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다 닳도록 창검을 갈고
-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마르도록 말을 먹이자
- 南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스무 살에 큰일 못하면
-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그 누구가 장부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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磨刀(마도): 칼을 갊. 飮馬(음마): 말이 마심.
南兒(남아): 사나이. 後世(후세): 뒷세상, 세월이 흐른후.
誰稱(수칭): 누가 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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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일입니다. 남이같이 출중한 인물이 그 기량을 펴기도 전 스물여덟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간계의 무고로 역모에 죽다니요. 남이는 열여섯에 무과에 급제, 이십여 세에 북방
토벌로 칼을 높이 빼어들고 말을 달리며 적을 무찌르는 홍안 장군이었습니다. 이 시는 그
때의 웅대한 기상을 드러낸 무장다운 모습입니다.
글은 곧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호방하고 담대한 포부와 충성심이 철철 넘칩니다. 백두
산 돌을 숫돌삼아 닳도록 장검을 갈고 두만강 물이 마르도록 말을 먹이며 적을 무찌르자
는 겁니다. 그러나 이 시가 그의 목숨을 앗아갈 갈고리가 될줄을 어찌 알았겠어요. 이 시
만 아니라면 역적의 누명을 스지 않았을 텐데...... 이래서 운명은 예측할 수가 없다고 했
는가 봅니다.
특히 3행의 사나이 스무 살에 쳐들어온 의적을 토벌, 난국을 평정하여 나라를 평온하게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할 것이냐는 웅지를 드러냅니다.그러나 세상은 너무도
묘한 것입니다. 남이 같은 의기의 호걸이 있는가 하면 유자광 같은 소인배가 있어서 항상
옳고 그른 두 패로 의와 불의가 선과 악이 갈려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물줄기
인지도 모릅니다.
미평국(未平國)인 나라를 평안히 아니하면의 평정할평(平) 자를 얻을 득(得)자로 바꾸면
미득국(未得國)이 됩니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감쪽같이 역적으로 몰
려 참살을 했습니다. 어찌해서 유자광은 그 좋은 지모를 옳게 이용 못하고 장재(將材)를
다친 질투의 시기심이 밉기만 합니다. 억울한 일입니다.
이 시는 이런 사연으로 해서 더욱 유명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충성스런 시 한 수의 글자
하나를 고침으로 역적으로 둔갑을 하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또한 이것이 한시의 묘미
인지도 모릅니다.
옛사람의 말에 의하면 백년에 한 사람 태어날까 말까한 큰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위인
이 무참히 지고 말았습니다. 천수를 다했다면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련만 안타가운 노릇
입니다. 이 또한 운명으로 돌리기엔 너무 애석할 뿐입니다.
남이에게는 기이한 일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언 대감집 앞를 지나가는데 남이가 보니
하인이 반기를 이고 가는 그 위에 귀신이 붙어 있더랍니다. 그 음식을 먹은 그 댁의 규수
가 금방 사경을 헤매더랍니다. 이를 남이가 고쳐준 일이며 남이가 단명의 사주를 타고
난 것을 미리 복술가들이 알았다는 야담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아까운 나이로 역모에 연루된 것을 보면서 이런 때 '운명', '팔자소관'이라고밖
에는 남이 장군에 대하여 위로할 길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자광과의 만남이 없었더
라뎐 이런 일은 없었겠지요. 그래서 옛부터 열매를 달지 않는 묘목은 심지를 말고 의리
없는 사람은 사귀지를 말라고 했습니다.
남이가 궁궐에서 숙직을 하는데 혜성이 나타난 것을보고 '묵은 것이 살아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한 말을 엿듣고 자기의 죄가 사후에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될 것을
미리 알고 자신의 무덤을 위장하여 모면까지한 간교한 유자광과 남이의 만남은 '악연(惡
緣)'이랄 수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나쁜 병을 만나면 죽고 선량한 사람도 악한 무리를 만나면 어쩔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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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南怡 ; 1441, 세종 23 ~1469, 예종 1) ― 조선 시대의 무신.
남희(南희)의 아들로 의령인(宜寧人), 태종(太宗)의 외손.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음. 1467년 이시애가 북관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으로
이를 토벌, 적개공신 1등에 오르고 의산군에 봉해졌으며 북정토벌에 공을 세워 28
세의 나이로 병조판서,
예종 때 숙직하던 어느날 밤,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하자 항상 남이를 질투해 오던 유자광(柳子光)이 이말을 엿듣고
역모를 회책했다고 모함.
당시 남이가 여진토벌을 한 뒤 읊은 시의 한 구절인 미평국(未平國)을 미득국(未得
國)으로 고쳐 이를 증거로 반역의 뜻이 있다는 모함으로 영의정 강순 등과 함께 주
살됨. 1818년에야 신원(伸寃).*
出 處 / 漢詩에세이(1997) 沈永求/著
090410/燈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