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모습
윤봉길 [尹奉吉, 1908~1932.12.19]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본관 파평(坡平). 호 매헌(梅軒). 본명 우의(禹儀). 1908년 충청남도 예산(禮山)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덕산(德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의 비운을 느끼고 자퇴, 성주록(成周錄)이 개설한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28년 부흥원(復興院), 1929년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같은 활동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자, 1930년 2월 만주로 망명, 다시 상하이로 갔다. 1931년 상하이에서 세탁소 회계원·모직공장 직공 등으로 전전하며, 김구(金九)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1932년 김구로부터 지시를 받고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및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駐中)일본공사 시게마쓰[重光葵]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5월 25일 상하이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오사카[大阪]로 이송,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윤봉길의사 처형장면 사진 공개]
尹의사는 끝내 굽히지 않았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의사의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다. 윤
의사의 무릎을 꿇린 채 처형함으로써 일제가 윤 의사의 기개를 꺾으려했던 점, 총탄이 너무나도 정확히 윤 의사의 이마를 관통해 오히려 피가 별로
흐르지 않은 점 등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처연하게 만든다.
지난달 초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에 실린 이 사진을 발견한 ‘더 채널’의 김광만(金光萬) 대표나 신운용
근현대사 팀장, 이 사진 사본을 전해 받은 유족이나 윤병석(尹炳奭) 인하대 명예교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윤 의사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된 데다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유족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동생인 윤남의(尹南儀·86)옹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목격하니 참담하다”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윤옹은 이어 “총살한 뒤 윤 의사의 시신을 가네자와(金澤) 군인묘지 관리사무소 앞길에 묻어 13년 동안이나 방치했다는 것에 다시금 분노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조카인 윤주(尹洲)씨는 “이제야 이런 자료를 확인하다니, 그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탄식했다.
윤병석 교수는 “남의 나라 의사를 가마니에 무릎꿇게 하고 십자가에 묶은 뒤 미간 중앙에 총을 쏘는 잔인한 행위를 범했다니, 일본의
잔혹성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윤 의사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투사들의 처형 사진으로서도 처음 발굴된 것이다. 윤 교수는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죽었지만 이렇게 순국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기록은 처음이어서 윤 의사 순국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만밀대일기’는 윤 의사 처형과 관련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들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밀대일기’는 윤 의사 처형 이듬해인 1933년(쇼와 8년)에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극비보고서로 총 40여쪽이다. 윤 의사 처형사진과 처형장
도면을 비롯해 윤 의사 형 집행에 관한 각종 명령안, 소송 기록, 헌병사령관의 사형집행보고서, 백범 김구 선생을 추적한 밀정들의 보고서 등 윤
의사 처형과 관련된 자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자료들은 윤 의사 처형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윤 의사의 순국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이번 사료 발굴의 성과. 그동안엔 처형된 시간이 1932년12월19일 오전
11시40분인지 오전 7시40분인지를 놓고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만밀대일기’의 사협집행보고서에 오전 7시40분으로 기록돼
있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김달수(金達洙) 부회장은 “이번 자료를 통해 윤 의사의 정신을 다시금 되살리는 기회가 됐다”면서 “특히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한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윤 의사의 거사 장소인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 공원의 매헌정에 이들 사진 사본을 전시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 40분, 일본 금택형무소 형장에서 윤의사는 십자가 형틀에 매어 두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하였다.
이날 아침 7시 15분 간사장이 간수 2명, 헌병 3명과 함께 양복을 입은 윤의사를 호송, 형장에 도착했다. 감옥장은 간수장에게 윤의사의 수갑을 풀게하고, 군의관에게는 건강 진단을 하게 해 심신 모두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윤의사에게, 5월 25일의 사형선고에 따라 형을 집행한다는 요지를 알렸다. 이때 감옥장이 "유언이 있느냐?"고 묻자 윤의사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라 말할 것이 없다."고 했고 감옥장이 다시 소지품의 처리에 대해 묻자, "필요없으니 좋을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그의 언어는 명료했고 그 태도는 침착했다. 감옥장은 간수장에게 윤의사의 눈을 가리도록하고 형틀 앞 거적 위에 꿇어 앉힌뒤 두손을 형틀에 묶은 다음 상오 7시 27분, 2명의 사수에게 총살을 명령했다. 사수 2명은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 윤의사의 미간을 명중시켜 윤의사는 출혈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상오 7시 40분 군의관이 윤의사를 검시, 절명했음을 보고했고, 감옥장이 다시 확인한 뒤 사체 매장을 지시했다.(사형집행시말서에서)
총살을 당할 때 몸을 묶었던 형틀대. 형틀 길이는 1.8미터, 지름 10센치이고 그 위에 가루목 120센치짜리가 열십자로 붙어 있었다. 이
형틀은 윤의사를 존경하던 재조제 윤명의가 6.25동란시 피난길에 덕산으로 옮겨와 현재 남아있게 되었다.
이 사진은 윤의사가 총살형으로 순국하던 1932년 12월 19일, 일본 [북국신문]에 게재된
것이다.
1946년 5월초 재일동포 서상한, 박열, 이강훈 등이 윤의사 유해 봉환을 추진하여 한국인 청년 50여 명이
나서서 금택 교외에서 유해를 찾게 된다. 사흘 동안 이곳 저곳을 팠으나 발견하지 못했는데 석천현 출신 장병묘지 관리인 부인이던 노파(80여세)가
일러주는 쓰레기 하치장을 파서 가매장된 윤의사의 관, 십자가 형틀과 기타 유품을 순국 14년 만에 찾아냈다.
위 사진은 윤의사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이고, 아래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발견된 윤의사의 관.
동아일보 1932년 11월 22일자 신문 기사.
윤봉길의사가 오사카에서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보도.
백범과 모든 거사 준비가 완료된 후 4월 26릴, 거류민단사무실에서 윤의사는 '한인애국단선서식'을 거행하고 태극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가슴에는 스스로 쓴 '선서문'을 부착하고 왼손에 폭탄을, 오른손에는 권총을 들었다.
위 선서문의 내용이다.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윤의사는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사내 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을 써 놓고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이 유묵은 당시 썼던 글이 유실되어 윤의사의 유묵 중에서 같은 글자를 찾아 집자한 것이다
윤봉길의사의 두 아들 종(淙)과 담(淡). 윤의사는 두 아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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