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소사(小史)
"나는 이천이백이십삼번
죄인의 옷을 걸치고
가슴에 패를 차고
이름높은 서대문형무소
제삼동 이호실
북편 이호실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혼잣말로 물어보았다."
시인 김광섭이 일제시대 붉은 벽돌담 안 독방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시심(詩心)을 가다듬었던
'이름높은 서대문형무소'.
그곳은 일제의 침략사와 궤를 같이하며 한민족의 수난을 깊숙이 응축시켜 온,
민족사의 원과 한이 서리서리 똬리를 틀었던 환부
출처: 서대문형무소 글 리영희.나명순 , 월화당
3월1일 삼일절, 무엇을 하셨나요?
개강을 하루 앞둔, 3월 1일! 우리에게 3월 1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 삼일절? 이때 만세운동 한날아니야?"
그리고??....
" 그리고? 음.........뭐 그때이후로 많은 독립운동이 일어나서인가?
.....?근데 왜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일제시대, 유관순 누나, 독립운동 등 이런 말들은 고리타분할 뿐 아니라 먼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것은 일본에 대한 증오와, 싸워서 이겨야할 대상입니다.
매일 수요일마다 집회를 하는 위안부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매년 3월 1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우리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하는 날일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 기사를 쓰기 전까진......삼일절의 국경일로 지정될만큼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삼일절을 맞아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 김선경
ⓒ문화재청
=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에 일본인이 설계한 근대적인 감옥입니다.
약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60여 평의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습니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 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입니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었으며 이곳을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습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유관순 열사도 이 곳에서 목숨을 다하였다고 하네요......
일제시대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교육장으로 매우 뜻깊은 곳입니다.
현재 7개동의 옥사가 보존되어 있고 그중 1915년에 지어진 제 10.11.12옥사는 사적 제 324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또한 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인 사형장도 사적 제 324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 이중벽돌로 세워졌으며 안에 사형장인 왜식 목조건물이 위치하여 있습니다.
★ 사형장 입구에 큰 미루나무가 보이시나요? 이 나무는 일명 '통곡의 나무'라 불리는데 이유인 즉슨, 애국지사들이 사형을 선고 받고 사형장을 향하는 길에 나라를 잃은 슬픔과 목숨을 다한 슬픔을 이 미루나무를 부여잡고 통곡하셨다하여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 사진에서 보이는 나무가 2그루가 보이시는데요.
근데 사형장 안쪽에 있는 미루나무는 상대적으로 밖의 통곡의 나무보다 아주 빈약해보입니다.
내려오는 이야기로 애국선열들의 원통한 넋이 나무에 서려있어 같은 시기에 심어진 나무와 종이라도.....잘 자라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고 하는군요.......
▲ 10. 사형장 목조건물
▲11. 사형장 내부
ⓒ네이버 백과사전
- 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조국독립의 한을 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선열들의 넋이 서려있는 곳으로 사적 3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사형장 내부 <미공개 사진>
출처:서대문 형무소, 리영희.나명순 저, 열화당
지금은 열려 있지만, 그 닫힌 마룻바닥 위 작은 의자에
사형수가 앉혀지면 목에 밧줄이 감기고 커튼이 닫힌다.
입을 벌린 교수대 앞에 사형수가 최후로 앉던 의자가 놓여 있다.
왼족은 사체를 점검하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
사형실 지하실 전경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의 몸이 이곳에 놓이면, 검시의가 내려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다.
반 평쯤 되는 교수대 마룻바닥이 내려앚을 때의 충격과 소음을 줄이기 위해 지하실 벽에 타이어를 부착해 놓았다.
▲12. 여성수감자 지하감옥(일명 유관순굴)
= 이곳은 여성수감자를 가두는 지하감옥인데요유관순열사가 갖은 고문과 옥고로 숨을 거두신곳이라하여 유관순 굴로도 알려져있습니다.
▲13. 지하감옥 내부
▲14. 유관순 수감증
우리는 평소 문화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시나요?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 한국적인 미의식을 잘살려내어 마땅히 보호해야할 것들?
물론 그러한 것들이 기본적으로 문화재의 기능이자 목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화재의 역할은,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의 가치와 내용을 내포하여,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의미와 깨달음을 주는 것으로, 꼭 필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대문형무소는 '사적 324호'로써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부끄러운 지난날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애국애족의 뜻을 배우는 곳으로써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경술국치 100년이 되었습니다.
'죄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참으로 유명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뜻을 가끔 잊고 사는것 같습니다.
그들이 지켜내려고 했던
자주적이고 독립된 국가를.....우리나라를 만들었던 문화를......
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우리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계속 지켜낼 수 있을것입니다.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말입니다.
▲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지단 김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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