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치료하며 [9] | 스피킹도사
- 번호 40463 20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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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미국내에서도 가난한 사람 많고, 대학 교육 못 받은 사람 많기로 알려진 알칸사 주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이제 석 달째다.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로서 중앙 알칸사 보훈병원(Central Arkansas Veterans Affair Hospital)에 파견 근무를 시작했다. 보훈병원 (이하 "VA")은 우리나라의 옛 대학병원 건물에 견줄만하다. 서울에 즐비한 대형 대학 병원이나 기업병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낙후되어 있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그 안에서 일하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가장 최근의 지식에 익숙하고 치료 방침에 정통해 있다.
그런 VA를 가득 매우는 사람들은 99퍼센트가 다 40-50대 이상의 중장년 남자 환자들이며 많은 수는 80세 이상의 할아버지 환자들이다. 그들이 앓고 있는 질병 또한 거의 엇비슷하다. 대부분은 당뇨병을 앓고 있고, 또 그런 대부분은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이 있으며 고콜레스테롤혈증, 만성신부전 등을 다 가지고 있다.
이들 환자들 가운데 또 많은 환자들은 우리말로 상의 용사다. 즉, 신체의 일부분은 참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영구히 손상되었거나 기능이 상실된 상태다. 한 쪽 눈을 실명한 사람, 왼쪽 어깨를 부상당해 몇 십 년간 오른팔만 쓰고 있는 사람, 양 다리가 다 잘린 사람 등.
지난 목요일 당직을 서다 우연히 내가 맡고 있는 환자의 개인 정보를 보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단어 "Korea"가 적혀 있는 것이다.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이 "코리아"가 왜 여기에 적혀 있냐고 물으니,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는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Doc, you are from Korea, right?"
순간 나는 머리가 띵해지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골 알칸사 주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농사, 소몰이밖에 모르고 살았다는 이 환자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라는 것인가.
마침 그 날 저녁 환자가 어깨 통증으로 진통제를 원한다는 연락이 와서 직접 가서 진찰을 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물었다.
"Mr. OOO, where was your point of service?" (POS = 어느 전쟁에 참가했는가)
"I was in Korea. Why?"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지금은 50년 이상이 흘러, 한국어를 다 잊었다며, 당시 18세였다고 회고한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를 도우며 살다가 지원병으로 나서 어디에 있는 지 알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한국을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울도 어디에 있는 지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고, 그 이후로 한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다시 가보고 싶냐 물어보니, 당연히 가고 싶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무서움에 벌벌 떨며 하루하루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참전했던 알칸사 출신의 전우는 여럿이 죽었다며 눈에는 마른 눈물이 흐른다.
그 환자는 왼쪽 눈에 시력이 없다. 아니, 왼쪽 눈에 손상을 당해 일반인이 보기에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어디에서 사고가 났을까. 물어보았다.
한국 전쟁에서 눈을 잃었다 한다. 그리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알콜 중독으로 지난 50년을 지냈다. 그러다 보니 마땅한 직업도 없고, 매년 몇 회씩 VA에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는 인생을 살아 왔다.
그렇게 나의 첫 당직은 끝나갔다. 그 다음 날 그 환자는 퇴원했고, 나에게 웃으며 말한다.
"Doc, I will see you soon. Don't worry. I will live and I will come back."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전쟁 때 군인이셨고 전쟁 직후 돌아가셨지만, 이 1950년 18세 였던 이 알칸사 농부는 아무 인연도 없는 한국에서 자신의 소중한 눈을 잃고, 자신의 인생을 잃었다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나머지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렇게 퇴원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 미국에 많이 살아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미 알칸사 주립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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