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사람들

“내 행복은 56점” 어깨 처진 대한민국- 김수연 , 김윤종 , 김은지 기자 / 동아일보 2019. 6.29

good해월 2019. 6. 29. 07:09

[위클리 리포트 / 2020 행복원정대]행복감이 절실한 한국인 

불행해진 한국인들… 일상 속 작은 행동변화가 행복 첫걸음

 
《‘오늘도 행복하세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30대 회사원 김주환 씨(가명)는 이 문자를 보여주며 “행복이 뭔지 고민된다”고 했다.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선망하는 A은행에 입사했다. 연봉은 7000만 원이 넘는다. 연인과는 곧 결혼할 예정이다. 부모님은 건강하신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일을 하는데, 정작 나는 대출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집을 사기 힘들다”며 “굳이 행복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인 거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이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았다. 경제적 만족도나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까?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한국인의 행복을 탐구하는 ‘행복원정대 2020 프로젝트’를 통해 그 해답을 알아봤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의 소비와 문화 트렌드를 표현한 신조어다. 타인의 평가나 거시적 경제지표보다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처럼 달라진 행복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2018년 한국인의 행복도는 이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으로, 201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지표를 처음 개발한 그해 동아행복지수는 57.43점이었다. 이어 2016년 57.90점, 2017년 58.71점으로 계속 상승했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 ‘심리적 안정감’ 결핍된 한국인
 


직장인 박지윤 씨(가명·32)는 요즘 유럽 국가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늦깎이 유학길에 오르는 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다. 결혼 무렵 그는 대출을 받아 3억 원짜리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자가 실직을 하면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상사와 고객의 ‘갑질’이 난무하는 직장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자신마저 관두면 생활이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부부가 건강하면 지금처럼 빠듯하게 생활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하지?’ ‘경기가 더 나빠지면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애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고민이 날로 커졌다. 1년을 고민한 그는 사회보장체계가 잘 되어있고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대 이상 104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심층설문을 한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2017년에는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으로 △경제적 만족도 △가족생활 △건강 순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생활 △경제적 만족도에 이어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솟아오르는 집값, 높아진 실업률,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 등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불안이 커질수록 ‘안정’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안정감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다. 20대의 행복지수는 52.64점이다. 30대는 55.23점, 40대는 55.81점, 50대 이상은 59.24점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지수도 상승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20대는 치열한 학업과 취업 경쟁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취업을 한다 해도 집값이 비싸 내 집을 갖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결혼도 어렵다는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특히 ‘내 집 마련’과 행복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동아행복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그룹에서 자가 거주자가 세입자보다 행복지수가 높았다. 회사원 박모 씨(35)는 “작년에 집값이 너무 뛰는 것을 보며 지금이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출 규제가 심해 물거품이 됐다”며 “나 같은 젊은이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 일상이 변해야 행복감 커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까? 당장 고가의 아파트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일은 힘들지 않은 ‘꿈의 직장’을 갖는 것도 꿈같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의 변화’가 행복감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행복을 높이는 방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최근 스마트폰에서 피처폰(전화와 문자메시지만 되는 휴대전화)으로 바꾼 한혜미 씨(22)는 삶의 만족감이 크게 높아진 케이스다. 시험 준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사라졌다. 그는 “눈이나 손목 등 육체적 피로도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행복과 거의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을 1분마다 한 번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52.01점이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 간격 1∼5분 52.41점 △5∼10분 55.69점 △10∼30분 56.43점 △1∼3시간 56.89점으로 그 간격이 길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스마트폰이 아예 없는 이들의 행복지수는 57.28점으로 가장 높았다. 

밝게 자주 웃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6번 이상 웃으면 행복지수가 65.86점에 이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번 웃으면 50.74점, 아예 웃지 않으면 43.32점에 머문다. ‘사랑 표현’도 하루 2∼5회를 하면 행복지수가 61.07점까지 올라가지만 한 번도 안 하면 50.76점에 그친다.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도 중요하다. 소소한 취미를 갖는 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일하는 시간 외의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61.74점이나 되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9.01점으로 뚝 떨어진다. 어떤 취미를 갖느냐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이왕이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있는 활동이 좋다. ‘행복한 그룹’으로 분류된 이들은 주로 음식이나 운동, 여행, 목욕,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답했다. 반면 불행한 그룹의 취미는 음주나 TV 시청 등으로 나타났다. 


▼ ‘싱글-無자식’이 상팔자? ‘기혼-다둥이부모’가 행복지수 더 높아 ▼ 

행복지수 첫 번째 요인은 ‘가족생활’… 주말에 가족과 많이 지낼수록 행복

요즘 20대, 30대는 결혼을 꺼리거나 아예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의 삶이 미혼일 때보다 더 불행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다둥이 아빠’ 박대교 씨(31)가 8세, 7세, 1세 삼형제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박 씨는 “셋째가 태어나면서 애들 키우는 즐거움이 세배가 됐다”고 말했다. 박대교 씨 제공 


스타트업 기업에 다니는 7년 차 직장인 김한별 씨(31·여)도 그랬다. 비혼주의자인 김 씨는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커리어를 쌓느라 쏟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자유를 잃는 것도 결혼을 꺼리는 이유다. 그는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1인 가구와 비혼주의자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응답자들은 행복의 원천을 가족에게서 찾았다. 동아일보와 딜로이트컨설팅의 조사 결과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 중 첫 번째는 ‘가족생활’이었다. 기혼자의 행복지수는 58.59점으로, 미혼자(51.72점)보다 높았다. 또 자녀가 많을수록 행복도도 올라갔다. 자녀가 없는 사람(58.76점)과 자녀가 한 명인 사람(56.92점)보다 자녀가 2명인 사람의 행복지수(59.03점)가 더 높았다. 자녀가 3명이면 행복지수는 62.31점까지 치솟았다. ‘다둥이 아빠’ 박대교 씨(31)는 “셋째가 태어나고 더 행복하다. 지금의 행복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자녀 출산을 계획하기만 해도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자녀 계획이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7.10점으로, 1명을 계획한 경우(54.63), 2명을 계획한 경우(54.14)보다 크게 낮았다. 중앙대 심리학과 김재휘 교수는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행복을 느낀다”며 “가족이 늘어나면 사랑을 주고받을 상대가 늘어나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말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1시간 미만인 사람의 행복지수는 45.87점으로 응답군 중 가장 낮은 반면 6∼12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의 행복지수는 60.67점으로 가장 높았다. 


▼ 박찬호-박세리-김연아-손흥민… 한국인을 행복하게 해준 인물 

작년엔 손흥민-박항서-이국종 순, ‘대리만족’ 스포츠 선수들 상위권

퀴즈 하나. 그 시절에는 ‘박-박’이었고 이후에는 ‘김’이었다가 요즘은 ‘손’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하면서 ‘한 해 동안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 인물’을 물었다. 그 결과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 선수(토트넘)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어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 국내 응급의료의 버팀목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 요리 연구가이자 방송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또 한류 스타 방탄소년단, 가수 아이유 등 연예인과 혜민 스님, 이해인 수녀와 같은 종교인들도 행복을 주는 인물로 꼽혔다. 유튜브 스타인 대도서관, 감스트 등도 거론됐다. 반면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제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이나 법조인,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은 한 명도 언급되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가 행복감을 주는 인물 최상위권을 차지한 이유로 △높은 실업률과 사회적 불안감 △선명하게 드러나는 스포츠 특유의 성취 과정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공에 대한 갈망 등을 꼽을 수 있다.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고 기뻐하는 축구 경기는 단순하면서도 선명해 보는 이들에게 손 선수의 기쁨과 행복감이 쉽게 전이된다는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경기침체로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 어렵다 보니 스포츠나 대중문화에 대한 몰입이 커진다”며 “더구나 시민들이 정치나 경제 등 사회 주요 분야는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반면 스포츠는 페어플레이를 통한 성취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스포츠 선수를 통한 대리만족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야구의 박찬호 선수와 골프의 박세리 선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가 행복감을 주는 인물 최상위에 꼽혔다.  


▼ 1046명 심층설문… 객관적 지표에 주관적 요소 결합 ▼ 

‘동아행복지수’ 어떻게 개발했나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만든 ‘동아행복지수’는 소득, 직장, 연령 등 객관적 지표와 개인의 심리적 안정, 인간관계, 건강 등 주관적 요소를 결합해 2015년 개발했다. 유엔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지수는 대체로 국내총생산(GDP)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산정한다. 국가 간 비교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국민 개개인의 행복감을 분석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동아행복지수는 지난해 12월 지역과 남녀, 연령 등을 고려해 20대 이상 1046명을 온라인에서 심층 설문한 결과를 바탕으로 산출했다. 이번 조사에선 검색 트래픽 정보와 소셜 데이터 등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소비, 투자, 여가, 문화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도출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김윤종·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