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꽃담'에 취해보세요
▲ 지붕과 굴뚝을 함께 보아야 제멋이 나는 낙선재 꽃담 |
ⓒ2006 김정봉 |
화담과 화초담, 화문담이 꽃과 꽃나무, 꽃무늬만으로 장식하여 만든 담을 연상시키고, 그림담과 무늬담은 표현 기법을 한정하여 꽃담의 개념을 폭넓게 담아내지 못한다. 신랑 신부의 첫날밤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꽃잠이라 하듯, 담 중에 무늬나 그림을 넣어 아름답게 장식한 우리의 담을 꽃담이라 부르는 편이 좋을 듯하다.
전국 어디에서나 꽃담을 볼 수 있다. 세련되고 화려하나 야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궁궐의 꽃담이 있고, 담장의 높이와 함께 담장 무늬로 집주인의 인품이 드러나는 사대부집의 꽃담이 있다. 깨진 기와조각을 토담에 박아 넣어 만든 질박한 시골 꽃담이 있으며 기와와 벽돌과 막돌만을 가지고 만들었어도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절집의 꽃담이 있다.
꽃담의 백미로 경복궁 자경전과 교태전의 꽃담을 들지만 빛깔과 무늬 그리고 분위기가 낙선재의 꽃담과 다르다. 꽃으로 치자면 경복궁 꽃담은 장미와 같아서 화려하여 꽃담 일부로도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반면에, 낙선재 꽃담은 안개꽃과 같아서 은은하며 꽃담끼리 혹은 지붕과 굴뚝이 한데 어울릴 때 더욱 아름답다.
▲ 꽃담 일부만 봐도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경복궁 자경전 꽃담 |
ⓒ2006 김정봉 |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라 건물의 장식과 후원의 배치가 섬세하다. 낙선재 서쪽에 돌출된 누마루에 있는 둥근 만월창과 석복헌 동쪽과 뒷면의 쪽마루, 쪽마루 난간의 호리병 모양의 조각품은 저절로 눈길이 간다.
▲ 낙선재 누마루의 만월창과 예쁜 굴뚝 |
ⓒ2006 김정봉 |
낙선재는 지금은 창덕궁에 속해 있지만 본래 창경궁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동산에 오르면 창경궁의 모습이 내려다보이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있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의 지붕이 한눈에 보인다.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이 아니라면 어디 한적한 곳에 세워진 높은 정자에 오른 기분이 든다.
낙선재 꽃담 여행은 후원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이 시작하는 곳에서 멀찌감치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승화루가 소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고, 오른쪽 옆으로 육각 지붕을 멋있게 이고 있는 상량정이 있다. 꽃담과 어울려 있는 상량정 정경이 창덕궁의 제일경이라 할만큼 예쁘고 아름답다.
▲ 상량정과 꽃담 |
ⓒ2006 김정봉 |
▲ 절도와 품위가 있는 꽃담 |
ⓒ2006 김정봉 |
꽃담은 건물의 벽을 이루는 벽체와 담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낙선재 누마루 밑의 벽체는 눈여겨볼 만하다. 직선과 점선의 무늬도 아니고 육각형이 연이어 있는 석쇠무늬도 아니다. 직선으로 구획하여 사각형, 마름모꼴 등의 무늬를 넣어 기하학적 추상화를 보는 듯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꽃담은 문과 어울릴 때 멋이 더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혹은 후원으로 통하는 샛담에는 일각문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문이 딸려 있다. 낙선재에서 석복헌으로, 석복헌에서 수강재로 넘어가는 곳에도 있고 후원 샛담에도 있다.
이 중에 여성들의 전용 통로였을 법한 좁고 후미진 공간에 있는 석복헌 일각문은 한 쪽 담에 포도무늬와 매화나무를 장식해 놓아 눈길을 끈다. 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포도는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인들이 거주하는 건물 뒤쪽에 주로 그려 넣었는데 경복궁 자경전 담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포도나무는 세 송이의 포도를 매달고 있는데 포도송이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 포도무늬로 장식된 작은 꽃담 |
ⓒ2006 김정봉 |
▲ 일각문을 가운데 두고 양쪽 무늬를 달리하여 변화를 준 꽃담 |
ⓒ2006 김정봉 |
▲ 만월문과 꽃담 |
ⓒ2006 김정봉 |
▲ 무늬가 끝없이 이어지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꽃담 |
ⓒ2006 김정봉 |
굴뚝을 만들더라도 주위 환경, 예를 들어 꽃담의 빛깔과 그 무늬를 고려하여 만든다. 굴뚝은 잘 알려진 대로 경복궁의 아미산의 굴뚝과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을 최고라 치는데 그 색깔은 모두 붉은 황토색을 띠고 있어 화려하게 보인다. 이는 꽃담의 전체적인 색깔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다.
낙선재의 굴뚝은 꽃담과 같이 전체적으로 잿빛을 띠고 있는데 빛깔과 무늬가 조화를 이룬다. 경복궁의 꽃담과 굴뚝처럼 붉은 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낙선재가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와 같은지 모르겠다.
▲ 후원과 꽃담 |
ⓒ2006 김정봉 |
꽃담에는 표정이 있고 집주인의 향기가 담겨 있다. 항상 좋은 향기를 뿜는 꽃은 쉽게 시들고 그 향기가 오래가지 않지만 꽃담은 사시사철 한 자리에 있으면서 눈이 오면 눈으로 단장을 하고 비가 오면 향과 빛깔의 농도를 짙게 하여 다른 향기를 뿜는다. 게다가 꽃담에는 집주인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어 그 향기가 쉽게 달아나지 않는다. 꽃담은 꽃처럼 아름답게 꾸민 담이지만 꽃보다 아름답다.
/김정봉 기자
출처 : 영겁의 세월.
글쓴이 : 관덕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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