 기술은 비용이 싼 데다 사용법이 널리 퍼져 있다. 따라서 전 세계 과학자들은 끔찍한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인간 유전자 편집은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만든다'는 인류 창조 이래 금기시돼온 판도라의 상자를 열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위험성이 높다. 단적으로 유전자 편집을 욕심 내 무리하게 하다가 돌연변이나 전염병 등을 낳으면 인류 멸절에 가까운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루비콘강에 도착했다. 인간은 그들 자신의 진화를 스스로 수정하기 직전 단계에 있다. 문제는 인간이 새롭게 발견한 이 강력한 힘을 지구와 인류에 도움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비약적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이로울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한 '부자들의 강력한 자녀들'과 이들에 맞서 힘겹게 버텨야 하는 '유전적 하층계급'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인류가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면밀하게 감시하고 예방하지 않으면, 세계적 대재앙이 될 수 있다. 이를 집단적으로 올바르게 하는 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조선일보 비벡 와드와 미국 카네기멜런대 석좌교수·하버드대 로스쿨 특별연구위원
입력 201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