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행복

[스크랩] 광화문 해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good해월 2006. 10. 20. 08:20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푸른 하늘과 함께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날 오랜만에 보는 밝은 풍경에 이끌려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광화문을 빙 돌아 제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광화문 앞에 서있는 해치상 앞 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수 십 번 광화문 앞을 지나다니면서 매번 보았지만 한번도 자세히 관찰해본 적이 없어서 시간이 나면 천천히 살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우측 해치상>

 

 

우리나라 사람 중 아마 이 해치상을 한번도 보지 못한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 이름을 물어보면 아마 많은 분들은 해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해태’…광화문 해치상의 이름이 제과식품회사 이름이라니.. 해태제과의 창업주가 이 해치의 의미에 감동되어서 회사 심볼로 사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원래의 이름인 해치를 왜 해태라고 붙였는지는 회사 사이트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해태가 아니라 해치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분들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곳에 서있게 되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분들은 관악산의 화기가 너무 세서 그 화기를 막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민간속설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치상은 이 같은 벽사의 의미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해치란 동물은 어떤 동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해치는 중국 요순임금 시대에 태어났다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상상의 동물이어서 이름도 해천, 신양, 식죄(죄가 있고 없음을 잘 식별함), 해타, 개호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 해태라고 불리운 까닭은 해타가 변해서 되었다는 설과 해치()가 중국 발음으로 라고 들리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중국 옛 문헌에 의하면, 해치는 정수리에 뿔을 하나 가지고 있으며, 죄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순 임금 때 고요皐陶라는 형벌을 담당했던 현명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형벌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어지러운 기강을 바로잡았는데, 어떤 사람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야 할 때 그는 기르고 있던 신양, 즉 해치로 하여금 그 사람 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면 해치는 죄가 있는 사람은 뿔로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모는 푸른 털이 나있고 몸은 거대한 곰처럼 생겼고, 여름에는 늪 가에 살고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살았다고 합니다.

 

<이물지> 라는 문헌에서는 <동북지방의 거친 곳에 사는 짐승으로 이름을 해치라고 한다. 뿔이 하나에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물어 뜯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치란 말이 우리 문헌에서는 고려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대사헌은 해치를 붙인다. 집의 이하도 같다. 옥잠을 꽂는다. 제복에도 같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대사헌은 정사(政事)를 논하고 백관(百官)을 감찰하여 기강을 진작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던 사헌부(司憲府)의 장관을 말하고 집의는 대사헌의 아래 품계로서 그 이하도 같다는 말은 결국 사헌부의 모든 관헌은 해치가 붙여진 관복과 옥잠을 꽂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 동국여지승람] 사헌부 편을 보면

<무릇 관부의 제명(관리의 공적과 기록하는 것)이란 옛날부터 있던 것이니, 헌부(憲府)에 있어서는 관계가 더욱 중한 것이다. 지금부터 계속하여 해치(獬豸冠)을 높이 쓰고 백 필(白筆: 사관이 가진 붓인데, 항상 사모에 비녀처럼 꽂았다)을 꽂고 앉아 누구는 어질었고, 누구는 충성하였고, 누구는 아첨하였고, 누구는 간사하였다고 해서, 착한 것은 법을 삼고 악한 것을 경계한다면 나라는 맑게 될 것이다. > 라고 쓰여져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해치의 의미를 사헌부 관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러 문헌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해치는 뿔이 하나인 양의 모습을 모티브로 하는 동물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진 동물로서 신령스러운 재주가 있어 성군을 도와 현명한 일을 많이 하는 정의의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치를 광화문 앞에 세운 이유가 바로 이러한 상징성 때문 일 것입니다.

궁궐에 거처하고 있는 임금이 그 옛날의 순 임금처럼 성군임을 칭송하는 의미와 함께, 백관들로 하여금 궁궐을 출입할 때에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올바른 정치를 펴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정의 신하들이 광화문을 드나들 때 마다 이 해치 꼬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다듬는 관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해치는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광화문 앞으로 70~80m 전방, 즉 정부 종합청사 앞과 그 건너편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정부종합청사 바로 옆으로 난 도로를 건너면 세종로 공원인데 바로 이곳이

사헌부 터이며 예조, 중추부 다음에 있었고 그 옆이 병조였습니다.

 

 

               

 

 

1890년대 옛 사진(오른쪽사진)을 보면 해치 앞에 ''자 모양으로 된 두 단짜리 돌 계단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노둣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말에서 내릴 때 딛는 디딤돌입니다. 바로 해치의 구체적인 기능은 여기서부터는 궁궐 영역이니 모두 말을 내리라는 하마(下馬) 표지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젠 해치상을 천천히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측 해치> 온 몸이 동그란 모양의 털로 둘러싸여 있고 수염은 있으며 누은 크고 동그랗고

이빨은 날카롭고 뿔은 보이지 않으며 앞다리 어깨 위에 마치 퇴화된 날개모양이 있습니다.

 

 

 

<좌측 해치뒤>  털이 많은 꼬리는 위로 곧게 올라가 있고 뒷다리 쪽에도 조그마한 날개모양

있습니다. 꼬리는 총채의 의미로 먼지를 털어내듯 나쁜 것을 털어낸다는 뜻으로 관헌들이

이 꼬리를 한번씩 만지고 궁으로 들어서도록 했습니다.

 

 

 

<우측 해치 후면>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역시 날개모양이 있고 목부터

갈기모양이 있고 다리는 마치 무릎보호대를 찬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날개모양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않아 저의 오랜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우측 해치 정면아래>  목에는 방울이 달려 있으며 발가락은 갈라져 있습니다.

목에 방울이 있는 것은 금속성의 소리를 잡귀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속설에서 유래된 것인데 가축도 아니면서 방울달린 목줄이라니...

 

 

저는 해치상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과연 해치가 맞는가 라는 의문을 생겼습니다. 해치의 옛문헌과는 다른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해치는 양을 모티브로 한 뿔이 있는 짐승이라 했는데 광화문 해치는 뿔도 없으며 아무리 봐도 양의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둘째 양은 소목으로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는 동물인데 발가락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고 발톱이 있습니다.

 

더우기 해치상은 광화문뿐 아니라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황제의 능인 유능(경기도 남양주시)에도 있는데 광화문 해치상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유릉 해치상>  머리에 뿔이 있고 북경 근처 명 13능에 있는 해치상처럼

발굽이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해치의 원래 표현에 충실했습니다.

 동경고등공예학교의 아이바 히코지로가 제작했다고 하는데 섬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유릉의 해치상은 분명 광화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비슷한 모양의 석물이 있는데 바로 <사자상> 입니다.

 

 

 

<유릉 사자상>  어딘지 모르게 유약해 보이지만 유릉 해치상보다는 갈기의 모습이나 발가락,

머리모양 등이 광화문 해치상과 친연성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자 그렇다면 광화문의 동물은 해치가 아니고 혹시 사자가 아닐까요?

해치상(사자상)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세욱 이라는 뛰어난 석공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경복궁을 재건할때  명나라 궁궐 모양을 기본으로 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중국 궁궐에서는 어떤 동물이 서있는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광화문 해치와 비슷한 용도의 동물을 사자(獅子)상 이라 부릅니다. 아마 중국 관광을 가본신 분들은 궁궐이나 오래된 사찰 앞에 귀가 꺽인 동물이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앞다리를 세운채, 목에 방울을 달고 앉아있는 동물상 모습을 보신적이 있을 것입니다.

 

귀가 꺾여 있다는 것만 빼고는 광화문 해치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자 중에 귀가 껵여 있는 사자는 없고 맹수의 목에 방울을 달아놓다니..중국 궁궐에 많은 동물 중에 유일하게 방울이 달려 있는 동물이 사자상입니다.

 

어째든 광화문 해치상은 중국의 사자상의 모습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화문의 동물은 해치가 아니라 사자일까요?   조금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중국의 사자상은 사자개상에서 출발한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불교에서 사자는 부처의 상징이므로 사() 에서 개() 를 탈락시켜 사자(師子) 라고 부르듯이 사자개상에서 개를 빼고 사자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화문 동물의 원형은 '개'  일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일본의 신사에 이러한 의미의 동물상이 서있는데 그 이름을 [고마이누]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개]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광화문 의 동물이 멸종된 동아시아 최고의 맹견이었던 [고구려개]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본 약산사 고마이누>

 

 

과연 세욱은 [해치], [사자], [고구려 개] 中  무엇을 염두 해 두고 조각을 했을까요?

아무리 고민해봐도 저는 어떤 동물을 염두하여 만든 조각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정체가 밝혀지기 까지는 <고종실록>의 기록대로 해치라고 불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동물을 조각한 것이던 간에 세도정치에 피폐할대로 피폐해져 무너져 가는 조선 왕실을 다시금 일으켜보고자 시작된 경복궁 재건에 걸맞게 헐벗은 탐관오리들과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외세에 맞서 다시금 당당한 나라, 그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하는 조선왕실을 지켜내고자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조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아프게도 광화문 해치는 조선도 왕실도 그 무엇도 지켜내지도 못했고 자신마저 외세에 의해 이리저리 서럽게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조선총독부 건설로 광화문을 옮겼을때 해치상도 온전히 자리를 지킬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총독부 서쪽 담장 아래 방치되어 있는 해치상을 보고 당시 한 기자가 통분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있습니다.

 

"너의 꼴을 보러 대궐안에 들어가니, 너는 한편 모퉁이에 참혹히 드러누워 있더라

그것을 본 흰옷입은 사람의 가슴이 어찌 편안할수 있겠느냐 끝없이 일어나는 감회를 무엇이라 표현하겠느냐   무슨 하늘도 못 볼 큰 죄나 지은 것처럼 거적자리를 둘러쓰고 고개를 돌이커 우는 듯 악을 쓰는 듯 반기는 즛 원망하는 듯한 해태를 발견하고 가슴이 뜨끔하였다 .

 

 옛주인이 경복궁 뒤로 밀려나가고 낯선 사람들이 지어놓은 총독부 새 집앞에서 모든 학대와 갖은 구박을 다 받는 해치의 신상을 염려하는 조선 사람들이 많은 것을 그가 안다면 피나는 설움이라도 참을 듯할 것이다.  "

 

 

조선의 정궁,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해치상 

 

 

해치야! 해치야!  나라가 힘이 없어 밧줄에 묶여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했지만

다시는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도록 저 푸른 하늘만큼 너를 꼭 지키고 싶단다..

 

 

나라를 지키는 사명은 결국 그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 외에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해치상

 

한 마리는 정부종합청사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미국 대사관을 그 크고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 땅의 사람들이 앞으로 할 일을 귀뜸해주듯이....

 

 

 

 

2006 . 8 . 9

 

 

 

 

금강안金剛眼

 

 

참고자료 :  [서울의 고궁산책]  허 균

                 [우리 궁궐이야기]  홍순민

                  오마이 뉴스  이순우(제자리)님 기사

                  경기문화재단 사이트 [능묘조각] 허 균

                  www.ssong500.com

                  네이버 블러그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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