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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伊 언론 “하얼빈 의거는 독립 위한 영웅적 행동”

good해월 2010. 3. 22. 16:09

伊 언론 “하얼빈 의거는 독립 위한 영웅적 행동” 
2010년 02월 27일 (토) 21:31:39 백은영 기자 angel@newscj.com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에 세계 언론도 주시 
             가톨릭 신자이자 조국의 자주독립 염원한 의병


 

   
▲ 의거 직후 체포된 안중근 의사.

[뉴스천지=백은영 기자]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초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암살하고, 이듬해인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으며, 국내는 물론 일본, 한국, 중국의 가톨릭교회에서는 26일 특별 미사가 집전될 예정이다.

안 의사의 독립운동과 항일계몽운동, 단지동맹, 하얼빈 의거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생애는 1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개신교 신문인 ‘리포르마(Riforma)’는 100년 전 가톨릭 신자인 한 한국인이 일본 총리를 암살하고 처형됐다는 내용의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고 김수환 추기경은 안중근의 거사가 ‘독립을 위한 영웅적인 행동이었다’고 언급했었다.”라고 밝힌 일본 가톨릭교회 다이지 타니 주교의 말을 인용했다.

타니 주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한 ‘안 의사 행적지 순례’를 담당하는 일본 가톨릭교회 주교다.

리포르마는 “그의 거사에 대해 여러 다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행동은 한일합방에 연관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평가한 타니 주교의 말을 전하면서 안 의사는 한국에서는 일본 식민지 정책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하려 노력한 주요 인물로 평가된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한국 국민은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아시아의 평화, 특히 한국·일본·중국 간의 평화를 기원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세계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도마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협하고 그동안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자주독립권을 무자비하게 박탈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것이 일본의 침략정책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 천주교인 도마 안중근은 유묵에도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천

                                당지복영원지락'은 '천당이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라는 뜻으로

                                가톨릭 신앙은 안 의사의 정신적 기둥이었다(좌). '위국헌신군인

                                본분'은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으로 보물

                                제569-23호로 지정됐다(우).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자 안 의사는 “일본에서는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느냐”면서, 이 판결에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안중근의 태도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를 상고를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뜻이었다. 이로부터 5일 후인 2월 19일 안중근은 공소권을 포기했고 일본정부는 크게 놀랐다.

고등법원장 히라이시가 일부러 형무소로 안중근을 찾아와 상고를 권고했으나 안중근은 이를 거절했다. 상고를 포기한 것은 그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거니와 안 의사 모친의 뜻이기도 했다.

안 의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형이 구형됐다는 소식을 듣자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한국에서는 대한매일신보에,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에 ‘시모시자(是母是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안중근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자기 신앙에 따라 천주교 신부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이는 천주교 신자의 의무로서, 죽음에 이르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청산하는 고해성사이자 영성체 그리고 종부성사를 함으로써 신앙인다운 인생을 끝마치기 위해서였다. 안중근은 사형 집행 전날 국내외의 동포들에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전했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 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한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25~27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남북공동 추모행사’를 중국 여순 일원 안중근 의사 관련 유적지에서 진행하기로 지난 2월 5일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업회는 “20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순국 100년 행사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남북공동 행사에 이어 순국 100주년을 공동으로 개최해 안중근 의사의 평화와 독립, 자유에 대한 정신을 남북의 동포가 서로 확인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순국 100주년과 함께 일제의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된 이때에 한일 간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인이자 조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했던 의병 안중근. 그의 치열한 항일투쟁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항일계몽운동으로 많은 이들의 의식을 일깨웠다.

“우리들이 한 번의 의거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한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두 번에 이루지 못하면 세 번, 그렇게 네 번, 열 번에 이르고 일백 번을 꺾어도 굴함이 없이… 또 만일 우리 대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아들 대, 손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하고야 말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하면 일백 번을 꺾여도 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 이러한 신념이 대한독립의 원동력이 됐듯이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 문화와 정신까지도 온전히 광복할 수 있는 뚜렷한 신념과 목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출처 : 반석 같은 친구
글쓴이 : 푸른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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