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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기적의 생환, 13살 첫째의 ‘정글 지식’이 살렸다

good해월 2023. 6. 12. 07:09

‘정글의 법칙’ 알고 있던 13세 소녀, 아마존서 40일간 세 동생 살렸다

비행기 추락에도... ‘기적의 4남매’ 생존

입력 2023.06.11. 19:53업데이트 2023.06.1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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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아마존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발생한 경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아이 4명이 행방불명된 지 40일 만에 무사히 발견됐다. 구조에 나선 콜롬비아 군 당국이 9일(현지시간) "아이 4명이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정부에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구조요원들이 아이들을 살피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AP 연합뉴스

경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40일간 아마존 열대우림을 떠돌던 콜롬비아 4남매가 9일(현지 시각) 구조됐다고 CNN·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정글의 악천후와 야생동물의 위험을 어른들의 도움 없이 이겨내고 스스로 살아남은 ‘4남매의 기적’에 전 세계가 환호하고 있다.

이날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비행기 사고 이후 아마존 밀림을 떠돌던 4명의 어린 남매가 40일 만에 생존한 채 발견됐다”며 수색대원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기적의 4남매’는 장녀인 레슬리 무쿠투이(13)와 남동생 솔레이니 무쿠투이(9)·티엔 노리엘 로노케 무쿠투이(4), 막내 여동생 크리스틴 네리만 라노케 무쿠투이(1)다. 막내는 경비행기 추락 사고 당시 생후 11개월로, 정글에서 돌을 맞았다고 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볼이 파일 정도로 심하게 야윈 채 보온 담요를 덮고 있었다. 페트로 대통령은 “발견 당시 아이들이 모두 함께 있었다”며 “역사에 기억될 만큼 완전한 생존의 모범을 보여준 콜롬비아의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경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생존한 4남매가 구조된 하루 뒤인 10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군의료진이 아이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AFP 연합뉴스

성인도 살아남기 힘든 험난한 아마존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젖먹이 아기를 포함한 어린이 4명이 어떻게 40일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이 탔던 경비행기는 지난달 1일 콜롬비아 카케타주(州) 상공을 비행하던 중 엔진 결함으로 정글 한복판에 추락했다. 콜롬비아 남부 원주민 보호구역에 살던 아이들은 이날 어머니와 함께 아마조나스주 아라라쿠아라 공항에서 과비아레주 산호세 델 구아비아레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불법 무장 단체의 위협을 피해서다. 아버지 마누엘 라노크는 먼저 수도 보고타로 떠나 가족들을 데려올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었다. 경비가 어느 정도 마련되자 4남매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경비행기에는 어머니·조종사를 포함한 성인 3명과 4남매 등 7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 보름 만인 지난달 16일 수색대원들은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비행기 잔해와 함께 어머니와 조종사 등 성인 3명의 시신을 발견했지만, 아이들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2023년 5월 19일 카케타주 솔라노시 콜롬비아 아마존 숲에 추락한 경비행기 모습./콜롬비아 군/ AFP 연합뉴스

이에 콜롬비아 정부는 특수부대원 100여 명과 원주민 정찰대원 70여 명, 수색견 수십 마리 등을 동원한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나섰다. 작전명은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하는 ‘에스페란사(esperanza)’였다. 예측 불가능한 악천후와 재규어·독사 등 야생동물들의 위협이 도사리는 정글에서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4남매를 찾아 나선 수색대와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색대는 헬리콥터로 정글 곳곳에 음식이 담긴 상자를 떨어뜨렸다. 아마존 원주민인 ‘후이토토족’ 출신 외할머니 마리아 파티마 발렌시아가 후이토토어로 녹음한 “한곳에 머물러 있으라”는 음성을 역시 원주민 출신인 4남매에게 메가폰으로 전했다. 4남매의 아버지도 수색에 동참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4남매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믿음이 수색 작업을 결정하는 동력이 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 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들도 밤에 조명탄을 쏘면서 수색 활동을 도왔다.

 

4남매도 포기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추락한 직후 아이들이 잔해 더미에서 파르냐(카사바 가루)를 꺼내 먹었고, 이후에는 씨앗을 먹으면서 버텼다”고 4남매의 삼촌은 가디언에 전했다. 원주민 출신인 아이들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점이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13살 맏이 레슬리는 동생들을 돌보며 나뭇가지와 가위, 머리끈 등으로 임시 대피소를 만드는 등 기본적인 생존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콜롬비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40일 동안 실종됐다가 구조된 원주민 어린이 4명 중 한 명이 2023년 6월 10일 보고타의 카탐 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수색팀은 이달 9일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마침내 아이들을 발견했다. 사고 지점에서 약 3.2㎞ 떨어진 곳으로, 발견 당시 아이들은 겨우 숨을 쉬고 물 한 방울을 마실 수 있는 기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수색팀을 이끈 페드로 산체스 준장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재 아이들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10일 페트로 대통령과 함께 병원을 찾은 이반 벨라스케스 국방부 장관은 13세 소녀 레슬리를 “정글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세 동생을 돌본 영웅”이라고 칭찬했다. 메가폰 녹음으로 손주들을 애타게 찾았던 외할머니는 “모두를 안아주고 싶다.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 피덴시오 발렌시아는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견뎌왔다”며 “아이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를 살아있게 했다”고 CNN 등에 밝혔다. 친할아버지 나르시조 무쿠투이도 “우리 아이들을 찾을 수 있도록 협력해준 대통령과 원주민들의 도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2023년 6월 10일 보고타의 중앙군 병원을 찾아 생존 어린이와 만나고 있다./콜롬비아 대통령실/로이터 연합뉴스
아마존 정글에서 경비행기 추락후 실종됐던 4명의 어린이 생존자의 할아버지 피덴시오 발렌시아가 중앙군 병원 근처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로이터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