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보은행복

[스크랩] 전완규(35) - 천안시환경기초사업소 2009.5.6. 조선

good해월 2009. 6. 7. 08:50

 

 

쓰레기 뒤져 아이들 꿈을 줍는   '매립장 아저씨'

14년째 소년소녀가장 돕는 천안시 매립장 직원 전완규씨
점심시간 쪼개 폐품모아 다섯명째 '키다리 아저씨'
"어릴 적 도움받은 기억… 크면 남 돕겠다고 결심"

전완규(35)씨는 흰 밥에 김치찌개, 멸치볶음과 김으로 10분 만에 점심을 때우고 구내식당을 나섰다. 4일 낮 12시20분쯤, 충남 천안시 목천읍 환경기초사업소. 하수종말처리장 등과 함께 천안시 일대의 생활쓰레기가 하루 40여t씩 들어오는 17만8000㎡(5만4000평) 크기의 매립장이 있는 곳이다.

전씨가 노란 포대 두 자루를 손에 쥐고 매립장 비탈길을 오르자 쓰레기 더미가 3m 높이로 쌓인 광활한 매립장이 펼쳐졌다. 그늘 한 점 없는 매립장은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地熱)로 후끈했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전씨는 장갑 낀 손으로 부지런히 쓰레기를 뒤졌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뚝뚝 땀방울이 떨어졌다.

전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정규직원 6명 중 한 명이다. 땅 위로 돌출된 쓰레기 더미, 바람에 날려 땅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수거해 표면을 고르는 게 주업무다. 이와 별도로, 그는 다른 직원들이 쉬는 점심 시간을 쪼개서 매립장에 들어온 쓰레기 봉투를 일일이 뜯어보고 그 속에 든 빈 병과 헌 옷, 신문지와 수저 같은 폐품을 골라낸다. 그냥 버리면 쓰레기지만 일삼아 주워서 고물상에 가져다 주면 돈으로 바꿔주는 물건들이다.

전완규씨가 4일 자신이 일하는 천안시환경기초사업소에서 재활용 폐품을 정리하며 활짝 웃고 있다. 전씨는 폐품을 팔아 14년째 소년소녀가장들을 돕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날도 전씨는 30여분 만에 포대 두 개가 꽉 차도록 돈 되는 폐품을 쓸어 담았다. 그는 뿌듯한 얼굴로 폐품 포대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끙끙거리며 매립지 구석으로 걸어갔다. 유리병, 장바구니, 못쓰는 의자, 자동차 배터리, 전선, 플라스틱 호스 등이 어른 키만한 높이로 쌓여 있는 이곳이 동료들도 인정하는 전씨만의 '작업장'이다.

전씨는 1996년부터 14년째 매립장에서 쓸만한 폐품을 모아 돈으로 바꿔 천안에 있는 소년소녀가장들을 돕고 있다. 점심시간 외에도, 퇴근 시간(오후 6시) 직후 매립장에 남아 폐품을 모으기도 한다. 나흘마다 돌아오는 비번 날이면, 1t트럭을 끌고 천안 성환읍 일대를 돌며 고철과 폐가전제품을 줍는다. 눈비가 오는 날은 우의(雨衣)를 입고 나선다.

이런 식으로 손에 쥐는 돈이 한 달에 30여만원이다. 그는 이 돈을 천안 백석동에 사는 중학교 1학년 정모(여·13)양에게 보내고 있다. 3년째다. 정양은 일찍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다. 어머니는 가출했다. 식당에서 허드렛일하는 할머니가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정양을 돌본다. 정양은 지난 14년간 전씨가 후원한 다섯 번째 아이다.

전씨는 "예전에 도운 남자 아이는 고등학교 마치고 한국전력공사에 취직했고, 또 다른 아이는 축협에 취직했고, 시집가서 잘 사는 아이도 있다"며 씩 웃었다. 그가 도운 아이들은 그를 '매립장 아저씨'라 부른다.

그는 "나도 어려서 어렵게 컸다"며 "어른이 되면 반드시 나와 같은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 토박이다. 천안 풍새면에 있는 초가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초가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오면 여지없이 빗물이 샜다. 땅 한 뙈기 없이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며 먹고살던 전씨의 아버지는 전씨가 12살 때(1985년) 폐렴과 천식으로 세상을 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농장 쪽방에서 매일 밤 '아빠, 아빠…' 하고 울며 잤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린이재단 직원이라는 분이 찾아와서 5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힘들겠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는 쪽지를 건넸어요. 조그만 수퍼마켓을 하는 분이 보낸 돈이었어요."

전씨는 "생전 모르는 사람이 보여준 관심이 얼마나 고맙던지 '크면 나도 남을 돕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양계장에서 일하며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전씨는 "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것 같아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모았다"고 했다. "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쌀밥 먹으며 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면 그때는 남을 돕자고 다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양계장 월급을 아껴 매달 20만원씩 주택부금을 부었다. 24살 때 지금껏 살고 있는 방 세 칸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21살 되던 해 교회에서 만난 2살 연상의 부인 방주영(37·지체장애2급)씨와 결혼했다. 방씨는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외롭게 자란 전씨는 교회 사람들의 생일을 수첩에 일일이 기록해 손수건, 티셔츠 등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방씨의 배려심에 반했다고 했다.

고교 은사의 소개로 천안시청 청소과에 내근직으로 취직한 전씨는 1996년 지금 일하고 있는 매립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야근수당, 시간외수당 등을 챙길 수 있어 월급(200만원)을 청소과에 다닐 때보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먹고살 만해진 이 무렵부터 그는 폐품을 모아 소년소녀 가장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전씨 부부는 중학교 2학년 큰딸(14), 초등학교 3학년 작은딸(9), 유치원생 아들(6)을 뒀다. 매달 마지막 주말이면 전씨가 후원하는 아이들을 만나 통닭, 피자 등을 사주고 때로는 마음먹고 고기도 구워준다. 언젠가 전시를 도왔던 수퍼마켓 주인처럼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정양 어깨도 두드려 준다. 지난 2월, 전씨가 지금 돕고 있는 정양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온 가족이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전씨와 10년째 알고 지내는 매립장 동료 현상호(39·중장비 운전)씨는 "(전씨를 두고) 주위에서 다들 '세상에 저런 사람 없다'고 한다"고 했다. 부인 방씨는 "남편이 도운 아이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고 할 때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큰딸은 "쓰레기를 주워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고 했다. 전씨는 쑥스러워했다. "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쌀밥을 먹으며 사는 게 내 꿈이었는데 전 그걸 다 이뤘어요. 덤으로 남까지 도우며 살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죠."

출처 : 하늘나라
글쓴이 : 하늘나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