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으로행복

수면 연구에 평생 바친 김린 교수가 말하는 건강한 잠

good해월 2019. 7. 4. 16:03

이달 1일 고려대 의대 제1의학관에서 만난 김린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국내 수면의학연구자 1세대로 꼽힌다. 이정아 기자

이달 1일 고려대 의대 제1의학관에서 만난 김린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국내 수면의학연구자 1세대로 꼽힌다. 이정아 기자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다수 병원에서는 수면제를 처방합니다. 하지만 수면제를 처방하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잠을 자는 패턴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환자는 2013년 38만 686명에서 2017년 51만5326명으로 30%가량 늘었다. 특히 2017년 기준으로 불면증 환자는 2012년보다 5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존의 치료방식은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수면장애의 원인과 증상이 다양한데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임상에서 실제로 진단, 치료하는 데 활용하는 수면의학 분야가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김린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내 수면의학 연구 1세대로 꼽힌다. 김 교수가 정신과 전문의를 땄던 해인 1987년 스승인 서광윤 고려대 의대 교수의 권유로 미국 코넬대 의대 수면의학연구실에 연수를 간 것이 수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현재 대한수면의학회 등에서 활동하며 수면의학에 관심이 있는 전문의들은 300~400명 정도다.

 

올 8월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수를  이달 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의대 제1의학관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들어 국내에 수면을 내세운 의료기관은 많아졌지만 수면의학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임상에 활용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퇴임과 함께 헬스케어 벤처를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수면의학이라는 학문이 무척 생소하다. 어떤 학문인가

김린 교수(뒷줄 맨 왼쪽)가 서광윤 교수(앞줄 왼쪽), 동료들과 함께 1991년 당시 혜화동에 있었던 고려대병원이 이전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 뒤쪽에 보이는 장비가 당시 기계식으로 작동했었던 수면다원검사기기다. 김린 교수 제공


수면의학을 연구하는 주 목적은 수면장애를 해결하고 질 좋은 잠을 자게 해 궁극적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수면의학은 의학 분야 중에서도 늦게 발달했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 렘수면이 발견되고 수면제가 1960년대 개발된 뒤 1980년대 들어서야 수면의학 연구가 시작됐다. 소화가 안될 때 위장에게 "소화를 시키라"고 말한다고 갑자기 체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불면증이 있을 때 "잠아, 와라" 부른다고 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일은 없다. 수면도 소화나 배설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면의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시간생물학'을 알아야 한다. 시간생물학이란 생물의 생존방식이나 생리 등을 시계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구상 모든 생물체는 태양과 달의 영향을 받는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지구가 자전하는 주기에 따라 낮밤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따라 곰팡이 증식이나 초파리 알 낳기나, 다람쥐 쳇바퀴 등 각 생물마다 고유한 생체리듬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도 뇌 안에 시계가 들어 있다. 눈으로 들어온 빛을 시신경이 전기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데, 이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는 입구인 '시신경교차상핵'이다. 이 시계는 빛에 반응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에 든다. 

 

학계에서는 여러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체리듬 주기가 평균 24.1~24.2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 생체리듬 주기가 24.2시간이라면 기상시간이나 식사시간, 잠에 드는 시간 등이 하루에 12분씩 늦어지고, 결국 일주일에 1시간씩 늦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은 날마다 특정한 시점에서 생체리듬이 재설정된다. 뇌 시계는 매일 아침 눈에 빛이 들어오는 시간을 아침이라고 인지해 잠에서 깨도록 만든다. 이 규칙성이 깨진다면 생체리듬도 깨진다. 만약 자는 시간과 깨는 시간이 매일 두세 시간씩 다르다면, 시차가 2~3시간씩 나는 나라를 매일 돌아다니는 것만큼 피곤해진다. 생체리듬이 깨진 대표적인 수면장애가 불면증이다.

 

-수면제를 복용하면 불면증을 해결할 수 있지 않나

 

수면장애라고 하면 잠꼬대나 코골이, 이갈이,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정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학계에 등재된 것만 85가지다. 불면증만 해도 세부 종류가 많고 원인도 다양하다. 스트레스나 통증 때문일 수도 있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이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아가면 대부분 수면제를 처방해준다. 수면제는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점차 복용량이 많아지고 결국 항우울제까지 처방하게 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수면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 불면증에 대한 개념도 확실히 잡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매일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자정 넘어서까지 잠이 안 온다고 해서 불면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불면증을 치료하려면 그 사람이 몇 시에 자서 몇 시에 일어나고, 하루 총 몇 시간을 자는지 생활패턴을 먼저 체크해야 한다. 또 이 사람이 왜 불면증을 겪고 있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건강검진처럼 수면 상태도 검진할 수 있나

수면다원검사 결과가 나타난 모니터.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뇌파를 통해 수면의 단계와 눈의 움직임, 근전도, 팔다리의 움직임, 가슴과 배의 움직임, 코에서 들숨과 날숨 등 공기의 흐름, 손끝이나 귀 끝에서 측정한 혈중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통해 수면장애의 종류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 흉부학회 제공.
수면다원검사 결과가 나타난 모니터.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뇌파를 통해 수면의 단계와 눈의 움직임, 근전도, 팔다리의 움직임, 가슴과 배의 움직임, 코에서 들숨과 날숨 등 공기의 흐름, 손끝이나 귀 끝에서 측정한 혈중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통해 수면장애의 종류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 흉부학회 제공.


고약한 잠버릇이 있거나(본인이 자각하기 보다는 대부분 옆에서 자는 사람이 알려준다) 충분히 오랫동안 잠을 잤는데도 여전히 피로에 시달린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뇌파를 통해 수면의 단계와 눈의 움직임, 근전도, 팔다리의 움직임, 가슴과 배의 움직임, 코에서 들숨과 날숨 등 공기의 흐름, 손끝이나 귀 끝에서 측정한 혈중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통해 수면장애의 종류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밤새 생리적으로 수십 초간 깨어있었지만 내가 밤에 깼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면무호흡증이다. 잠을 자는 동안 수십초에 걸쳐 숨을 멈추는 수면장애다. 역시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수면무호흡증이 있는지, 밤새 몇번이나 나타났는지, 또 어떤 종류의 수면무호흡증인지 알 수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수면다원검사 결과 등을 고려해 수면장애 중 유일하게 수면무호흡증을 건강보험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수면장애의 종류도 많고 이로 인해 만성피로에 시달려 사회생활 등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는데, 수면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평생 수면의학을 연구하신 만큼 잠도 잘 주무실 것 같다. '꿀잠'자는 노하우를 알려달라. 

 국가건강정보포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국가건강정보포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온종일 쌓였던 피로가 사라지는 데 필요한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사람은 대개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사라진다. 나도 예전에는 밤에 집중이 잘되고 아침잠이 많은 전형적인 올빼미형이었는데, 지금은 밤 10시가 넘으면 졸리고 새벽 5시만 돼도 눈이 떠진다. 

 

꿀잠을 자는 방법은 당연한 얘기이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특히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잠에서 깨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도 좋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수면위생법'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습관을 고치기가 힘들더라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활동해야 한다. 뇌 시계를 눈에 빛이 들어오는 시간으로 설정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기상하면 불면증을 예방할 수 있다. 

 

불면증 환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약을 달고온 환자들에게 약을 줄여주느라 평생 고생했다. 수면과 생체리듬에 대해 설명해주고,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아침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도록 시간을 정해준다.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록 훈련하다보면 약도 줄이고 불면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이정아    zzunga@donga.com   2019년 07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