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항서 감독(59)이 베트남에서 쓴 성공 신화에는 두 명의 숨은 공신이 있다. 이영진 베트남 축구대표팀 수석 코치(55)와 배명호 피지컬 코치(55)다.
“이전까지 베트남 감독의 평균 수명(재임 기간)이 8개월밖에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었다. 외국인 감독의 무덤이었다. 그런데도 이영진 코치는 저를 믿고 베트남으로 왔다. 누구보다도 가장 고생한 사람이다.”
박 감독이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다음 날인 16일 밝힌 내용이다. 이 코치는 선수 시절이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럭키 금성에서 박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감독직을 맡은 박 감독이 “함께하자”고 제안하자 이 코치는 선뜻 따라나서 타국살이를 시작했다.
박 감독은 평소 이 코치를 자신의 ‘브레인’이라 부른다. 이 코치는 “이번 대회에 단순히 ‘3백(수비)’ 전술만 갖고 나온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4백도 쓰고 상대 팀과 경기 흐름에 따라 변화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전술을 짜서 나왔다”고 말했다. A B C D 등 여러 상황을 대비해 미리 전술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경기 중 이런 상황이 닥치면 미리 준비한 전술을 선택한다. 박 감독은 “위기 상황이 생겨 마음이 다급해질 때쯤이면 이 코치가 ‘상황이 됐습니다’라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이미 저랑 준비했던 전략을 쓰자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응 방안을 제시해준다”고 말했다.
배 코치의 손을 거치면서 3시간 이상 늘어지던 베트남의 훈련 방식은 1시간 내외의 짧고 강한 트레이닝으로 바뀌었다. 하체는 튼튼하지만 상대적으로 상체가 부실하던 베트남 선수들은 배 코치 주도로 실시한 ‘공포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단해져 갔다. 이전까지 70분을 뛰면 활동량이 급격히 줄던 베트남 선수들은 체력이 크게 좋아졌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박 감독이 무난하게 선수들과 동화되는 데에도 배 코치가 윤활유 역할을 했다.
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