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보은행복

[스크랩] 재산 다 주고 쓰러지니 전화번호 바꿔 이사 간 자식들- 김명희 시인·소설가 /[중앙일보] 2018.12.23

good해월 2018. 12. 24. 08:24

김명희 사진김명희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2)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편집자>

 
벽에 걸린 2018년 12월 달력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같다. 연말이라 그런지 한 해가 가기 전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자고 가족들이나 지인들 모임도 잦다. 창밖을 보면 겨울바람에 앙상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보면 나는 종종 쓸쓸해진다. 오래전 내가 만났던 어느 노부부의 사연이 나무를 보면 떠오르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밑에서 매일 누군가 기다리던 노부부

 
내가 한 주에 두 번씩 트럭에 과일을 싣고 용인으로 장사를 다니던 어느 봄날이었다. 이동 낚시터 근처로 장사를 갔다가 우연히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노부부는 항상 마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있었다.
 
과일을 싣고 용인으로 장사를 다니던 어느 날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노부부는 항상 마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있었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과일을 싣고 용인으로 장사를 다니던 어느 날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노부부는 항상 마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있었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그날도 마을회관 느티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과일 사라고 방송을 틀었다. 그때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손가락으로 한 집을 가리키시며, 할망구가 혼자 있을 테니 그 집에 딸기 한 바구니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딸기를 들고 그 집으로 갔다. 낡은 대문 입구로 들어서니 바싹 말라죽은 화분과 녹슨 농기구들이 어수선했다.
 
“계세요?” 한참 뒤 힘겹게 방문이 열렸다. “뉘시유?” “과일 장수인데요. 어느 노신사분이 딸기 가져다 드리라고 하시던데요?” 할머니는 손으로 바닥을 밀며 문 쪽으로 가까이 오셨다. “보다시피 내가 병신이라 걷지를 못해. 우리 집 양반이 읍내 나가면서 보냈나 보네.” 그 모습을 본 나는 딸기를 싱크대로 가져가 깨끗이 씻어 앞에 놓아 드렸다. “할머니, 심심할 때 잡수세요.”
 
처음 두 분과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장사를 마치고 그 집에 잠깐씩 들렀다. 언제부턴가 두 분은 내가 그곳에 장사 가는 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앞으로 제 과일은 별도로 사지 마세요. 그 대신 제가 가끔 뵙고 갈게요. 제가 올 때마다 과일을 사시면 두 분이 너무 부담돼서 제가 불편해요” 했더니 “알았으니 잠깐씩 들러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자식 같아서 그래” 하셨다.
 
할아버지 부탁으로 딸기 한 바구니를 집에 가져다 드렸다. 집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계셨다. 나는 가져간 딸기를 씻어 앞에 놓아 드렸다. [중앙포토]

할아버지 부탁으로 딸기 한 바구니를 집에 가져다 드렸다. 집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계셨다. 나는 가져간 딸기를 씻어 앞에 놓아 드렸다. [중앙포토]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봄볕이 드는 마루에 앉아 속사정을 털어놓으셨다.
“아기 엄마, 우리 집 양반은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어. 힘든 삶이었지만 착실하게 살아오는 동안 자식 사 남매 시집·장가들이고 작지만 노후에 쓸 돈까지 조금 남더군…. 그 거면 저승 갈 때까지 애들한테 짐은 안 되겠거니 생각했지.”
 
나는 노점장사로 검게 그을린 손으로 그 할머니 손을 가만 잡아드렸다. 할머니가 가늘게 한숨을 쉬시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후 아들놈이 사업한다고 몇 푼, 사위가 점포 확장한다며 몇 푼, 막내가 아파트 늘려간대서 또 보태고. 그 양반 인생이랑 바꿔온 이 논 저 논 다 팔았지만, 아깝지 않았어. 늘 더 못 주는 게 미안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들었다.
“세월이 가면서 논은 다 남의 손에 넘어갔고 빈손이 되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놈들은 점점 소식이 뜸해지더군. 내가 이 꼴로 쓰러졌을 때 다급히 전화해보니 한 놈도 연락이 안 되지 뭐야. 내가 쓰러진 그 날 우리 두 늙은이는 병실에서 밤새 울었지. 한날에 목숨을 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놈들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소식 올 때만 기다리며 살고 있어. 아침 먹고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자식 놈들 기다리다 해 떨어지면 하루를 접는 게 일이 돼버렸지…. 
 
그런데 그 후 알게 되었다우. 자식 놈들 모두 전화번호를 의도적으로 바꾸고 이사 가버린 사실을 말이야. 이런 기막힌 내 사정을 세상 누가 믿겠나? 아마 다 거짓말이라 할지도 몰라. 이제 우리 두 늙은이는 자식들을 찾지 않기로 했다우. 다만, 그놈들이 행여 마음이 변해 우리 두 늙은이를 찾아주려나 해서 이렇게 이사도 못 가고 있다우.”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밤중에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려서는데, 어린 두 남매가 나를 반겼다. “엄마, 카네이션 사러 언제 갈 거야?” 생각해보니 어버이날이 내일이었다. 나는 두 녀석과 꽃을 사러 가면서 용인의 두 분이 생각났다. 그 집에는 오늘도 내일도 카네이션은 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버이날, 나는 노부부의 집을 찾았다. 두 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더니 기뻐 웃으시는데 슬퍼 보였다. 그분들이 낳고 기른 사 남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앙포토]

어버이날, 나는 노부부의 집을 찾았다. 두 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더니 기뻐 웃으시는데 슬퍼 보였다. 그분들이 낳고 기른 사 남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앙포토]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부모님께 들러 꽃을 달아드리고, 카네이션 두 개를 더 사서 용인으로 트럭을 몰았다. 웬일인지 느티나무 아래 계셔야 할 두 분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른 그 집으로 가 보았다. 기척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대문을 밀며 들어갔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왔어요.”
“아요, 아기 엄마 왔네. 어서 와. 우리 두 늙은이가 병이 나 누워있네그려.”
하필 어버이날, 두 분은 자리에 누워계셨다. 마음이 먼저 탈이 나신 게 틀림없었다.
 
“어버이날이에요. 축하드려요. 얼른 건강 찾으세요.”
두 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더니 기뻐 웃으시는데 슬퍼 보였다. 그분들이 낳고 기른 사 남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주일 후 그 마을에 장사하러 다시 찾아갔다. 두 분은 느티나무 아래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셨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슬픔을 감추고 밝게 웃으시며, 감기는 이제 다 나았다고 하셨다. 두 분 드시라고 과일 봉지를 건네 드리고 차를 돌리는데 두 분 가슴엔 아직도 내가 드린 카네이션이 달려있었다.
 
나는 평택 쪽으로 화물차를 몰면서 백미러 속으로 멀어져가는 두 노인을 봤다. 두 분의 애타는 기다림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직업이 바뀌었고 핸드폰도 분실해 그분들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지금쯤 소식 끊었던 자식들 연락은 오는지 궁금하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환자 식판에 남은 음식 모아 끼니 때우던 그 할아버지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1)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편집자>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의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본다. 안성 살 때 일이다. 그때 나는 화물차에 방송 틀고 마을마다 과일을 팔러 다녔다. 산속 마을에서 정신없이 과일을 파는데, 불쑥 전화가 걸려왔다.
 
산속 마을에서 정신없이 과일을 팔고 있는데 아버지가 응급실에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병원에 도착하니 복도에 작고 초라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사진 pixabay]

산속 마을에서 정신없이 과일을 팔고 있는데 아버지가 응급실에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병원에 도착하니 복도에 작고 초라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사진 pixabay]

 
“명희야, 아버지 또 응급실 실려 왔다. 빨리 좀 와.”
가늘게 떨리는 엄마 목소리였다. 신선한 과일을 한차 실었는데, 참 난감했다. 더구나 그날은 추석 연휴 앞두고 물건을 제법 많이 사서 집안에 반은 덜어두고 나온 상태였다. 내 마음은 점점 시들어가는 과일에 머물러 있었지만, 몸은 이미 아버지가 실려 가신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급히 시동을 걸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하니 병원 복도에 작고 초라한 엄마 모습이 보였다.
 
“느 아부지 또 입원해야 한다는구나.” 
나는 의사와 잠시 면담하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저녁 시간이었다.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식판 때문에 복도는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나도 그제야 한숨 돌리며 대기실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때 우리 옆으로 노인이 슬리퍼를 끌고 천천히 와서 앉았다.
 
노인은 한쪽 발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그 발을 심하게 절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추레한 모습이다. 잠바를 걸친 것으로 보아 입원한 환자는 아니었다. 노인은 다 찌그러진 노란 양은냄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몇 종류의 음식이 조금 담겨있었다.
 
걸인의 동냥 냄비에 놓여져 있는 돈들. 병원에서 만난 노인은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몇 종류의 음식이 조금씩 담겨있었다. [중앙포토]

걸인의 동냥 냄비에 놓여져 있는 돈들. 병원에서 만난 노인은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몇 종류의 음식이 조금씩 담겨있었다. [중앙포토]

 
“영감님은 누가 아파서 오셨어요?”
초면인 엄마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픔이라는 공통점들이 있어서 그런지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유독 쉽게 말을 섞거나 친해진다.
 
그날 노인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인의 사연은 이러했다. 부도와 사기로 아들이 농약을 마시고, 그 충격으로 팔순 아내가 뒤따라 농약을 마셨다. 지금 중환자실에는 노인의 아들과 늙은 아내가 나란히 식물인간으로 누워 저승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할망구와 생떼 같은 아들이 저러고 있으니, 나는 죽을 자유도 없습니다.”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쪼그려 앉았다. 그는 시래기를 삶다 화상을 입었다며 우리에게 발을 보여주었다. 한쪽 발이 심하게 곪아 고통스러워 보였다. 상처가 깊은데 왜 치료를 안 받으시냐고 내가 물었다. 노인은, 아들과 아내 병원비도 많이 밀렸고, 그럴 여윳돈이 없다고 했다.
 
“영감님, 그 냄비는 뭐예요?”
엄마가 망설이다 노인에게 물었다.
 
“이거요? 내가 먹으려고, 저기 식판에 남은 것들을 내가 먹으려고… 모아요.”
노인은 입원한 환자들이 먹다 남긴 식판에서 환자들이 남긴 음식들을 그 냄비에 거두어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너무 충격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벌써 5년째 복도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노인은 병원 복도에서 5년째 입원한 환자들이 먹다 남긴 식판에서 음식을 냄비에 거두어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그 노인을 모시고 나가 순댓국을 한 그릇 사드리고 내 차에서 과일을 좀 챙겨드렸다. [사진 pixabay]

노인은 병원 복도에서 5년째 입원한 환자들이 먹다 남긴 식판에서 음식을 냄비에 거두어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그 노인을 모시고 나가 순댓국을 한 그릇 사드리고 내 차에서 과일을 좀 챙겨드렸다. [사진 pixabay]

 
나는 엄마와 함께 그 노인을 모시고 나가 순댓국을 한 그릇 사드리고, 내 차에서 과일을 좀 챙겨드렸다. 노인과 나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새벽에 잠시 복도로 나가보니 노인의 가슴엔 아직도 태울 것이 남았는지 주차장 끝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뒷모습이 쓸쓸한 노인을 바라보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돌아서는데, 흰 천에 덮인 한 육신이 지상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나가고 있었다. 한때는 누군가의 위안이었고 버팀목이었을 몸 하나가 이승을 하직하는 순간이었다. 중환자실 병상 하나는 떠나간 흔적을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운 환자를 받을 준비로 분주했다. 누군가의 어제가 세상을 뜨고, 누군가의 오늘이 또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어느새 올해도 겨울 한복판에 와 있다. 달력 한장이 넘어갈 때마다 추위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요즘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만났던 그 노인의 슬픈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어두운 밤, 창백한 병원 간판 아래 홀로 앉아 담배를 태우던 노인의 뒷모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중환자실에 있던 노인의 아들과 아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 노인은 아직 살아계실까? 이 세상에 계시든 하늘로 떠나셨든, 더는 아프고 힘겹지 않은 곳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출처: 중앙일보] 환자 식판에 남은 음식 모아 끼니 때우던 그 할아버지


출처 : 걸으며 노래부르자
글쓴이 : august l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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