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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무튼, 주말] 추어탕 배식일 꿰고 이발·빨래 척척… 노숙에도 기술이 있다- 이영빈 기자 / 조선일보 2019. 2.23

good해월 2019. 2. 24. 07:31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일러스트=안병현
노숙 사회에도 빈부 격차가 있다. 미숙한 이들은 무료 배식소에서 끼니만 때우고 따뜻한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당장 내일 새벽 하늘로 떠날 수도 있다. 매년 서울시의 노숙인 약 30~40명은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동사(凍死)한다. 하지만 원숙한 이들은 한 번에 두 끼니를 먹고, '맛집 무료배식소'를 찾아다닌다. 따뜻한 잠자리는 기본. 이발, 빨래, 목욕도 최고 인기 장소를 골라 찾는다. 노숙의 초심자가 은둔 고수를 만나 노하우를 배운다면 단기간에 신분 상승도 가능하다.

비결이 무엇일까. 서울역, 영등포역의 노숙 고수들과 4박 5일을 동행 취재하며 '노숙의 기술'을 물었다.

노숙인의 미식 로드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무료 배식소들 메뉴·시간 외워 골라 먹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20일 오전 6시 30분. 서울역 인근 무료 배식소 앞에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다. 오전 7시 30분이 되자 50명 정도가 줄을 섰다. 늦게 오는 사람에게 밥은 없다. 교회 목사의 간단한 한마디와 기도 뒤 식사가 제공된다. 이날 메뉴는 밥, 김치, 맛살조림, 시금치나물, 두부 배추조림, 갈비탕. 5년째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권홍만(52)씨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하루가 편하다"고 했다. 점심·저녁은 골라 먹는다. 아침 무료배식소는 단수지만, 점심부터는 복수이기 때문이다. 서울역 인근에는 5~6곳, 영등포역에는 4곳이다.

고수들은 어디서 어떤 반찬이 나오는지 정보를 공유한다. 19일 오후 5시쯤 "오늘 영등포역 '광야교회'에서는 생선가스와 추어탕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같은 시각 서울역 '따스한 채움터'의 반찬은 소시지 볶음과 어묵 볶음이었다. 서울역 인근 다른 무료배식소인 교회 '참좋은친구들'은 김치, 무생채와 같은 평범한 반찬이었다. 이런 날에는 당연히 서울역에서 영등포역으로 이동한다.

한 번에 두 끼를 먹는 노숙인도 있다. 배식 시간이 겹치지 않는 곳을 찾으면 된다. 배식 시간표를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영등포역의 '광야교회'는 보통 오후 5시 30분에 배식 시작. 바로 옆 '토마스의 집'은 그 30분 뒤다. 의지만 있다면, 당연히 가능하다.

30분~1시간만 투자하면 간식도 챙긴다. 선교행사다. 종교 단체는 서울역 광장에 천막을 치고 떡, 빵 등을 준비해 나눠 준다.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하면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선교 시간은 기관별로 다르다. 어떤 단체가 무슨 요일 몇 시에 오는지를 알아 놓고 맞춰 찾는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소주 한 잔도 빠질 수 없다. 비용은 기초생활수급비로 마련한다. 매달 20일에 나오는 약 47만원. 품앗이로 술과 안주를 산다. 서울시 전체 노숙인 약 3200명 중 30% 이상이 쉼터나 근처 쪽방에 주소를 두고 수급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통계다. 노숙인 쉼터 앞, 편의점 의자, 지하철역 출구에 걸터앉아 먹는다. 챙겨뒀던 간식도 이때 양지로 나온다.

겨울에 대처하는 방법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아파트, 주택 단지에서 솜이불 수거
추위를 피하는 법에는 왕도가 없다. 종이 박스와 이불, 구호단체에서 주는 외투가 방한 용품이다.

낮 동안 틈틈이 종이 박스를 찾는다. 깔면 바닥의 한기를, 세우면 몰아치는 바람을 막을 수 있다. 베짱이처럼 낮을 보내고도 따뜻한 밤을 꿈꾼다면 도둑 심보다.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던 A(52)씨는 "낮에 잘 아는 가게에서 박스를 가져왔다"며 "아침이 되면 역무원들이 박스를 가져가기 때문에 내일 새로 구해야 한다"고 했다.

두꺼운 솜이불 덮고 자는 노숙인도 많다. 이들은 아파트, 주택가 등을 돌아다니며 이불을 수거한다. 3~4겹을 쌓아 그사이에 들어가면 아늑한 잠자리가 된다. 서울역 광장 도처에 이런 겹이불 잠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몇몇은 옷걸이를 이용해 자신의 패딩 점퍼를 얹어 두기도 한다. 영역 표시다.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서 이불 속에 파묻혀 있던 노숙인은 "한번 맛을 들이면 실내에서는 잘 수가 없다"며 뿌듯해했다.

물물 교환도 이뤄진다. 대상은 구호단체에서 주는 외투와 방한 용품. 고수들은 일단 물품을 받아놓고 서로 교환한다. 최근 외투를 신발과 바꿨다는 영등포역의 장갑준(47)씨는 "여러 벌 가지고 있으면 기동성이 떨어져서 신발로 바꿨다"고 했다. 물물 교환 후 남은 물건들은 3만~4만원 정도의 현금으로 거래하기도 한다.

추위가 극심한 한겨울에는 파출소로 향하는 노숙인도 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경찰에게 '형사님, 뭐 하십니까'라고 말을 걸며 안으로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이는 것이다. 노숙인 쉼터보다 시설이 매우 좋아 잠깐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영등포역파출소의 한 경찰관은 "잠시 한눈판 사이 화장실 휴지나 신문을 '서리'해 가기도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노숙인 사이에서도 계급이 있다. 악취가 나면 무시한다. 서울역 '따스한 채움터', 영등포의 '보현사' '광야교회' '요셉의원' 등에서 샤워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보현사는 샤워 타월을 제공해 더 깨끗이 씻을 수 있다" "요셉의원이 비누를 주기적으로 교체해 준다" 등 사용 후기를 나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다. 주 3회, 오후 2~5시 등 시간이 정해져 있다. 만약 이 시간에 씻지 못하면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구걸에도 기술이 있다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노숙인 쉼터에서 샤워 시설 사용
생활비 마련 방법은 주로 구걸이다. 체질과 숙련에 따라 고전형, 당당형, 사연형으로 나뉜다.

고전형은 깡통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방법이다. 초심자는 대부분 이 방법을 택한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빈 깡통을 놓고 시작한다. 19일 오후 종각역 인근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1000원짜리를 3~4장 채워 넣어 놔야 수입이 더 좋다"고 했다. 새 옷을 입으면 수입이 줄어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기도 한다. 오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으면 1만~2만원 남짓 얻을 수 있다.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구호 단체가 준 물품을 동료 노숙인과 물물교환
당당형은 행인에게 "1000원만 줘라"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방법이다. 아무에게나 섣불리 접근하면 시비가 붙기도 한다. 기술자들은 "빠른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한다. 목표 대상은 20~30대 청년 또는 외국인. 편의점 앞에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게 확률이 높다.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빵이라도 사 먹게 돈을 달라"고 하고, 반응을 보며 추가 요구 여부를 결정한다. 당당형인 오대호(41)씨는 "대상을 정하고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연형은 최고난도 기술이다. 새로 구한 옷을 입은 깔끔한 외모가 중요하다. 언변도 좋아야 한다. 검은색 구두와 등산 바지, 갈색 재킷을 입고 있던 사연형 최모(64)씨는 "집에 내려갈 차비가 없는데 만원만 달라고 한다. 5000원밖에 없다는 답변이 오면 '그거라도 줘라'라며 몰아친다. 성공률은 낮지만 한번 성공하면 꽤 수입이 짭짤하다"고 했다.

여가는 스마트폰으로

서울역 4박5일 노숙의 高手 동행
추위를 견딜 수 없을 땐 파출소로
노숙인도 스마트폰을 애용한다. 서울역 광장에서 휴대폰을 쓰던 노숙인은 "어디서 얻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나는 쓰면 안 되느냐"며 화를 내더니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주로 역 인근 상인을 통해 2만~3만원짜리 휴대폰 공기기를 마련한다. DMB로 매일 저녁 뉴스를 챙겨 보고, 동료들과 무료 와이파이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다. 영등포 노숙인 쉼터 관계자는 "옛 어르신들이 들고 다니던 라디오처럼 공기기를 틀어 놓고 다닌다"고 했다.

이발, 빨래 명소는 어디일까. 영등포역 인근 '요셉의원'은 매주 화요일에 노숙인에게 이발을 지원해준다. '따스한 채움터'는 건물 3층에 빨래방을 따로 마련해 뒀다. 빨래방을 주로 이용한다는 한 노숙인은 "서울역에 온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가 돼서야 알았다"며 "아는 만큼 더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역파출소의 노숙인 전담 한진국 경위는 "3년 이상 되면 기술자 반열에 올라섰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이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자활센터, 쉼터 등 규율을 잘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숙 고수가 있다는 것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거리를 떠도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했다.
            

[아무튼, 주말] 오랜 거리 생활에 정신 피폐… "노숙인 80~90%는 마음의 병"

치료 못받아 더 악화되기 일쑤… 주거지 지원하고 안정감 줘야

서울역 노숙자
지난 21일 오전 한 노숙인이 서울역 지하도 출구 옆에 앉아 졸고 있다. / 이영빈 기자
"노숙자를 무시하지 마!" "나중에 크게 벌받을 거야!"

서울역 광장을 걷다 보면 멈춰 서서 크게 혼잣말을 하는 노숙인들과 종종 마주친다. 갑자기 위협당한 행인이 경찰에 신고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역 인근 파출소 경찰관들은 "'지하철 열차 안에서 어떤 노숙인이 혼자 큰소리를 내고 있다'며 처리해 달라는 민원이 하루 수차례 접수된다"고 했다.

이런 노숙인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4년째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전담 관리하고 있는 서울역파출소 소속 한진국 경위는 "몸뿐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며 "오랜 거리 생활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숙인 복지센터 '따스한 채움터'의 박광빈 소장은 "노숙인 중 상당수는 실직, 배우자와의 사별 등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은데, 갑작스럽게 거리에서 생활하게 돼 2차적인 충격이 더해지게 되니 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홈리스(Homeless)의 정신 질환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숙인 중 80~90%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분석한다. 거리 생활을 하며 우울증과 조현병, 양극성 장애를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발달 장애가 있던 사람이 노숙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 질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판단력이 떨어져 노숙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유한익 울산대 아동정신과 교수는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노숙인도 치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며 "지역 사회의 꾸준한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시는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 정신보건의 9명을 배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찾아오는 노숙인에게 주거지를 지원해 정서적 안정감을 마 련해주고 지속적인 상담을 제공한다. 그러나 치료를 거부하거나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노숙인들은 직접 관리가 어렵다. 한 경위는 "이야기를 자주 해야 증상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시설을 거부하는 노숙인에게는 고시원 등 임시 주거지를 마련해 주고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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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걸으며 노래부르자
글쓴이 : august l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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