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호(77)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쓴 900여 쪽짜리 회고록을 받아 들었을 때 외환 위기 편부터 펼쳐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97년 당시 그는 환란(換亂)의 한복판에 있었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수석으로, 대한민국이 부도 직전까지 급전직하하는 과정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종합적으로 경험했다. 경제가 IMF 때만큼 심각하다는 경고가 쏟아지는 지금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정치가 위기를 불렀다는 말인가요.
"대선이 있었던 1997년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구속 이후 레임덕에 빠져 위기 대응에 무력했습니다. 오로지 '퇴임 후 안전보장'이 최고의 관심사였죠. 야당의 김대중 후보는 선거를 위해 막중한 경제 현안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했습니다. 금융개혁 법안을 반대하고 IMF 재협상론 등의 말 바꾸기로 국가 신인도를 흔들었습니다. 국가보다 정파 이익을 우선하는 '나쁜 정치'가 위기를 최악의 사태로 몰아간 겁니다."
―경제 운영을 잘못해놓고 정치 핑계 대는 것 아닌가요.
"물론 정치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외환 위기의 본질은 신뢰의 위기입니다. 기업 경영에서 금융 제도, 경제 시스템, 정부 기능까지 모든 면에서 구조적 모순이 쌓이고 쌓여 한계점에 왔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증폭한 장본인이 정치입니다. 금융개혁법 좌초가 대표적 예입니다. 금융감독 체계를 바꾸는 금융개혁 법안은 위기 관리에 꼭 필요했고 IMF도 긍정적이었지만 한은 노조가 들고일어나자 여야 모두 발을 빼고 무산시켰습니다. 표 때문에 위기를 방치한 거죠. 이런 걸 보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저런 나라를 믿고 돈을 빌려줘도 되나 하지 않았겠습니까."
―기아차 처리도 정치권 개입 때문에 표류했지요.
"여야 모두 기아차에 돈 대줘 살리라고 난리였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기아차가 국민 기업이니 절대 부도내선 안 된다고 하고, 이회창 후보도 기아차 소하리 공장에 가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여야 모두 표 되는 일이라면 경제 망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기아차가 무슨 '국민 기업'입니까. 노사가 같이 나눠먹기 하며 기업 등골을 빼먹은 건데 이런 부도덕한 기업을 왜 세금으로 지원해줍니까. 정치가 제 기능을 하고 정치인이 책임감을 가졌다면 나라가 그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았을 겁니다. 위기가 오더라도 훨씬 마일드(저강도)하게 수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정치가 위기를 불렀다는 말인가요.
"대선이 있었던 1997년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구속 이후 레임덕에 빠져 위기 대응에 무력했습니다. 오로지 '퇴임 후 안전보장'이 최고의 관심사였죠. 야당의 김대중 후보는 선거를 위해 막중한 경제 현안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했습니다. 금융개혁 법안을 반대하고 IMF 재협상론 등의 말 바꾸기로 국가 신인도를 흔들었습니다. 국가보다 정파 이익을 우선하는 '나쁜 정치'가 위기를 최악의 사태로 몰아간 겁니다."
―경제 운영을 잘못해놓고 정치 핑계 대는 것 아닌가요.
"물론 정치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외환 위기의 본질은 신뢰의 위기입니다. 기업 경영에서 금융 제도, 경제 시스템, 정부 기능까지 모든 면에서 구조적 모순이 쌓이고 쌓여 한계점에 왔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증폭한 장본인이 정치입니다. 금융개혁법 좌초가 대표적 예입니다. 금융감독 체계를 바꾸는 금융개혁 법안은 위기 관리에 꼭 필요했고 IMF도 긍정적이었지만 한은 노조가 들고일어나자 여야 모두 발을 빼고 무산시켰습니다. 표 때문에 위기를 방치한 거죠. 이런 걸 보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저런 나라를 믿고 돈을 빌려줘도 되나 하지 않았겠습니까."
―기아차 처리도 정치권 개입 때문에 표류했지요.
"여야 모두 기아차에 돈 대줘 살리라고 난리였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기아차가 국민 기업이니 절대 부도내선 안 된다고 하고, 이회창 후보도 기아차 소하리 공장에 가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여야 모두 표 되는 일이라면 경제 망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기아차가 무슨 '국민 기업'입니까. 노사가 같이 나눠먹기 하며 기업 등골을 빼먹은 건데 이런 부도덕한 기업을 왜 세금으로 지원해줍니까. 정치가 제 기능을 하고 정치인이 책임감을 가졌다면 나라가 그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았을 겁니다. 위기가 오더라도 훨씬 마일드(저강도)하게 수습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의 책임이지만 정치가 가장 문제였다는 말씀이군요.
"저는 경제수석도 정치꾼이 돼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어도 결국은 정치 논리, 정치적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에 늘 부닥쳤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한국적 현실이었죠. 나쁜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한 경제 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야'라고 쓴 겁니다."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때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환란은 경제 위기였지만 지금은 국가의 총체적 방향 자체가 잘못돼가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금융, 경제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국가주의,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경제가 제대로 가겠습니까."
―어떤 점에서 사회주의입니까.
"이 정권은 국민의 삶을 국가가 규정하고 국가가 이끌어가겠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기획자문위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민의 삶은 5000만 개개인마다 다 내용과 성격을 달리하는데 그걸 어떻게 국가가 일률적으로 규정한단 말입니까. 국가가 어떻게 무슨 수로 해결해준다는 겁니까. 국민의 삶을 해결해준 나라는 유사 이래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의 문제는 각자가 책임지고 설계하는 것이고, 개인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나라와 정부가 보완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책임지겠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主)와 종(從)이 뒤집혔습니다."
―복지 등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 표현 아니겠습니까.
"정부가 국민의 삶을 주도하려면 대전제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도덕적이라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완벽한 정부가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있습니까. 자유주의 경제철학자 하이에크(1899~1992)는 이런 국가 주도 사상을 '치명적 자만'이라고 했지요. 문 정부가 바로 치명적 자만에 빠져 있습니다."
―시장(市場)을 거스르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요.
"잘못된 사상에 빠지는 것은 마약을 먹은 것과 똑같습니다. 하이에크의 말을 한 번 더 빌리면, 자유주의냐 사회주의냐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진위'의 문제입니다. 사회주의란 좋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론 자체가 사기이자 사이비 과학이라는 거지요. 시장을 중시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 외에 경제를 융성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나보고 왜 그렇게 시장에 목을 매냐고 하는데, 시장을 존중하지 않는 경제 중에서 잘된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나요. 있다면 내가 무릎 꿇고 사과하겠습니다."
―사회주의라기보다는 포퓰리즘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이 정부가 하는 걸 보면 경제 잘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경제가 나빠져야 통치 기반이 강화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줄어야 정부에 기대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부 보조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는 거지요. 그런 정부 의존 계층을 2000만명만 만들면 정권 재창출도 문제없다고 보는 것 아니겠어요?"
―결국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파산 지경까지 갔습니다.
"이 정부는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말아라, 최저임금은 얼마 이상 받으라고 강요하면서 국민의 일자리 문제에 개입하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노동자 월급을 누가 줍니까. 정부? 기업? 아닙니다. 소비자가 주는 겁니다. 소비자가 특정 가격에 제품·서비스를 사겠다고 동의할 때 노동자 임금이 성립하는 겁니다. 소비자가 동의하지 않는데 임의로 임금을 설정하면 결과는 사람을 줄이거나 기업 문을 닫거나 두 가지뿐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이것 아닙니까."
―실패로 판명났는데도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국가의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돼 있는데, 부분적 경제정책을 어떻게 하느냐 이런 건 사실 의미도 없습니다. 지금 국정 운영은 무면허 운전자가 술을 잔뜩 마시고 국가주의라는 마약에 취해 핸들을 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운전자에게 왜 신호를 안 지키느냐고 물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총체적 방향 자체를 잘못 설정한 정부에 경제 실정을 추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대중 정부, 희생양 찾아 관료를 主犯 몰아… 文정권 적폐몰이의 원조"]
1997년 11월 김영삼 정부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하기 이틀 전에 김 전 수석은 경제수석에서 '사실상 해임'됐고, 정권이 바뀐 뒤엔 '환란 주범'으로 지목돼 강경식 전 부총리와 함께 구속 기소됐다. 그는 1년여를 끈 1심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계백 책임론'을 제기해 화제가 됐다. 계백 장군이 황산벌 전투에서 졌다고 그가 백제 멸망의 주범이냐는 논변이었다.
―결국 1·2·3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 회복을 하셨죠.
"우리가 무죄가 되자 국민은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면 누구 책임이냐, 누구 잘못으로 나라가 거덜난 거냐 이렇게 된 거죠."
―그렇다면 외환위기의 진범(眞犯)은 누굽니까.
"특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경제 체질, 리더십의 부재, 지도층의 무책임 등이 복합돼 위기로 폭발한 것입니다. 낡은 시스템이 주범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업은 차입경영으로 치달았고, 금융 제도는 낙후됐으며, 정부 체질은 고도성장에 취해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쁜 정치'가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는 관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우리를 주범으로 몰아갔습니다. 정치적 프레임을 짠 뒤 희생양을 찾은 거지요. 지금 이 정권에서 벌어지는 '적폐몰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조를 보지 않고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하니 위기의 본질을 보지 못했고 지금껏 똑같은 실패,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겁니다."
김인호 前수석은
▲경기고·서울대법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차관보·대외경제조정실장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무역협회장
"저는 경제수석도 정치꾼이 돼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어도 결국은 정치 논리, 정치적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에 늘 부닥쳤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한국적 현실이었죠. 나쁜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한 경제 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야'라고 쓴 겁니다."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때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환란은 경제 위기였지만 지금은 국가의 총체적 방향 자체가 잘못돼가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금융, 경제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국가주의,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경제가 제대로 가겠습니까."
―어떤 점에서 사회주의입니까.
"이 정권은 국민의 삶을 국가가 규정하고 국가가 이끌어가겠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기획자문위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민의 삶은 5000만 개개인마다 다 내용과 성격을 달리하는데 그걸 어떻게 국가가 일률적으로 규정한단 말입니까. 국가가 어떻게 무슨 수로 해결해준다는 겁니까. 국민의 삶을 해결해준 나라는 유사 이래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의 문제는 각자가 책임지고 설계하는 것이고, 개인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나라와 정부가 보완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책임지겠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主)와 종(從)이 뒤집혔습니다."
―복지 등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 표현 아니겠습니까.
"정부가 국민의 삶을 주도하려면 대전제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도덕적이라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완벽한 정부가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있습니까. 자유주의 경제철학자 하이에크(1899~1992)는 이런 국가 주도 사상을 '치명적 자만'이라고 했지요. 문 정부가 바로 치명적 자만에 빠져 있습니다."
―시장(市場)을 거스르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요.
"잘못된 사상에 빠지는 것은 마약을 먹은 것과 똑같습니다. 하이에크의 말을 한 번 더 빌리면, 자유주의냐 사회주의냐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진위'의 문제입니다. 사회주의란 좋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론 자체가 사기이자 사이비 과학이라는 거지요. 시장을 중시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 외에 경제를 융성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나보고 왜 그렇게 시장에 목을 매냐고 하는데, 시장을 존중하지 않는 경제 중에서 잘된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나요. 있다면 내가 무릎 꿇고 사과하겠습니다."
―사회주의라기보다는 포퓰리즘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이 정부가 하는 걸 보면 경제 잘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경제가 나빠져야 통치 기반이 강화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줄어야 정부에 기대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부 보조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는 거지요. 그런 정부 의존 계층을 2000만명만 만들면 정권 재창출도 문제없다고 보는 것 아니겠어요?"
―결국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파산 지경까지 갔습니다.
"이 정부는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말아라, 최저임금은 얼마 이상 받으라고 강요하면서 국민의 일자리 문제에 개입하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노동자 월급을 누가 줍니까. 정부? 기업? 아닙니다. 소비자가 주는 겁니다. 소비자가 특정 가격에 제품·서비스를 사겠다고 동의할 때 노동자 임금이 성립하는 겁니다. 소비자가 동의하지 않는데 임의로 임금을 설정하면 결과는 사람을 줄이거나 기업 문을 닫거나 두 가지뿐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이것 아닙니까."
―실패로 판명났는데도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국가의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돼 있는데, 부분적 경제정책을 어떻게 하느냐 이런 건 사실 의미도 없습니다. 지금 국정 운영은 무면허 운전자가 술을 잔뜩 마시고 국가주의라는 마약에 취해 핸들을 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운전자에게 왜 신호를 안 지키느냐고 물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총체적 방향 자체를 잘못 설정한 정부에 경제 실정을 추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대중 정부, 희생양 찾아 관료를 主犯 몰아… 文정권 적폐몰이의 원조"]
1997년 11월 김영삼 정부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하기 이틀 전에 김 전 수석은 경제수석에서 '사실상 해임'됐고, 정권이 바뀐 뒤엔 '환란 주범'으로 지목돼 강경식 전 부총리와 함께 구속 기소됐다. 그는 1년여를 끈 1심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계백 책임론'을 제기해 화제가 됐다. 계백 장군이 황산벌 전투에서 졌다고 그가 백제 멸망의 주범이냐는 논변이었다.
―결국 1·2·3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 회복을 하셨죠.
"우리가 무죄가 되자 국민은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면 누구 책임이냐, 누구 잘못으로 나라가 거덜난 거냐 이렇게 된 거죠."
―그렇다면 외환위기의 진범(眞犯)은 누굽니까.
"특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경제 체질, 리더십의 부재, 지도층의 무책임 등이 복합돼 위기로 폭발한 것입니다. 낡은 시스템이 주범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업은 차입경영으로 치달았고, 금융 제도는 낙후됐으며, 정부 체질은 고도성장에 취해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쁜 정치'가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는 관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우리를 주범으로 몰아갔습니다. 정치적 프레임을 짠 뒤 희생양을 찾은 거지요. 지금 이 정권에서 벌어지는 '적폐몰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조를 보지 않고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하니 위기의 본질을 보지 못했고 지금껏 똑같은 실패,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겁니다."
김인호 前수석은
▲경기고·서울대법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차관보·대외경제조정실장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무역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